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두 딸 살해한 젊은 강남 엘리트의 추락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체면과 자존심 때문에 가족 살해한 가장
(시사저널=정락인 언론인)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대부분은 생활고 등 경제적인 문제를 비관해 자녀를 죽인 후 극단선택을 하거나 시도하는 사건이다. 심지어 가장이 아내와 자녀들까지 한꺼번에 살해하는 사건도 적지 않다. 비속살해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매년 수십 건씩 꾸준히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연 부모라고 해서 자녀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을까. 전문가들은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는 강아무개씨(47)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 경영학과를 다니던 그는 같은 대학 출신의 아내와 캠퍼스 커플로 만나 교제했다. 아내 이아무개씨(44)는 대학 졸업 후 호텔에 취업했으나 1999년 강씨와 결혼하면서 시댁의 요청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내조에만 전념했다. 강씨는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재무를 전공하고,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직장인 외국계 건축설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는 상무이사까지 올랐다. 2009년 강씨는 강남에 있는 대형 한의원 재무담당으로 이직했는데, 당시 연봉이 9000만원에 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길은 탄탄대로였다. 그러던 2012년 11월 한의원 원장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강씨는 퇴사를 종용받자 3년 만에 회사를 나온다. 그는 곧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들어오는 일자리는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명문대 출신으로 승승장구하다 실직
강씨는 은행에서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대출받는다.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는 말했지만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딸들에게는 숨겼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듯 집에서 나와 한동안 선후배들이 일하는 오피스텔을 전전했다. 강씨는 취업 대신 주식투자를 통해 돈을 벌기로 한다. 이를 위해 집에서 1.5km 떨어진 서울 남부터미널 인근에 있는 고시원을 월세 32만원에 얻었다. 12월부터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해 주식 공부와 투자에 매달렸다. 주식 초보였던 그는 대박을 노렸으나 1년 동안 오히려 2억7000만원의 손해를 보며 또 한 번 좌절을 맛본다. 강씨는 이때부터 처지를 비관하기 시작했고, 일 년 만에 고시원을 나온다.
2015년 1월5일 밤, 강씨는 미리 처방받은 수면제를 와인에 타서 아내에게 건넸다. 세 모녀가 깊은 잠에 빠지자 책상에 앉아 노트를 꺼내 메모를 남겼다. "미안해 여보. 천국으로 잘 가렴. 나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를게." 다른 가족에게는 "통장에 남은 돈은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의 치료비와 요양비에 쓰라"고 적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컴퓨터를 정리했다. 1월6일 새벽 3시쯤, 강씨는 스카프를 가지고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목을 졸라 살해한다. 이어 작은딸이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같은 방식으로 살해한 후 큰딸의 방에 들어갔다. 인기척을 느낀 큰딸이 잠에서 깨어나 배가 아프다고 하자 수면제를 건네주며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라면서 먹게 한 후 잠들 때까지 기다린 후 살해한다. 새벽 5시쯤, 강씨는 자살하기 위해 충북 청주 대청호로 자가용(혼다 어코드)을 몰았다. 오전 6시28분에는 119에 전화를 걸어 "내가 아내와 딸들을 다 죽였다. 우리 집에 가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나도 죽을 계획"이라고 알렸다. 그는 집 주소와 현관문 비밀번호를 알려준 후 전화를 끊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강씨 집에 가보니 진짜 세 모녀가 숨져 있었고, 시신들에 별다른 저항 흔적이 없었다. 강씨가 쓴 노트 2장 분량의 메모도 있었다. 경찰은 즉시 강씨에 대한 소재 파악에 나섰다. 강씨는 자살하려고 대청호에 뛰어들었지만 두꺼운 겨울옷 때문인지 몸이 가라앉지 않아 걸어 나왔다. 흉기로 왼쪽 손목을 자해했으나 겁이 나자 자살을 포기하고 차를 몰고 경북 문경으로 이동했다. 그사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강씨의 소재를 찾았다. 낮 12시21분 경찰은 문경 농암면 대정 숲 인근를 배회하던 강씨를 발견하고 체포했다. 당시 강씨는 라운드 티셔츠와 검은색 운동복 바지 차림이었다.
