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구성…평택 교차공간818 ‘그린라이트’
공공연히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부정 당해온 것들이 있다. 무의식에 억압 당한 불쾌한 기억처럼 그 존재가 일상 세계로 나오려는 시도는 일체 부정 당한다. 반대로 그곳을 들여다보려는 행위도 터부시한다. 불법이면서 동시에 실재하는 공간인 성매매 집결지가 그러하다.
‘교차공간818’과 ‘공간 삼리’에서 지난 1일 개막한 평택1구역 재개발지역 전시프로젝트 ‘그린라이트’의 출발점이다. 재개발로 곧 사라질 ‘쌈리’(평택역 인근 성매매 집결지)는 그간 열려 있으면서도 닫힌 공간으로 존재했다. 전시 제목 ‘그린라이트’엔 이제 쌈리로 들어갈 수 있다는 청신호이자 쌈리란 공간과 이곳에서 이뤄지던 삶의 기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청신호란 의미가 담겼다.
강범규, 녹음(김한우, 문소현, 박유석, 수무), 박영희, 안민욱, 양성주, 평택미클, 형태와 소리(이경민, 한수지), 황혜인 등 8인의 작가가 참여한 이번 전시는 일부 여성들이 이곳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지상 위의 섬’으로 보고, 회화·사진·설치·영상·소리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간을 기억하거나 재구성했다.
전시는 교차공간818에서 출발한다. 식당 건물 2층에 있던 여관을 통째로 전시 공간이자 지역의 기억을 아카이브하는 장소로 탈바꿈시킨 이곳에선 변화의 과도기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평택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강범규 작가는 쌈리 입구 아스팔트 도로에 새겨진 ‘청소년 금지구역’ 문구를 부수고 ‘여성안심구역’, ‘문화의 거리’를 그려내는 작업으로 ‘이제 더는 이곳이 성매매 집결지가 아니다’란 공간의 재편을 선언한다.
전시는 ‘공간 삼리’로 장소를 옮겨 이어진다. 성매매 업소로 쓰인 건물을 리모델링 없이 기존 구조 그대로 사용했지만 전시 작품은 공간을 재구성해 관객에게 생경한 풍경을 선사한다. 형태와 소리의 ‘빛 조형 언어’, 녹음의 ‘물의 자리, 돌 풀 바람’은 각각 조명과 소리 등 전자적 요소와 제주도에서 수집한 소리와 영상을 토대로 이곳을 낯선 장소로 느끼도록 구성했다.
성매매업소 점포였던 공간의 특성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안민욱 작가는 ‘영적(映赤) 드로잉’을 통해 이 공간이 주는 낯선 감정과 생각을 홍등가를 연상시키는 조명이 내리쬐는 한지에 그렸다. 또 관객이 직접 사인펜으로 작품에 그림을 덧그리도록 참여를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한지를 찢거나 훼손할 것 같은 아슬한 경험으로 성매매 업소였던 공간이 주는 불안한 감정이 전해진다.
평택미클은 이곳에서 발견된 메모, 도서, 인형 등을 모아 업소 내부를 재구성한 ‘하나의 방’을 통해 쌈리의 특수한 일상과 보통의 일상을 구현했다. 방에 놓인 일상용품을 통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구가한 사람이 이곳에서 살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시에 대상화된 성매매 종사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충돌시킨다.
반면 양성주 작가는 도시형 생활주택과 공동주택 건설로 폐쇄를 앞둔 이곳의 소멸과 상실, 기억과 치유를 서화에 담았다. 앞으로 이 일대가 희망적인 공간으로 변화하길 기원하는 작가의 소망이 엿보인다.
이정은 교차공간818 전시감독은 “재개발이 이뤄지기 전 사실상 마지막 남은 성매매 집결지인 이곳의 공간과 시간을 탐색한 작업을 통해 이곳의 특수한 삶과 그 속에서의 일상적인 삶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내년 1월14일까지.
안노연 기자 squidgam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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