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 사살 인질들, 백기 들고 있었다” 발표에도…네타냐후 “전쟁 계속” 으름장
“상의 벗고 흰옷 나뭇가지에 걸어 흔들어”
하마스 유인 작전으로 생각하고 사격
네타냐후, 가족 반발에도 “승리할 때까지 전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 오인 사격으로 사망한 이스라엘 인질 3명이 당시 상의를 탈의한 채 공격할 뜻이 없다는 의미의 백기를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설령 이스라엘군이 자국 인질을 하마스 대원으로 착각했다고 하더라도 투항 의사를 밝힌 상대에게 총격을 가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분노한 인질 가족·시민들, 대규모 시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전날 가자지구 북부 세자리야에서 자국 인질 3명이 이스라엘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우선 인질들이 당시 윗옷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흰옷을 나뭇가지에 걸어 흔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을 하마스 대원으로 오해한 이스라엘 병사는 “테러리스트”라고 소리치며 발포했고 2명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나머지 1명은 주변 건물로 몸을 숨긴 뒤 히브리어로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결국 총에 맞아 숨졌다.
영국 가디언 등은 이틀 전 이스라엘군이 인근 건물에서 ‘도와달라, 인질 3명’이라고 쓰인 글귀를 발견하는 등 자국 인질이 하마스로부터 도망쳤다는 증거를 확보했지만, 당시 상황을 하마스의 유인 전술로 생각한 병사가 발포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해당 지역 지휘관은 총격을 받고도 자국군을 향해 뛰어온 이들의 움직임을 이상하게 여겨 시신을 수습해 이스라엘로 보냈고 이들이 자국 인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스라엘군은 고개를 숙였다.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이날 성명을 내고 “사망한 3명은 (자신들이 하마스 대원이 아님을) 이해시키기 위한 모든 조처를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백기를 들고 항복하려는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며 “이스라엘군을 총괄하는 내게 책임이 있다”고 사과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사망한 인질 3명은 요탐 하임(28), 알론 샴리즈(26), 사메르 탈랄카(25)으로 모두 20대 남성이다. 이들은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키부츠(집단농장) 크파르 아자에서 하마스에 납치됐다. 고향에서 이들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과 지인들은 분노했다.
AP통신은 이스라엘 남부 후라에서 열린 탈랄카의 장례식엔 300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사촌인 알라 탈랄카는 이스라엘 공영방송 칸과 인터뷰하며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란 희망과 기대가 너무 컸다”며 “지금은 전쟁의 종식을 요구할 때”라고 호소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도 대규모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에 참석한 이들은 “그들을 지옥에서 구출하라” “지금 당장 집으로 데려오라”고 외쳤다. 한 인질 가족은 “중요한 건 하마스를 물리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유일한 승리는 인질들을 모두 구출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집회에 참여한 인질 가족들은 이번 사건에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가자지구에서 공세를 계속하기보다 하마스와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에 집중하라고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고 전했다. 미 CNN 등에 따르면 현재까지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은 총 129명으로 이 가운데 21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군, 비무장 모녀도 저격 살해”
투항 의사를 밝힌 비무장 상태의 인질이 사살당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점령지에서 민간인에게 무분별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에 따르면 예루살렘 로마 가톨릭 라틴 총대주교청은 이날 성명을 내고 “기독교 가정이 피신해 있는 가자지구 교회 안에서 이스라엘 저격수가 비무장 상태인 모녀 2명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총대주교청은 “이들은 수녀원으로 가던 중 사전 경고도 없이 총에 맞아 숨졌다”며 “교전자가 없는 본당 경내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날 교회에선 사망한 모녀 외에도 사람들의 대피를 돕던 7명이 총격을 받아 다쳤다고 총대주교청은 주장했다. 장애인 54명이 머무는 건물도 파괴돼 일부는 산소호흡기를 구하지 못한 채 피란길에 올랐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은 성당에서 비무장 모녀가 저격수에게 살해됐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미 CNN은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군에 연행됐다가 풀려난 팔레스타인인 10명의 증언을 보도했다. 닷새간 체포됐다가 풀려났다는 14세 팔레스타인 소년 마무드 젠다는 “이스라엘 병사가 ‘하마스냐’고 묻길래 모른다고 답했더니 얼굴을 걷어찼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올해 16살인 무함마드 오데도 “(이스라엘군이)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머리에 발을 올린 채 ‘하마스냐’고 물으며 때려댔다”고 말했다.
젠다의 아버지인 나데르는 “갑자기 불도저가 집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군인들이) 남녀를 분리한 뒤 바지를 벗고 셔츠를 올린 채 줄을 서도록 했다”고 연행될 당시 상황을 되새겼다.
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알아크사 병원 대변인인 할릴 알다크란 박사는 “팔에는 고문을 당한 기색이 있었고 전신에 폭행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에 이스라엘 군 당국은 “수감자들은 국제법에 따른 대우를 받았다”면서 “가이드라인이 준수되지 않은 모든 사건에 대해선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CNN은 전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벌거벗겨진 채 연행된 데 대해서는 “(자폭용) 폭탄조끼나 기타 무기류를 숨기고 있지 않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제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군이 그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팔레스타인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면서 비인도적 대우를 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속옷만 입은 상태의 남성 수십 명이 눈이 가려지고 손이 뒤로 묶인 채 끌려가는 영상이 공개된 바 있다. 이 중에는 중동 매체 언론인 등 민간인도 다수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인권단체인 유럽·지중해 인권 모니터는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적어도 7명의 청년이 옷을 벗으라는 이스라엘군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총살당했다고 전했다.
아랑곳 않는 네타냐후 “전쟁 계속”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 절멸을 위해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으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면서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지상전은 하마스를 뿌리 뽑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승리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황이 조금 달랐다면 모든 이스라엘인은 그들(죽은 인질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며 “하지만 이젠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협상을 요구하는 인질 가족들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다만 물밑에선 일시 휴전과 추가 인질 석방을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알자지라 등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 지시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데이비드 바르니아 국장이 전날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카타르 총리와 만났다고 보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관련 질문에 즉답을 피하면서도 “내가 협상팀에 준 지시는 하마스에 대한 강력한 군사 압박을 전제로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알자지라는 “이스라엘 지도자가 가자지구 인질 석방을 위한 새로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고 평가했다. NYT는 “이스라엘 인질 3명의 사망 사건은 더 많은 인질 석방과 새로운 휴전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조만간 이스라엘 고위 관리들이 인질 가족들을 만나 대화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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