잘나가던 강남의 엘리트 가장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아내와 두 딸을 죽인 살인자가 됐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여론은 들끓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막다른 길에 몰린 다른 유사 사건과는 상황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생명존중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강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도 가장 큰 평수(145.5㎡·약 45평)였다. 당시 매매가 기준 평균시세는 11억원이었다. 강씨는 2004년 5월 이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대출 없이 전액을 지불했다. 여기에 부인 이씨의 통장에 있던 현금 2억원을 더하면 13억원이다. 강씨는 실직한 후인 2011년 11월 은행에서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빌렸고, 남아 있는 주식투자 자금 1억3000만원을 감안하면 강씨 부부에게는 총 9억3000만원의 자본이 있었던 셈이다. 강씨는 실직한 후에도 매월 400만원을 부인에게 생활비로 줬다. 강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살을 결심했고, 나만 죽으면 아내와 두 딸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가족을 죽이고 나도 죽을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범행동기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닌 개인적인 문제였다. 그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재기가 가능했다. 거주하던 아파트를 팔고 다른 지역 작은 평수로 옮긴 후 장사를 하더라도 충분한 밑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강씨 부모와 처가도 중산층 가정으로 경제적인 여력이 넉넉해 뒷배경도 나쁘지 않았다. 눈높이만 낮췄다면 재취업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강씨는 실직한 상태에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않았으며, 여전히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 취업도 자신의 눈높이보다 낮으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현재 상황에 대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와도 가족의 미래에 대해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 강씨는 오로지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만 중시했다.
전문가들은 그의 범행동기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원인으로 꼽았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예전 모습에 갇혀 현재의 잇따른 실패와 추락에 자괴감을 느낀 것이 범행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종전에 누렸던 부유한 생활 수준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자 극단적인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강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어렵지 않게 키워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맞자 그런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 내가 잘못 키운 탓"이라며 한탄했다.
강씨의 범행 과정을 보면 가족에 대한 연민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잔혹하고 냉정했다. 아내와 두 딸을 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더욱이 강씨는 이들을 더욱 확실히 살해하기 위해 스카프를 목에 감아 힘껏 잡아당겼고, 숨이 끊어진 후에도 스카프를 계속 강하게 묶어뒀다. 정작 강씨 자신은 자살을 시도한 후 무섭다고 포기한 것과 대조된다.
이로 인해 중학교 1학년 큰딸과 초등학교 2학년 작은딸은 자신의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생을 마감했다. 강씨의 아내는 가정주부로서 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가정을 돌봤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허망하게 잃었다. 이들 모녀는 가장 신뢰하고 정서적 유대감이 컸던 남편과 아버지의 기습적이고 흉악한 폭력 앞에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강씨는 죄책감보다는 형량 줄이기에 급급했다. 범행 전후를 보면 우울증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었다고 판단할 정황도 없었다.
검찰은 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강씨는 여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원심을 인용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피고인을 상대로 제대로 저항할 만한 힘도 없는 피해자들이 얼마나 놀라고 두려웠을지, 또 발버둥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어떤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느꼈을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부모 살해와 달리 자식 살해에는 가중처벌 없어
법률적으로 자신의 부모와 조부는 '존속', 자녀들은 '비속'으로 분류한다. 자기의 배우자나 자기와 같은 항렬에 있는 형제자매 등은 존속도 비속도 아니다. 요즘에는 '가족'의 범위가 다양화하고 있어 존속과 비속 그리고 형제 또는 자매를 통틀어 '친족'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자식을 죽인 비속살해의 경우 범행 원인은 가정불화, 경제 문제, 정신질환 순으로 많았다. 자식을 죽인 부모들의 연령은 30·40대가 80%를 차지했다. 피해 자녀의 연령은 절반이 넘는 59%가 0~9세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10~19세 순이었는데, 부모에게 대항하기 어려운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고 볼 수 있다.
현행법상 존속살해죄는 보통 살인보다 형을 가중해 처벌하고 있다. 형법 제250조 2항은 직계존속을 살해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있다.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한 일반 살인죄보다 무겁다.
그런데 법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똑같은 친족살해인데, 부모를 살해한 자식은 가중처벌하고, 자식을 죽인 부모에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됐다. 가중처벌해 형량을 높이는 것이 자식 살해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인지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지만, '법의 형평성'을 벗어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부모 없이 자녀가 혼자 남았을 때 다른 가족이나 복지제도가 남겨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허술한 사회안전망도 비속살해를 부추기는 원인이다.
친족살해나 비속살해는 가정의 붕괴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전문가들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공분하기보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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