[인터뷰] 정지영 감독 "약자에 대한 편견 만연한 시대, 영화가 사회적 거울 역할 했으면"

모신정 기자 2023. 12. 1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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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년들'로 약자에 대한 편견에 대한 문제제기 나서
정지영 감독 / 사진제공=CJENM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정지영 감독의 영화를 보는 일은 사실 즐거움보다는 긴장과 반성이 따르는 일이다. 대부분의 언론이나 여론이 눈을 감은채 외면하려고 했던 사회적 부조리 현상들에 예리한 현미경을 들이대고 끝까지 진실을 파헤친다. 영화는 그저 2시간여 극장에서 웃고 떠들고 신나게 즐기고 나오는 오락거리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가 '앗, 뜨거워'하기 십상이다. 사회적 부조리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매번 새로운 주제로 우리 사회속 모순을 매섭게 지적하는 정지영 감독의 지치지 않는 노익장에 함꼐 정신이 번쩍 들곤 한다.  

전작인 '하얀전쟁'(1992),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물론이고 최근작인 '부러진 화살'(2012), '남영동1985'(2012), '블랙머니'(2019)까지 그는 매번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적 환부를 들여다봤고 바늘끝 같은 조그만 희망을 제시했다.  

정지영 감독이 4년 만에 내놓은 영화 '소년들'은 1999년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영화는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지영 감독은 최근 스포츠한국과 인터뷰에서 '소년들'을 연출하게 된 계기에 대해 "우리의 시선이 굉장히 위험할 때가 많다. 극중 소년들이 못배우고 가난하니 은연 중 저들이 범죄자라고 보는 거다. 선입관과 편견이 그렇게 무섭다. 가진 자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 몸에 배어 있을 수 있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고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잘 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관객들 자신도 소년들 사건의 동조자 중 한 명일 수 있다. 만약 영화를 보며 그런 것을 느껴준다면 보람이 있다. '사회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영화 감독을 하는 맛이 난다"고 밝혔다. 

- 지난 9월 '정지영 감독 40주년 기념 회고전'을 진행했다. 감독으로서의 40년을 돌아본 감회가 궁금하다. 

▶ 사실 과거를 잘 안돌아보는 사람인데 이번에 40주년 행사를 하다보니 돌아봐지더라. 어느새 나에게 '사회파 감독'이라는 호칭이 붙었지만 사실 허무주의자에 가깝다. 세상이 그렇게 잘 될 것 같지 않고 어쩔 때는 별로 살고 싶지도 않다. 절로 들어가거나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던다 해야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버티고 있나 살펴봤다. 

살펴보니 영화를 통해 극복을 하더라. 내 영화를 보면 사회 문제의 중심에 선 주인공들이 마지막에 가서 승리하지 못하고 지고 만다. 그렇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부러진 화살'에서도 재판에서 진 놈이 큰소리 쳤고 '블랙머니'에서도 다 깨진 주인공이 큰 소리로 연설을 하고 있다. 다행히 '소년들'의 소년들은 재판에서 승리했다. 내가 영화를 하는 행위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하는 것도 있지만 내 스스로를 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하더라. 허무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정지영 감독 / 사진제공=CJENM

- '소년들'의 모티브가 된 삼례 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 하기로 마음 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 먼저 약촌오거리 사건을 영화화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의 재심 변호사인 박준영 씨에게 전화해서 영화화 이야기를 꺼내니 이미 영화화가 진행 중이라더라. 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삼례나라슈퍼 사건이 방송 등에 소개가 됐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있던 일이다. 이 사건을 보니 이야기거리도 많고 매우 절실하더라. 박준영 변호사에게 다시 전화하니 '감독님이 제일 먼저 오셨다'며 당사자들에게 양해를 구해본다고 하더라. 박준영 변호사가 소년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하셔도 좋겠다고 연락을 줬다. 그때부터 바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이야기를 운반하는 과정이 산만한 편이었다. 이후 약촌오거리 사건을 다룬 '재심'이라는 영화가 나왔는데 이 사건에 실제 등장하는 인물이 황상만 반장이다. 내가 애초 약촌오거리 사건을 그리려고 했을 때 황 반장을 주인공으로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재심'이라는 영화에는 황 반장이 몇 초밖에 안나오더라. 그래서 박준영 변호사에게 전화해 내가 시나리오에 그 사람을 끌어와서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으로 할려고 하니 양해 좀 구해달라고 했다. 이어 박 변호사에게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 마침 '재심' 영화 시사를 할때 두 사람이 같이 봤는데 그 영화에서는 박준영 변호사가 주인공처럼 그려지고 황 반장은 거의 안나왔더란다. 그래서 황 반장이 그 영화가 끝나고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기에 박 변호사가 싹싹 빌었단다. 그런데 때마침 내가 황 반장을 주인공으로 하겠다고 하니 좋아하게 된 것이다.(웃음)

- 황 반장 역 설경구 칭찬을 입이 닳도록 여러 번 했다. 

