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엔 빵빵, 포르쉐엔 벌벌…“레이 따위가” 욕하다 ‘회장님’ 내리니 ‘철렁’ [세상만車]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해서야
차만 명품? 사람도 차도 명품이어야!
줄리아 로버츠 소식을 전하는 해외토픽을 읽다 이 장면과 함께 웹툰 작가 주호민의 ‘포르쉐 발언’이 떠올랐습니다.
옷차림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처럼 자동차 종류로도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적 현상 때문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토리야마 아키라 만화에 나오는 포르쉐를 좋아했다”면서 “작년에 마흔 살이 된 기념으로 드림카를 장만하려다가 어영부영 넘어갔는데 염따 선생의 ‘질러라,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해라’는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구입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포르쉐 911을 사기 전에는 기아 경차인 레이를 탔습니다. 출고가 기준으로 포르쉐 911 카레라S가 레이보다 10배 이상 비쌉니다.
주호민은 레이를 포르쉐 911로 바꾼 뒤 달라진 ‘대접’에 대해서도 소개했습니다.
그는 “레이를 탈 때보다 (상대 운전자들이) 저를 관대하게 대해준다”며 “끼어들기를 할 때, 레이를 몰 때는 잘 안 껴줬는데 포르쉐로 깜빡이를 켜고 들어가려고 하면 양보를 많이 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흔하다는 뜻이겠죠. 럭셔리 브랜드 행사에 초청받아 낡은 제 차를 끌고 가 주차하고 내렸을 때가 생각나네요.
행사요원이 저와 차를 슬쩍 쳐다보더니 “행사 참석자들만 주차하는 곳이니 여기 말고 다른 곳에 세우세요”라고 말했죠. 저도 ‘고향’에서는 “귀티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말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차량의 경적 울림은 사람이 아닌 차종에 따라 좌우된다고 합니다. 현장 실험도 이뤄졌습니다.
연구자들은 고급차량과 저가차량을 대상으로 녹색 신호등이 바뀌고 몇 초 지나서 뒤차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는 지 측정했습니다.
뒤차 운전자들은 저가차량에 경적을 더 빨리, 더 많이 울리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사회학자 안드레아스 디크만은 독일 뮌헨에서 차량의 ‘등급’과 공격성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길을 막는 차량은 ‘중급’ 폭스바겐 제타가 담당했습니다. 제타가 길을 막았을 때 경적을 울리고 전조등을 켜는 것을 공격성 지표로 삼았습니다.
실험 결과, 제타보다 고급차량을 모는 운전자일수록 공격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비례해서 높아졌다고 합니다.
차종은 사회적·경제적 서열을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고급차량을 타면 자신도 그만큼 서열이 상승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 나아가 저가차량 운전자는 서열이 ‘낮은 사람’, 자신은 ‘높은 사람’이라고 간주해 자신의 서열을 뽐내면서 상대방을 억누르고 싶어하는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낮다고 여겨지는) 차종의 운전자에게는 난폭하게 굴어도 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주변에 있는 기아 모닝, 현대차 캐스퍼, 쉐보레 스파크 등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신경질 냅니다.
사실 서열이 낮은 차종들을 무시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위장술을 사용했습니다.
“우리 집에 금송아지 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도로에서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값이 얼마인지, 은행 통장에 예금은 얼마나 있는 지 등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차량만으로 자신의 신분·계급과 경제적 상황을 철저히 위장할 수 있습니다. ‘위장 신분’으로 어쩌면 자신보다 서열이 높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셈이죠.
집 다음으로 비싼 차는 다릅니다. 짝퉁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가격을 크게 아낄 수 있는 중고차는 ‘명품백’과 달리 낡은 티가 팍팍 납니다.
궁하면 통합니다. 비싼 차를 팔아야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는 자동차·금융회사들이 경제적 서열을 위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알려줬습니다.
‘조삼모사’이지만 목돈이 없어도 탈 수 있는 할부·리스·렌트 등입니다.
카푸어(Car-poor)로 전락할 수도 있지만 ‘높은 사람’으로 위장하는 맛에 중독되면 지금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약자에게 매우 강하고, 강자에게는 매우 약한 ‘양아치 운전자’들이 참 많습니다. 이런 행태를 볼 때마다 세상 참 살 맛 나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비싼 차라며 도로에서 보복운전이나 갑질을 하다 망신을 당할 때, 차종으로 정해진 위계질서가 무너질 때 ‘귀여운 여인’에 나오는 명장면과 같은 통쾌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보복운전하면서 겁박하다 거구의 경차 운전자를 보고 딴청을 피우는 고급차 운전자의 모습을 담은 블랙박스 영상은 유쾌·상쾌·통쾌를 선사했죠.
