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선택과목 최고점, 비공개가 답일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김유나 2023. 12. 1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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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수능 선택과목
교육 정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는 최근 교육 기사에 자주 쓰이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 논란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가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문송합니다.’ 몇 년 전부터 많이 쓰이는 유행어입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란 뜻인 이 문장은 이과생보다 취업률 등이 떨어지는 현상을 두고 문과생이 자조적으로 쓰는 말입니다. 주로 구직 현장에서 쓰이던 이 말은 최근 대입 판에서도 종종 등장합니다. 배경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선택과목’이 있습니다. 

과거 수능 수학은 자연계열 진학을 준비하는 이과생과 인문계열 진학을 준비하는 문과생이 가·나형으로 나뉘어 시험을 보고 등급도 따로 산정했습니다. 그러나 2022학년도에 통합수능이 도입되면서 국어와 수학 모두 문·이과 구분 없이 ‘공통과목+선택과목’ 구조가 됐습니다. 수학은 30문항 중 22문항은 공통과목, 8문항은 선택과목(미적분, 기하, 확률과통계)입니다. 통합수능은 문·이과 구분을 없애 융합 인재를 양성하고, 진로·적성에 따른 과목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취지입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1월 16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다만 현장에서 문·이과 구분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통상 자연계열 준비 학생은 미적분·기하, 과학탐구를 선택해 입시업계에서는 이들을 이과생으로, 확률과통계와 사회탐구 선택자는 문과생으로 봅니다.

저마다 다른 과목을 보다 보니 과목 선택에 따라 시험 난도와 점수에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과목의 난도를 똑같이 맞추는 것은 신의 영역이기에 이런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표준점수’ 체계가 더해지면서 차이를 키운다는 것입니다. 표준점수는 원점수가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는 점수로, 시험이 어려울수록 점수가 높아집니다. A과목은 쉽게, B과목은 어렵게 출제됐다면 두 과목 만점자가 똑같이 100점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겠죠.

표준점수 산정에 같은 과목을 선택한 이들의 공통과목 점수도 영향을 미칩니다. 수학 미적분 선택자들이 받은 공통과목 평균점수가 확률과통계 선택자들의 평균점수보다 높으면 미적분 표준점수가 더 올라가는 식입니다.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이과생들은 확률과통계 선택자보다 수학에 익숙한 경우가 많아 미적분 표준점수는 확률과통계보다 높게 형성됩니다.

두 과목의 표준점수 최고점 격차는 2022·2023학년도 3점에서 올해 11점까지 벌어졌습니다. 미적분 만점자는 확률과통계 만점자보다 11점을 더 받는 셈입니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는 올해 미적분 원점수 88점이 확률과통계 만점자와 표준점수가 같다고 추정했습니다. 미적분에서 3∼4문제를 틀려도 확률과통계 만점자와 표준점수가 같다는 것이죠. 종로학원은 수학 1등급 중 확률과통계 선택자는 3.5%에 그친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문과침공’이란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당초 자연계열에 흥미가 있어 미적분·기하를 선택한 수험생이 점수가 유리한 점을 이용해 문과생이 가던 인문계열 학과에 대거 진학하는 현상입니다. 적성보다 ‘학교 간판’을 고려한 선택이란 점에서 과거의 교차지원과 결이 다릅니다. 지난해 서울 상위권 대학 인문계열 학과 정시 합격생의 절반 이상은 미적분·기하 선택자라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일부 대학은 그 비율이 80%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능 미적분 선택 비율은 2022학년도 39.7%에서 올해 51%로 늘었습니다. 적성·진로 때문이 아니라 점수 따기 유리한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선택과목 도입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입시업계에서는 “미적분을 잘해야 인문계열 진학에 유리한 것은 난센스”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문과침공으로 입학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하는 현상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매년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외면한다는 인상도 듭니다. 교육 당국은 지금까지 선택과목별 최고점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알려진 최고점은 학원에서 원점수 만점을 받은 수험생의 표준점수를 확인해 발표한 것입니다. 교육부는 “선택과목별 최고점을 공개하면 유리한 과목 쏠림을 부추길 수 있다”며 부작용을 우려합니다. 교육부가 발표하지 않는다고 꼭꼭 숨길 수 있는 점수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뉴시스
교육부는 논란을 의식한 듯 얼마 전 발표한 ‘2028학년도 대입개편안 시안’에 수능 선택과목을 없애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교육부도 선택과목의 한계를 인식한 것이죠. 2028학년도까지는 아직 3개년도의 대입이 남아있지만, 그 사이에 표준점수 최고점을 공개할지는 미지수입니다. 2028학년도까지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는 그냥 뭉개보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교육부는 최근 고액 대입 컨설팅을 단속하고 공공 컨설팅을 강화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표준점수 최고점 같은 기본적인 정보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공교육을 믿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교육부가 숨기는 정보가 사교육업체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공교육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교육부가 이야기하는 공교육 신뢰 회복, 선택과목 유불리 문제 해소의 출발점은 문제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정보 공개가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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