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운의 사색(史色)] 성자 예수도 한때는 미소년으로 추앙 받았다
"여기, 여기 오래돼 보이는 배 한 척이 있네."
2021년 크리스마스, 이스라엘 문화재청(IAA) 소속 연구원들이 들뜬 모습으로 바닷속을 바라봅니다. 지중해 연안에서 3세기 고대 로마의 난파선을 발견한 직후였습니다. 온갖 진귀한 고대 보물들이 바다에 잠겨 주인을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려 1800년이 지나서야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을 맞게 되었지요.
난파선의 고고학적 가치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연구진이 가장 주목한 건 하나의 금반지였습니다. 가운데 박힌 청록의 원석에 '양을 어깨에 둘러멘 앳된 소년'이 새겨져 있었지요. 학자들은 연구를 거친 끝에 그 소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결론 내립니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아는 예수 그리스도는 갈색 장발, 긴 수염의 30대 백인 남성, 그런데 어리디어린 소년이라니요. 답은 간단합니다. 고대 로마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상상한 예수의 용안은 지금의 모습과는 달랐던 것입니다. 어린 소년에서 중년의 남성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은 어떻게 변한 것일까요. 그 변화를 돌아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일,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성경은 예수를 어떻게 묘사했나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특히 외모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예수의 생김새를 묘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한묵시록에서 재림을 앞둔 예수의 모습을 일부 기록했지만 추상적이기 그지없습니다.
'머리털이 눈같이 희었고, 얼굴은 태양처럼 빛났다.'(1장 13~16절)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도 예수가 유대교 액세서리인 치치트를 차고 있다고만 기록할 뿐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김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구약성경에는 '형상'에 대해 단호히 거부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입니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지니라."
그림이나 동상을 만들어서 이를 숭배한다는 건, 예수 그리스도라는 본질이 아닌 또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는 메시지였지요.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 형상을 구체화하는 데 주저했던 배경입니다.
물고기 형상으로 간접 표현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가 구현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존재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받기 전 고대 로마는 기독교도들을 탄압했습니다. 신앙자들은 자신의 종교를 숨긴 채로 살아가야 했지요. 그들은 지하에서 따로 만나서 예배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대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그려놓고 숭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그 대신 예수는 물고기 그림이나 문자 기호로 간접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물고기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했을까요. 그리스어로 물고기를 뜻하는 'ΙΧΘΥΣ'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문장의 초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서 물고기는 예수가 기적을 펼치는 상징물이기도 했지요. 박해받는 종교인들이 고육지책으로서 '은어'를 만들었던 셈입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는요.
기독교는 공인된 종교로서 포교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자기만의 종교, 신화를 가지고 있는 로마인을 설득하기엔 쉽지 않았죠.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림 하나 없었으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을 무조건 믿으라 하는 건 여의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기 없이 전장에 나가는 군인과 같은 처지였을 것입니다. 이때부터였지요. 기독교도들이 구약성경에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좀 더 유연하게 해석하기 시작한 건요.
많은 종교인이 예수의 형상을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물론 많은 기독교인과 교부들은 이 같은 이미지를 '우상숭배'라면서 반대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후대에 벌어질 종교개혁 역시 이미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으로부터 촉발됩니다).
고대 로마에서 미소년 예수가 등장한 이유
여전히 예수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도 어떻게 구원자의 모습을 구현해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묘수'를 떠올립니다. 고대 로마인들의 신화 속 신들에 빗대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현한 것입니다. 새로 포교해야 할 로마인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었지요. 초기 기독교 미술은 이교 문화를 수용하고 그 형태 안에 기독교적 내용을 채우는 방식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자, 이제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예수'에 걸맞은 인물을 골라야 할 시간입니다. 후보군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술의 신 디오니소스, 태양의 신 아폴론이었습니다. 헤르메스는 인간과 신 사이를 오가는 전령의 신. 예수 역시 신과 인간을 잇는 존재라는 점에서 닮았지요. 헤르메스의 또 다른 정체성은 목동의 후원자. 예수 그리스도 역시 '선한 목자'로 통합니다.
