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마셔야 좋은 직원인가요”…회식이 ‘괴롭힘’이 될 때는?
“술자리 회식이 너무 잦습니다. 전체 회식 뿐만 아니라 돌아가면서 직원들끼리 술자리를 만들어 친목도모를 해야 하고, 그런 자리에 많이 참여할수록 적극적인 직원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연말 들어 회식 자리가 늘면서 회식과 관련된 ‘직장갑질’ 사례도 늘고 있다. 주로 회식 참여를 강제하거나 일방적으로 회식에서 배제하는 방식이다. 두 경우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는 지난 1월1일부터 12월12일까지 신원이 확인된 회식 관련 메일 제보가 48건 접수됐다고 17일 밝혔다. 48건 중 ‘회식 강요’와 관련된 제보가 30건(62.5%), ‘회식 배제’ 관련 제보가 18건(37.5%)이었다.
‘회식 강요’를 제보한 직장인들은 회식 참여를 업무평가에 반영하는 분위기가 문제라고 했다. 직장인 A씨는 “고된 업무로 지친 제게 (상사가) 부서 회식 불참을 질책하며 ‘회식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을 어떻게 생각해야겠냐’고 말했다”며 “결국 퇴근 후 다시 지하철을 두 번을 갈아타면서 회식에 참석했다”고 했다. 직장인 B씨는 “일과시간 이후 단체 회식을 진행하면서 불참할 경우 불참사유를 적어 내부 결재를 받도록 했다”고 했다.
회식 자리에서 음주를 강요하는 문화도 심각했다. 직장인 C씨는 “회식에서 상급자가 갑자기 제게 ‘술을 왜 마시지 않냐’면서 ‘너는 동료가 뭐라고 생각하냐’고 따졌다”고 했다. 다른 직장인은 “상사가 상사와 술 마실 때는 화장실도 가서는 안 된다며 남은 술을 다 마시라고 해서 결국 집 가는 길에 토했다”고 했다.
여성의 경우 회식 자리에서 젠더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여성 직장인 D씨는 “부장이 2차 회식 후 제게 단둘이 3차 회식을 가자고 제안했다”며 “무조건 단둘이 가야 한다고 해서 어쩔수 없이 갔는데 그 자리에서 부장은 제 외모와 몸매를 평가했고, 저는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회식에서 일방적으로 배제하며 따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회식에서 배제된 직장인들은 “한 달째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업무를 하고 있다. 저를 빼고 회식까지 했다”, “저를 괴롭히는 상급자가 어느날 아침 제게 와서는 ‘앞으로 회식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 등 따돌림을 호소했다. “괴롭힘을 신고하기 전에는 회식 참석 여부를 서로 물어보기도 했는데, (신고) 이후 회식 일정을 제게 공유하지 않고 가자고도 하지 않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고 토로한 경우도 있었다.
‘회식 강요’와 ‘회식 배제’ 모두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진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에도 회식 참가 강제가 괴롭힘 예시로 등장한다.
직장갑질119가 지난 6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회식과 관련된 인식을 조사한 결과, ‘팀워크 향상을 위한 회식이나 노래방 등은 조직문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응답은 100점 만점에 71.2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하려면 술이 싫어도 한두 잔 정도는 마셔줘야 한다’는 응답도 73.3점으로 높았다.
이상운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회식을 둘러싼 강압과 배제를 직장 내 괴롭힘이라 말하면 그 사람이 오히려 사회성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며 “회식을 통해서만 소통과 단합이 가능하다는 고리타분한 관점, 술과 저녁 회식을 당연시 하는 낡은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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