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제대로 쓰이나" 의심했는데…기부문화 바꾸는 '블록체인'
위·변조 불가능한 특성에 주목…"투명성 높여 기부 저변 확대"
블록체인이 기부 문화를 바꾸고 있다.
기존에는 기부금이 제대로 전달 및 사용되는지 의구심이 있었는데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의 특성상 이러한 의혹을 해소할 수 있게 되면서다. 비정부기구(NGO)들이 기부 캠페인에 블록체인을 적극 도입하려는 배경이다. 디지털 자산(암호화폐) 또한 기부 캠페인에 활발히 활용되면서 블록체인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블록체인 기반 모금 플랫폼 ‘기빙블록’이 발표한 2023년 연례 보고서를 보면 암호화폐 시장이 부침을 거듭하는 상황 속에서도 지난해 암호화폐 기부액이 1억2500만달러(약 1637억원)를 넘어선 만큼 가능성이 엿보인다.
'디지털 자산 기부' 활발해져
17일 두나무에 따르면, 지난달 개최된 국내 대표 블록체인 행사 ‘업비트 D 컨퍼런스(UDC) 2023’에선 소셜 임팩트를 핵심 키워드로 선정해 디지털 자산 기부의 최신 트렌드와 미래 활용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월드비전 정호윤 팀장 △굿네이버스 이현승 글로벌 임팩트 임팩트기금본부장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주희 대리 △유니세프한국위원회 김학수 팀장 △백석대 신은정 교수 등 국내 비영리기관 관계자들이 패널로 참석해 국내 디지털 자산 기부 사례를 공유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2021년 국내 법정기부금 단체 중 최초로 가상자산을 기부받아 화제가 됐다. 이후 기부 참여자에게 기부 증서로 대체불가토큰(NFT)를 주는 ‘그린 열매 NFT 나눔’ 캠페인을 벌여 젊은층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유니세프위원회도 올해 3월 개인과 법인이 함께 디지털 자산을 튀르키예 지진 피해 복구에 기부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업비트 이용자가 기부한 금액에 두나무가 추가로 기부금을 출연하는 매칭 그랜트 방식으로, 총 14비트코인(당시 약 4억4000만원 상당)이 모였다. 구호 모금 현황을 두나무의 메타버스 플랫폼 ‘세컨블록’을 통해 공유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월드비전 역시 지난해 9월 국내 NGO 최초로 후원금을 이더리움으로 모금하는 페이지를 오픈했다. 사내벤처로 키운 소셜 액션 플랫폼 ‘베이크’도 소개했다. 스스로 캠페인을 만들고 참여하는 능동적 기부자를 양성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은 케이스다.
블록체인으로 기부 투명하게
이들은 블록체인이 모금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부자들에게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유하는 등의 강점을 가졌다는 데에 한 목소리를 냈다. 블록체인에 저장된 정보는 변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구나 열람 가능한 장부에 사용 내역이 기록돼 기부금의 이동·사용 경로 추적이 가능하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 이체 속도가 빨라지고 수수료가 절감되는 것도 장점으로 꼽았다. 전자지갑으로 직접 전송되는 블록체인 이전 방식은 기존 해외 송금보다 빠르고 수수료 부담을 덜 수 있다. 게다가 금융시스템이 불안정한 전시나 자연재해 상황에서 신속한 재난 지원이 가능해진다. 정호윤 월드비전 팀장은 “(기부금 모금시 발생하는) 수십억원의 환차손만 줄여도 나라 하나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며 디지털 자산 기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블록체인 기술의 탈중앙화 측면 역시 호평했다. 모든 기여자가 동일한 정보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민주적이고 공익적인 탈중앙의 철학을 구현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자산 기부가 비영리 단체의 수익원을 다각화해 기존 모금 수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적극적 정책 개선 필요하다"
디지털 자산이 기부 수단으로 자리 잡으려면 적극적 정책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법인이 기부받은 암호화폐를 장내에서 보다 손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명확한 정책이나 지침이 부재해 법인의 디지털 자산 수취와 관련해 회계법인 등 각 기관에서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때문에 디지털 자산의 현금화와 함께 명확한 회계 기준이 제시되는 등 관련 정책 손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주희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리는 “디지털 자산 기부 캠페인 진행 시 콘텐츠 기획보다 전자지갑 개설 등 실제 기부 참여 방법에 대해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웠다”고도 했다.
토론자들은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디지털 자산 기부가 나눔 문화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을 했다는 데 동의하면서 “기부 영역 확장을 위해선 더 많은 사례와 지침 등을 함께 공유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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