▶ 황 반장을 선택한 순간 설경구를 생각했다. 그에게 '강철중'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박혀 있었다. 강철중이 나이 들어 반장이 된다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영화에서 황 반장이 저돌적으로 밀어 붙이다가 좌절을 겪고 이후 17년 후 파출소장의 모습까지 그려야 한다. 이런 시기적 변화를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인물은 설경구 밖에 없다고 봤다. 외형적으로 볼 때도 다른 사람보다 큰 변화를 줄 수 있는 배우가 설경구였다. 그여야만 했다. 

-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등 한국 현대사의 불편한 진실을 들춰보는 작품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소년들'에서도 해당 사건의 검사와 고위 경찰 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권력을 예리하게 비판하는 영화들을 잇따라 만들어오면서 혹시 불이익을 당하거나 견제받고 있다고 느낀 순간이 있나.

▶ 불이익을 알게 모르게 당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보다 편하게 살 수는 없다. 내게 욕 먹은 사람들이 앙심을 품지 않을까. 그런 기가 나에게 올텐데 그런 기운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정지영을 어떻게 골탕 먹일까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만약 영화에서 가해자 쪽에 속한 사람이라면 '내 잘못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런 일을 겪는구나'하는 마음을 가져주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리 안될 거다. 그 사람들이라면 '세 소년들을 구제해서 사회에 무슨 득이 되겠나. 17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구제해야 해?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야지'라고 생각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 더 화가 난다. 

- 사실 정지영 감독의 작품들을 볼 때 개인적으로 매번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낀다. 내 개인의 안위와 일상에 몰입한 삶을 반성하게 될 때가 많다.  

▶ 한 영화가 구구절절 다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극중 딸로 나온 윤미숙(진경)은 어떻게 보면 가해자다. 10여년이 지난 후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소년들의 구제에 열심히 나서지만 어찌 보면 그 사람 때문에 (소년들이) 고생한 것 아닌가. 그가 자신의 감정을 냉정히 추스려서 황반장이 당시 사건을 수사할 때 잘 대응했더라면 (사건의 전개가)달랐을 거다. 극중 태권도장 주인, 싸움을 거는 학부모들도 소년들 중 한 명이 돈을 훔쳤다고 믿고 경찰에 가는 바람에 황반장과 재회하게 된다. 그들 또한 소년들 중 한 명이 돈을 훔쳤다고 단정을 한다.

우리의 시선이 굉장히 위험할 때가 많다. 소년들이 못배우고 가난하니 은연 중 저들이 범죄자라고 보는 거다. 선입관과 편견이 그렇게 무섭다. 가진 자들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 몸에 배어 있을 수 있다. 제가 영화를 만들 때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고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잘 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관객들 자신도 소년들 사건의 동조자 중 한 명일 수 있다. 만약 영화를 보며 그런 것을 느껴준다면 보람이 있다. '사회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영화 감독을 하는 맛이 난다.  

- 사건의 책임 형사에서 전북청 수사계장으로 승진한 최우성 역의 유준상과 담당 검사 오재형 역의 조진웅은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한 열연을 펼쳤다. 특히 전작 '블랙머니'에서 정의의 편에 섰던 조진웅이나 평소 선한 이미지를 지닌 유준상을 악역에 캐스팅해 영화의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 두 배우 모두에게 정말 고맙다. 주인공이 아닌 악역인데도 선뜻 응해줬다. 조진웅이 맡은 오재형은 특히 재판정과 신문실 딱 두 신에 나오는데 중요 역할이었기에 무게감 있는 연기자가 해줘야만 했다. 무게감이 있으려면 주연급을 택해야 하는데 분량 때문에 조연급에서 캐스팅을 하려다 보니 그러면 황 반장에게 힘이 부칠 수 밖에 없는 역할이었다. 고민하다가 조진웅에게 전화를 했더니 바로 오케이해줬다. 유준상은 착한 얼굴에 공부도 많이 하고 머리도 좋아 보이는 인물이 필ㅇ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면서 신자유주의에 더 충실하려고 하는 사람들 말이다. 좋은 집에서 태어나 학벌도 좋고 머리도 좋은 사람들이기에 권력적으로 더 올라섰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가진 생각에 위험한 부분이 많다. '세 사람을 구제하기 위해 17년동안 경찰이 해결하려고 했다면 그것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저는 캐릭터에 대해 배우와 이야기하고 난 뒤에넌 다 맡기는 편이다. 배우들이 내 머릿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들이 하는 것을 보고 장점을 캐치해서 내가 담아내면 되는 거다.  

