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상대 7건 소송 ‘강제동원 피해자 대모’…고 이금주 평전 출판 기념회
“우리는 그 무서웠던 2차 세계대전을 잊어버릴 수도 없고, 또 잊어서도 안 될 일이다.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인계해서 계속 제사도 드리고, 또 모임에도 가서 참석 함으로써 사망한 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국언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17일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 광주유족회장의 광주유족회 마지막 회의록(229차·2011년 4월10일)을 담담히 읊었다. 이 이사장은 이 회의록 내용이 사실상 이 회장의 마지막 당부이자 ‘유언’이라며 “어떻게 역사를 전진시키고 앞으로 이끌어 가는지 우리가 그 역사의 증인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날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전일빌딩 다목적 강당에서 <어디에도 없는 나라>의 출판 기념회가 열렸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는 일제 강제공원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이 회장의 고뇌와 투쟁이 담겼다. 출판기념회에는 이 회장의 손녀인 김보나씨와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이춘식 할아버지의 자녀인 박상운·이고은씨,‘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1920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출생한 이금주 회장은 결혼 2년 만에 일제에 의해 남편인 김도민씨를 빼앗겼다. 남태평양 타라와섬에 끌려간 김씨는 미군과의 전투에서 1943년 11월 25일 사망했다. 고인은 지난 3일 조선인 처음으로 유해가 봉환된 최병연씨와 동원 시기, 사망 장소, 사망 일자가 일치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현재까지 유골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를 결성한 이 회장은 1992년 ‘광주천인소송’을 시작으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평생을 일제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앞장서 왔다.
법정 진술, 시위, 일본 지원단체와 교류 등으로 노구를 이끌고 일본을 오간 것만 80여 차례가 넘었지만, 일본 법정에서는 번번이 쓴맛을 봐야 했다. 일한회담 문서 공개 소송을 제외하고 일본 법정에서 ‘기각’ 당한 것만 17차례에 이른다. 그러나 이 회장은 포기하지 않고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억울한 사연을 일일이 일기 등 기록으로 남겼다.
이 회장의 노력은 2018년 대법원 배상 판결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부는 2019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일본의 사죄를 끝내 받지 못한 채 2021년 12월 102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이 회장의 별세 2주기이자 책이 출간된 지 11개월 만에 열린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책이 출간된 직후 출판기념회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의 인권상 무산과 일본 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하는 제3자 변제안을 정부가 추진하면서 차일피일 미뤄지게 됐다고 시민모임은 설명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통상의 책 판매와 소개가 목적이 아닌 이 회장을 기리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각오를 다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추모 공연, 영상 상영, 최봉태 변호사의 회고 대담과 함께 독후감 대회 시상도 이뤄졌다.
이 회장 손녀 김씨는 “할머니가 걸어왔던 과거가 현실을 걷는 발판이 되고, 할머니가 목적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길 바란다”며 “여기 계신 분들과 함께라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카하시 마코토 대표는 “1999년 3월부터 이 회장과 여러차례 연락하며 활동을 이어오는 데 큰 힘을 얻게 됐다”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한 이 회장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축사 영상을 통해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에 적힌 글처럼, 지는 싸움에서도 이기는 삶을 산 이 회장의 염원을 기억하고 뜻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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