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연대의 끈 이은 재난참사 피해자들[현장]
“지금이라도 만나 다행입니다”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을 때 손잡아줘서 고맙습니다”
국내 재난참사 유가족들이 재난참사피해자연대(연대) 발족식에서 한목소리로 말했다. 10명 단위로 둘러앉은 이들은 약 3시간 동안 서로의 참사 경험과 연대에 바라는 바를 이야기했다. ‘나 ooo은 재난피해자권리센터를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이 책상 위에 놓였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공간모아 빌딩에서 재난참사피해자연대 발족식이 열렸다. 삼풍백화점 참사(1995)·씨랜드 화재 참사(1999)·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1999)·대구지하철 참사(2003)·가습기 살균제 참사(2011)·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 참사(2013)·세월호 참사(2014)·스텔라데이지호 참사(2017)등 8개 참사의 유가족·관계자 120여 명이 모였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참사 유가족들은 지난해부터 4.16재단을 통해 만남을 이어왔다. 김광준 4·16재단 이사장은 “재난참사가 발생했을 때 앞선 재난의 피해자들이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유가족을 만나 함꼐 슬퍼하고, 분노하고, 미안해했다. 이 마음들을 모아 8개 재난 피해자들의 연대가 시작됐다”면서 “세월호 이전에는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지만 사회가 변한 만큼 앞으로는 더 많은 피해자가 연대로 모일 것”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지상준군의 어머니 강지은씨(54)는 참사를 거치면서 연대의 힘을 느꼈다. 정치권의 냉대 속에서 그의 마음을 다독인 건 다른 시민들의 손길이었다고 한다. 참사 유가족이 마주한 막막함을 잘 아는 강씨는 참사 피해자 연대를 구성하는 일에도 선뜻 나섰다.
강씨는 지난해부터 피해자연대 준비위원으로 활동하며 전국 각지의 유가족을 만났다. 추모 기일을 함께 챙기는 것부터 시작했다. 각자 참사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는 시간을 가지고, 추모비 관리 예산 확보에도 함께 목소리를 냈다. 언젠가부터는 참사 유가족들이 먼저 강씨를 찾아오기도 했다. 강씨는 “모두 마음에 쌓아놓은 것들이 많았다. ‘세월호 참사 때에는 어떻게 했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었다”면서 “나만 불행해서 참사를 겪었다고 여겼는데 참사를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서로 다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을 뭉치게 한 것은 ‘동질감’이었다. 참가자들은 발족선언문에서 “새로운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애끓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참사를 외면하고 지우는 사회, 국민이 아닌 것처럼 대하는 정부 등 모든 참사는 너무 닮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겪은 참사를 다른 이가 겪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같은 상황에 부닥친다면 함께 위로하기 위해 함께 모였다”고 했다.
정부의 무관심과 책임 회피, 이를 자양분 삼은 2차 가해성 발언은 여러 참사에서 되풀이됐다. 유가족의 알 권리와 애도할 권리는 금세 잊혔다. 대구지하철참사 유족 대표를 맡은 윤석기씨(57)는 “당시 유가족들은 지방자치단체에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묻고자 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다. 당시 유가족들의 진상규명 요구가 시민들 사이에서는 부당한 주장처럼 여겨지고 ‘손해배상 받고 끝내라’는 식의 주장이 판을 쳤다”고 기억했다.
그는 “최근에는 병폐가 더 심해졌다. 세월호 참사 때부터 시작해서 이태원 참사까지 유가족들이 정파적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면서 나타난 새로운 병리 현상”이라며 “연대 발족을 계기로 피해자가 혼자가 아니며 선한 이웃들이 함께한다는 걸 느끼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이재원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족회장은 “당시 정부는 유가족을 설득해 장례절차를 신속하게 끝내는 데만 신경 썼고, 시장은 보상금을 받아 가지 않으면 법원에 공탁을 할테니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면서 “참사 유가족들이 마주하는 이런 현실을 해결해나가는 데 힘을 보태려 한다”고 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유가족 김덕화씨(69)는 “당시에는 공무원과 정부의 안이한 태도로 참사의 애도는 미완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도 줄었다”면서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고자 함께했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피해자 권리 보장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 유가족은 “온라인상에서 2차 가해성 발언을 반복하는 이들이 처벌받을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숨지 않고 앞으로 나설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날 재난피해자권리센터(센터) 설립을 위한 ‘곁들의 날’ 행사도 같이 진행됐다. 센터는 재난 피해자를 위한 기금 지원 및 연대 사업, 재난 안전 전문가 양성 사업 등을 운영한다. 참가자들은 “센터 지원금이 투명하게 사용되기를 바란다” “재난피해자가 한 번에 관련 절차를 처리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가 제공됐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냈다. 센터의 명칭은 시민투표를 통해 유가족·시민과의 연대를 뜻하는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로 정해졌다. 센터는 내년 1월쯤 개소할 예정이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강혜경 “명태균, 허경영 지지율 올려 이재명 공격 계획”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수능문제 속 링크 들어가니 “김건희·윤석열 국정농단 규탄” 메시지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이재명 “희생제물 된 아내···미안하다, 사랑한다”
- ‘거제 교제폭력 사망’ 가해자 징역 12년…유족 “감옥 갔다 와도 30대, 우리 딸은 세상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