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견디는 사람들…영화 ‘물비늘’ 임승현 감독 [인터뷰 줌-in]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물비늘’이 상실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연대를 그려내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 지난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과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장편경쟁 섹션에서 존재감을 내비쳤던 작품이다.
‘물비늘’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손녀의 죽음을 견뎌내지 못하는 할머니와 손녀의 친구였던 학생 등 소중한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음하다가 서로 보듬어주기도 하는 이들의 사연을 살펴본다.
영화를 연출한 임승현 감독은 지난 2021년 첫 장편 ‘홈리스’를 통해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이어 제50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초청으로 이목을 끌었다.
아직 두 편의 장편 뿐이지만 일상의 단면을 따라가는 면밀한 시선, 공간에 머무는 정서를 형상화하는 방식 등 ‘홈리스’와 ‘물비늘’에 함께 깃든 공통분모는 관객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임 감독은 언제나 현실 구석구석을 비추면서도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리얼리즘에 기반한 ‘홈리스’와 ‘물비늘’에서도 역시 시간을 일부러 비선형 구조로 배치하거나, 환상의 영역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연출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비늘’의 후반부에 죽은 수정이 누워 있는 예분과 지윤 곁에 나타난 뒤 그들을 스쳐지나가면서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비늘’ 곳곳에 삽입된 과거의 장면들이 수정의 죽음을 둘러싼 그날의 진실을 추적하기 위한 장면들이 아니라, 수정을 떠나보낸 이들이 현재 느끼는 정서가 과거의 어떤 지점에서 촉발됐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로 사용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 임 감독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시간 순으로 적어놨던 이야기를 뒤섞는 과정이 있었다”며 “플래시백이 단순히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이런 구성으로 영화를 엮어나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매 작품마다 인간이 공간과 맺는 상호작용에 집중했고, 불완전한 이들 사이 피어나는 연대와 결속의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그런 점에서 예분과 지윤의 동행을 포착한 ‘물비늘’의 엔딩은 관객들 각자에게 다양한 의미로 다가간다. 두 사람이 언제까지 함께 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서로 상실을 견디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꿋꿋이 내일을 버텨내야겠다는 의지 등이 뒤섞인 복잡한 내면이 관객들에게 스며든다.
감독은 완벽한 매듭을 짓는 게 영화의 역할은 아니라고 봤다. 이에 따라 원래 편집본엔 희망적인 에필로그가 붙어 있었지만, 여백의 미학을 방해한다고 여겨 최종본에선 삭제됐다. “죄의식 등이 뒤얽힌 복잡다단한 감정의 파편들을 손쉽게 해소하는 귀결점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했다. 그저 묵묵히 마음 한구석에 덩어리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한편 ‘물비늘’을 찬찬히 뜯어보면 다양한 영화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직접적으로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영화가 예분의 감정선을 매만져나가는 데 있어선 이창동의 ‘밀양’이 떠오르기도 한다. 죄책감에 신음하는 인물들의 몸부림에선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이 엿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비슷한 결의 영화를 함께 곱씹어 볼 때 ‘물비늘’이 품은 정서가 극대화된다.
임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 일상 속에서도 관객들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상상했으면 한다”며 누군가에겐 모호하지만 누군가에겐 손쉽게 예측될 수 있는, 그런 열려 있는 결말로부터 영화를 통해 현실을 곱씹어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송상호 기자 ss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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