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4년만에 중국서 고위급 회담…관계 ‘관리’냐 ‘강화’냐
내년 수교 75주년 맞아 “관계 강화” 논의
‘신냉전’에 연대와 거리두기 병행한 북·중
“밀착 피할 것” “새로운 차원 강화” 전망
이달말 북한 전원회의서 김정은 발언 주목
북한과 중국이 내년 수교 75주년을 맞아 4년여 만에 중국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북·러 관계에 비해 다소 거리감을 보여온 북·중 관계가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어느 정도로 강화될지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7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표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외무성 부상 박명호 동지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부부장 손위동(쑨웨이둥) 동지 사이의 회담이 15일 베이징에서 진행되였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회담에서 쌍방은 조·중(북·중) 외교관계 설정 75돐이 되는 2024년에 쌍무관계를 강화 발전시켜나갈 데 대하여서와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앞으로 조·중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적 협조를 강화할 데 대한 문제들을 토의하였다”고 밝혔다.
회담에 참여한 박명호 외무성 부상은 ‘중국통’으로 평가된다. 앞서 중국 주재 북한대사관 임시대리대사와 공사를 지낸 바 있다.
양국 고위급 회담이 중국에서 개최된 건 북한이 2020년 1월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경을 봉쇄한 이후 사실상 처음이다. 북한 공식매체 보도상으로는 2019년 8월 당시 김수길 북한군 총정치국장과 먀오화 중국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의 회담 이후 4년여 만이다.
북·중이 수교 75주년을 맞아 관계 강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정주년(5·10년으로 꺾어지는 해)을 맞은 행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최근 동북아시아에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형성되며 두 나라는 연대하고 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무력화시키며 외교적 뒷배로 역할하고 있다. 핵 무력을 고도화하며 미국과 맞서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요인이 작용했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은 중국과 경제적 교류를 늘리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 북·중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중단된 외교적 접촉을 재개했다. 지난 3월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가 내정되고 2년여 만에 북한에 들어가 공식 업무를 시작했고, 지난 7월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과 지난 9월 북한 정권수립 75주년을 기념해 중국 당·정부 대표단이 방북했다.
북·중 관계가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강화될지가 관심사다. 북한은 올해 수교 75주년이었던 러시아와의 연대에 집중하며 중국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은 북·러 군사협력에 다소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KBS 방송에 출연해 “중국은 북한과 동맹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에 러시아와 북한 간 밀착 관계가 형성돼있어서 나름대로 불편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내년 미국 대선 등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북·중 관계가 획기적으로 강화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화에서 “미 대선을 앞두고 중국이 북한과 지나치게 밀착하는 모습을 피하며 신중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며 “중국은 북한과 관계가 소홀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수준에서 교류하고, 북한은 경제 분야에서 중국을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쪽에 방점을 찍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김정은이 지난 9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대외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말한 큰 흐름이 바뀌지 않은 상황”이라며 “북·중이 관계를 개선한다기보다는 서로 관리하는 수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중 관계가 더 강화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미가 지난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제2차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열어 한반도에서의 핵전략 기획·운용 등 확장억제 강화를 공언한 터라 북·중의 전략적 연대 필요성이 커졌다는 주장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화에서 “중국은 한·미 NCG 결과가 북한을 넘어 자신을 겨냥한다고 볼 것”이라며 “한·미의 군사적 압박이 강화될수록 북·중 간 공조가 비례적으로 강화돼 새로운 차원으로 고도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달 하순 예고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신년사격 연설을 통해 내년 북·중 관계 강화 방침을 내놓을 수 있다. 홍 위원은 “외무성 부상이 고위급 접촉을 한 상황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북·중 관계를) 언급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원칙적인 내용 이상으로 의미 있는 발언이 나올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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