- '소년들'의 영화화에서 가장 우려한 지점은 무엇인가. 

▶ 세 소년들이 허락했기에 이 영화를 만들수 있었지만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됐다. 옛날 일을 잊고 싶은데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가 너무 조심스럽더라. 다 만들고 나서 그들과 함께 하는 시사회에 세 소년 중 한 사람이 꽃다발을 주시더라. '감독님, 정말 감사하다'고 해주시더라. 그때 정말 뭉클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그날 함께 오신 분들 중에 재심을 해서 이긴 분들이 계셨다. 이분들이 '등대 장학회'라는 모임을 만드셔서 재심에서 나온 보상금을 모아 비슷한 피해자들을 돕는 일을 해오고 계신다. 그날 시사회에 낙동강 살인사건으로 20년 구형 받은 분과 화성 살인사건으로 20년을 받은 분들이 오셨다.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아보니 천진난만하게 미소를 띄고 계시더라. 청춘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나왔는데 어떻게 이리 밝을까 싶더라. 정말 가슴이 아팠다. 나중에 법륜스팀과 그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님 말씀이 '사회와 20년 격리돼서 살다 보면 도인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 설경구는 인터뷰에서 정 감독 현장의 수평적 관계에 대해 한참 칭찬하더라. 한참 나이 어린 조감독과도 토론을 벌이며 촬영에 임할 정도라던데.   

▶ 수평적 관계가 아닌 현장은 감독이 손해다. 감독이 아무리 수평적으로 임한다고 해도 결국 감독이 선택을 하지 않나. 감독이 '레디 고'를 하지 않으면 다 기다려야 한다. 권위를 찾으려고 하는 감독들도 있을 수 있다. 자신의 모자람을 감추기 위해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을 거다. 그런 건 자기 손해다. 영화 현장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남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결국 선택하면 된다. 남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좋은 것을 뽑아내면 된다.  

- 사회파 감독이라고 불리는 후배 감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운한 마음은 없나. 

▶ 영화의 기능 중에는 미학적 기능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풍부하게 해주는 기능도 있다. 그렇게 해서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다. 사회가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 역할을 할수도 있다. 저 스스로는 영화가 대중과 만나는 작품이기에 사회적 기능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오락적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같이 생각해보고 싶다. 가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후배들이 나왔다가도 다른 장르로 관심을 가지기도 하더라. 그런 모습이 안타까울 때도 있다. 투자가 잘 된다면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더 창작되리라 본다. 연극 쪽에는 그런 내용을 다루는 연출자들이 꾸준히 나온다. 

- 40년 감독 인생 중 대표작으로 꼽는 3편이 있다면. 

▶ 내 대표작은 항상 다음 작품이다.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만드는데 가끔 만들고 나서 아닌가 싶은 작품도 있다.(웃음) 예전에 한국 영화에 대한 평론을 많이 내시던 임안자 선생님이 계시다. 스위스에 사시는 분이고 나보다 나이도 더 많은 분인데 그 분이 한국 영화를 외국에 많이 소개하셨다. 임 선생님이 내 작품 3편을 고르시며 외국에서 바라본 한국에 대한 시각을 얘기한 적이 있다. 제 작품 중 '남부군'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다뤘고, '하얀전쟁'은 한국 현대 경제사를 다뤘고,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한국 현대 문화사를 다뤘다고 평하셨더라. 그 사람 이야기를 듣고 객관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세 작품 모두 미국과 밀접하게 관계가 있더라. '소년들'을 재미있게 보신 관객들께 이 세 작품도 한번 찾아보시라 권하고 싶다. 

- 40년동안 감독으로서 살아오면서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는 즐겁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고통을 호소하는데 나는 진정한 예술가가 아닌지 즐겁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도 촬영, 편집 과정도 들거웠다. 그런데 돌아보니 나만 즐거웠다. 가족들은 나 때문에 고생만 했다. 내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건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 처음 생각한 건 아니고 매번 그런 생각이 든다. 

- 한편의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뭔가. 

▶ 플롯을 가장 중시한다. 플롯은 내가 늘 정한다. 플롯이 상당히 많은 것을 말하고 또 방법도 전한다. 나머지 디테일은 주위 많은 스태프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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