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인구’ 아닌 ‘인간’ 문제로 접근해야 [배정원의 핫한 시대]
스웨덴 ‘라테파파’에서 배워야
(시사저널=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보건학 박사))
최근 서울 도봉고등학교에서 성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어른 성교육을 주로 하기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인데,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지난여름 도봉고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재직하고 있는 도봉고가 서울에서 처음으로 폐교되는 일반 고등학교인데, 도봉고 마지막 졸업생이 되는 제자들에게 필요한 강의를 들려주고 싶다'는 간곡한 부탁이 담겨 있었다. 서울에 있는 일반고가 학생 수가 모자라 폐교한다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제자를 위한 선생님의 애정에 감동해서 강의를 약속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원생이 모자라 폐원하기 시작했다는 기사를 봤지만, 고등학교 폐교 소식을 들으니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가 실감 났다.
"인구 감소로 2050년 韓 성장률 마이너스"
우리나라 인구 감소는 '대한민국 소멸'이라는 위기의식 속에 전 세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뒤늦게나마 위기를 느낀 정부와 관련 단체가 적지 않은 예산과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다지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의 합계출산율이 2023년 4분기에는 0.6명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실제 서울 수도권의 합계출산률은 이미 0.54명에 도달했다. 서울 수도권에 가장 많은 가임연령 인구가 살고 있음에도 출산율이 높아질 가능성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최근 뉴욕의 한 컬럼니스트가 '한국의 인구 감소가 중세 흑사병이 휩쓸어간 유럽의 인구 감소보다 더 심하다'는 분석을 내놔 위기감이 켜졌지만 경제 상황은 암울하기만 하다. 12월3일 한국은행에서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 한국 경제 실질 추세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정부와 기관이 저출생 원인을 연구하고 많은 정책을 폈지만 문제 인식과 대처가 어긋나면서 실패했다. 이는 저출생 원인을 너무 과소평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는 출산을 강권하지만, 사회와 기업은 출산과 육아를 반기지 않는다. 그동안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된 저출생 원인은 크게 고용과 승진, 임금에서의 남녀 성차별,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 밝지 않은 노후였다. 그나마 자녀를 많이 낳는 직업군인 공무원과 군인 가정을 보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안정된 고용과 주거, 노후 보장(연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답이 나온다.
가임연령 남녀들은 고용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극화돼 불안정하고, 부동산 가격이 올라 안정된 거주가 어려우며, 계층사다리는 높고, 노후도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이에 더해 결혼, 출산, 육아로 인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이 지워지고, 일자리를 잃는 경력 단절을 각오해야 하며, 재취업할 수 있다고 한들 육아와 가정 내 돌봄 책임으로 인해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를 감수해야 한다.
태어난 아이들 역시 극심한 경쟁과 과정보다는 성과 위주로 판단하는 환경 때문에 고통받는다. 선행수업을 촉구하는 값비싼 사교육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우며, 기후 환경은 날마다 더 나빠지고, 미래의 그들이 부양해야 할 노인 수는 점점 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성장한 그들도 행복하지 않았고, 미래의 아이들도 행복할 수 없다면, 이런 사회에서 어느 누군들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점점 더 결혼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삶을 설계하는 이유다. 실제로 12월1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신혼부부통계'를 보면 신혼부부는 2021년 110만1000쌍에서 1년 만에 10만 쌍 넘게 감소해 2022년 100만 쌍을 겨우 넘었다. 역대 최저 기록이다. 또 초혼부부 중 자녀가 없는 부부는 전체의 46.4%로 거의 절반에 가깝다.
"일-가정 양립이 아니라 하나가 돼야"
출생률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해외언론은 '한국의 저출생은 남녀 성차별을 개선하고 성평등을 이뤄야 인구절벽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성평등은 점점 요원해지는 느낌이다. 과거 독일은 1995년 합계출산율이 1.25명으로 최저를 기록하자 무엇보다 출산 전후 여성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했다. 육아휴직을 써도 경력에 불이익을 줄 수 없도록 노동법에 보장되어 있으며, 남편의 1년 육아휴직은 오히려 승진 포인트가 된다. 스웨덴에서는 '라테파파', 어린아이를 돌보며 동네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는 젊은 아빠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남편들의 육아휴직 조건을 개선하고 독려했다. 여성들의 입사 면접 시 '임신 계획'을 묻는 것은 위법이다. 또 육아휴직 기간에 해고를 금지하고 복직 시 기존 직책으로 그대로 복귀하며, 휴직 이전보다 낮은 임금을 주는 것도 불법이다. 이 모든 것이 2007년 시행된 '연방 부모수당 및 부모 휴직법'에 의거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남편들의 '육직'이 증가하는 '아휴' 추세지만 이들의 70%는 대기업에 재직 중이다. 중소기업에서는 육아휴직이 보장되지도 않고 사용할 경우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환경이다. 무엇보다 남녀 모두 일을 하며, 일과 경력은 남녀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하다는 인식 개선 없이는 마음 편한 육아휴직은 생각할 수도 없다.
출생률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일과 가정이, 양립 정도가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회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어야 하고, 회사에 적정한(안전하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보육시설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양육을 이유로 조퇴나 당일 결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면, 노키즈존이 비난받는 사회가 되면 아기들을 키울 환경은 좀 더 좋아질 것이다. 보육시설도 사설보다 국립, 공립이 더 많아져야 한다. 노동시간은 더 줄어야 한다. 노동시간은 출생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른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의 인식은 개인이 바꿀 수 없고 정책이 바꾸는 것이 더 쉽다.
결국 대한민국의 저출생 문제는 '인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저출생은 사회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지금까지 축적되고 개선되지 않은 우리 사회와 국가 정책적 문제들의 잘못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아기를 낳으라고 할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인 분배가 있다면 인구가 준다 해도 우리는 감당할 수 있다. 물론 사회 구성원들이 희망을 갖고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인구가 더 줄지도 않겠지만. 수치상의 '인구'가 아니라 살 만한 곳, 미래 희망이 있는 곳, 그래서 '현재와 미래의 인간'이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인구 감소는 멈출 것이다.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제까지 오랜 세월 동안 경제적인 성과를 위해 주변에 쌓이는 문제들을 모른 척하고 지내온 만큼 쌓인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데는 지난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올바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일단 방향을 바꾸고 일관되게 한 걸음씩이라도 나가기 시작한다면 분명 변화도 생기고 희망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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