이스라엘 연구진이 발견한 반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미소년으로 묘사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예수를 뽀얀 얼굴에 터럭 한 올 없는 얼굴의 목동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자신들의 헤르메스처럼 말이지요. 로마인들 일부는 예수를 디오니소스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포도주로 기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디오니소스는 술로 기적을 부리는 술의 신이지요. 예수를 "세상의 가장 큰 빛"(마태복음)이라고 한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태양신 아폴론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예수의 이미지는 로마라는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받아 생산된 것이었지요.
근엄한 예수의 등장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30대 중반의 예수 모습이 본격 등장한 건 6세기부터입니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장식된 모자이크가 처음으로 수염 난 예수를 묘사한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예수가 기적을 행하는 모습과, 재판과 죽음을 앞둔 모습이 함께 그려진 그림입니다.
흥미로운 건 기적을 행할 때는 영원히 젊을 것 같은, 수염이 없는 멀끔한 모습이지만, 반대로 처형장으로 가는 길에서는 수염이 무성하게 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대조적인 상징을 묘사함으로써 예수님이 맞이한 상황의 비극을 더하려고 한 시도였다고 미학자들은 해석합니다.
미소년에서 수염 난 예수로 이미지가 변한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고대 로마가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로마 신화 속 인물을 차용할 필요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습니다. 고대 로마에 의한 평화(팍스 로마나)가 막을 내리던 시대적 상황도 근엄하고 존엄한 예수의 이미지를 탄생시킨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하 수상한 시절에 귀엽고 가벼운 이미지의 신의 모습은 영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6세기 이후부터 예수의 그림은 수염 있는 모습이 대세로 자리를 잡습니다.
갓 쓴 선비의 모습까지
예수의 모습이 문화적 맥락에서 재현되고 변용된다는 건 로마 시대 얘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수를 우리 식으로 색다르게 그려낸 화가가 있습니다. 2001년 작고한 운보 김기창입니다. 그는 1952년부터 1년 동안 예수의 시리즈를 30점 연작으로 발표합니다. 화풍뿐만 아니라 외모, 복장, 배경을 모두 조선시대로 구현했습니다.
한옥에서 녹색 한복을 입은 예수가 열두 제자들과 잔칫상을 받는 이 작품은 '최후의 만찬'입니다. 열두 제자 역시 양반집 자제들처럼 갓과 한복을 갖춰 입었지요. 아기 예수의 잉태를 마리아에게 알리는 여인은 선녀로 그려지고, 예수를 시험하는 사탄은 도깨비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운보의 작품이 예수를 가장 토착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물론 그의 친일 행적으로 작품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도 분명 존재합니다.
과학, 예수의 얼굴을 빚다
예수의 '진짜' 얼굴을 아무도 알 수 없다지만, 과학은 포기를 모르는 학문입니다.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리처드 니브 교수는 법의학 기술을 동원해 1세기에 살았던 30대 유대인 남성의 모습을 재현합니다. 사막 생활과 고된 노동에 시달린 평균적인 남성의 모습을 구현함으로써, 당시 예수의 모습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겠다는 시도였지요.
니브 교수는 "이 모습이 정확히 예수님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 남성들의 평균 얼굴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보다는 더 정확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진짜 예수의 얼굴은 아닐 것입니다. 대한민국 표준 얼굴을 구현했다고, 그게 바로 내 얼굴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얼굴을 알 수 없더라도, 그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따뜻한 메시지입니다.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어보는 건 어떠신지. 성탄절은 무릇 그런 날이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 알롱달롱한 이야기를 생각하는 사색(史色)입니다.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역사의 숲으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재미 혹은 의미. 두 미(美) 중 하나는 반드시 챙기겠습니다.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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