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언어’ 속에 외계생명체와의 소통 실마리가 있다?
20여분간 ‘대화’ 형태 반응 확인
외계생명체 소통 연구 기반 마련
2016년 개봉한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컨택트>에서는 미래 어느 날, 외계생명체들이 우주선에 나눠 타고 지구 곳곳에 도착한 상황이 묘사된다. 그런데 외계생명체들은 장기간 우주선에 머무르기만 할 뿐 인류를 향해 적의도, 호의도 표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은 루이스 뱅크스 박사(에이미 아담스 분)가 외계생명체와 소통하려 나선다. 언어학자인 뱅크스 박사는 영어를 외계생명체에게 알려주고, 자신도 외계생명체의 언어를 배우려고 애쓴다. 통역사가 되려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외계생명체는 뱅크스 박사에게 지구 방문 목적을 말한다. ‘무기를 주다’라는 한마디였다. 인류는 패닉에 빠진다. 이 메시지를 지구 침공 의지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해였다. 외계생명체는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을 갖게 한 자신들의 언어 체계를 ‘무기’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즉, 인간도 자신들의 언어를 배워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기를 원한다는 ‘호의’를 보인 셈이었다.
언젠가 진짜 일어날지 모르는 이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 현실 속 과학계가 나섰다. 미국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 등은 16일(현지시간) ‘외계지적생명체 탐색계획(SETI)’ 연구소와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캠퍼스, 알래스카 고래재단 소속 과학자들이 구성한 공동 연구진이 ‘혹등고래’ 언어를 연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외계생명체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연구진이 혹등고래에 주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연구진은 SETI 공식 자료를 통해 “혹등고래는 복잡한 사회시스템을 유지한다”며 “물속에서 그물 기능을 하는 거품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가 하면 노래를 하고 개체 간에 대화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능이 뛰어난 혹등고래를 언젠가 접촉할지 모를 외계생명체로 가정해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지 알아보려 한 것이다.
연구진은 알래스카 인근 바다에서 사전에 녹음한 다른 혹등고래 음성을 20여분간 바닷속에 수중 스피커로 방출하는 실험을 했다. 음성이 물속으로 나가자 스피커 주변 100m 이내로 연구진이 ‘트웨인’으로 이름 붙인 38살의 암컷 성체 혹등고래가 접근했다.
연구진은 실험 결과, 트웨인이 스피커에서 방출된 음성을 듣고 ‘대화’를 했다고 결론 냈다. 트웨인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주고 받듯이 소리 내는 모습이 포착돼서다. 사람이 자동응답기(ARS)에서 나오는 물음을 듣고 답하듯 트웨인도 그렇게 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혹등고래와 인간이 소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실험에 등장한 ‘트웨인’이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심지어 연구진은 자신들이 트웨인에게 수중 스피커로 들려준 혹등고래의 음성이 무슨 내용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방출한 음성에 혹등고래가 반응한 상황만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실험은 화성을 연구하기 위해 환경이 유사한 남극 대륙을 사전 탐사하는 일과 유사하다”며 “향후 외계 신호에 적용할 수 있는 ‘언어 필터’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연구”라고 설명했다. 행성 간 서로 다른 언어를 통역할 기술을 고안하겠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인간이 아닌 종과 연계된 통신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수학적인 이론을 동원한 연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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