주위에서 멋진 고급차를 타고 명품으로 치장한 운전자가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할 때 떠오르는 말입니다.
명차에 어울리는 멋진 품성을 지닌 운전자에게는 “사람도 차도 명품이네”라는 말을 할 수 있겠죠.
주제파악 못한다고 욕먹을 수 있는 카푸어라도 차종에 어울리는 멋진 행동을 한다면 인성만큼은 ‘푸어’가 아닙니다.
배우 김민종의 미담이 생각납니다. 지난 9월 경차를 몰던 40대 여성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롤스로이스 차량과 미세한 접촉 사고를 냈죠.
여성은 차주에게 곧바로 연락했지만 답장이 없었습니다. 12시간 뒤 여성은 차주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하다, 알아서 수리할 테니 걱정 안하셔도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차주는 김민종이었습니다. 김민종은 지난 10월 김구라의 유튜브 채널 ‘그리구라’에서 공개된 ‘이 정도 품격은 있어야 롤스로이스를 몰지’에 출연, 사고 후일담을 알려줬습니다.
롤스로이스측이 미담에 화답해 무상 수리해줬다는 내용입니다.
같은 롤스로이스인데 의료용 마약류 등을 다량 복용한 뒤 운전하다 사망사고를 낸 ‘문신남’과는 격이 다른 존재감을 보여줬죠.
지금은 아니지만 아무에게나 차를 팔지 않았던 롤스로이스의 자부심도 떠오릅니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그랬습니다. 박 전 회장은 레이를 타고 산동네 봉사 활동을 다니고 있습니다.
레이를 3대째 구매했다는 그는 최근에 소셜미디어(SNS)에 레이를 극찬하는 글과 사진을 올렸습니다.
박 전 회장은 “(봉사를 다닐 때) 골목길이 비좁고 주차도 아주 어려운 동네를 다녀도 걱정이 없다”면서 “주방서 만든 반찬을 배달하느라 레이를 탈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한다”고 말했죠.
아울러 “대한민국에서 만든 자동차 중 칭찬받고 상 받아야 하는 차가 기아 레이”라면서 “우리나라 환경에 가장 필요한 차를 참 안성맞춤으로 잘 만들었다”고 칭찬했습니다.
레이도 봉사활동을 하는 박 전 회장이 타니 벤츠 S클래스는 물론 롤스로이스에 못지않은 명차로 여겨집니다.
“차만 명품”이라는 소리보다는 “사람도 명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진정한 후광효과가 아닐까요.
더 나아가 사람이 명품이면 경차도, 싸고 낡은 차도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 뺨치는 명차가 될 수 있습니다.
차가 명품이어서 사람도 명품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명품이니 차도 (가격·상태에 상관없이) 명품이 됩니다.
영화 킹스맨의 유명한 대사를 살짝 다듬어 이번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람이 차를 만들고)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정말 간 크네”…은행 허위대출로 16조3500억 빼낸 ‘이 여성’ 정체가 - 매일경제
- ‘19.3억원’ 이번주 로또 1등, 13명 무더기 당첨…‘6150만원’ 2등도 68명 - 매일경제
- “완전 장군감인데”…23살 요르단 공주, 가자지구 공수작전 참여 화제 - 매일경제
- 돈도 없는데 너무 비싸서 2030 ‘털썩’…연중 최저 찍었다 - 매일경제
- 120평 집 공개한 SK 3세…“친구 사귀기 힘들다” 고백한 이유 - 매일경제
- ‘19억·13명 무더기’ 로또 1등, ‘9곳이 자동’이었네…판매처는 - 매일경제
- 10년만에 처음이라 여의도도 ‘당혹’…해외 주식 거래 ‘무슨 일’ - 매일경제
- 아직도 오해하는 사람 있다고?…구세군 630억원 충정로 빌딩의 진실 - 매일경제
- “구글 AI검색 도입시, 트래픽 40% 하락” 공멸 우려 목소리 터졌다 - 매일경제
- “어린 친구들에게 꿈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종범이 보는 아들 이정후의 빅리그 도전 [현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