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5000억 떠넘겼다…증권사 랩·신탁 위법 행위 대거 적발

문수빈 기자 2023. 12. 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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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9개 증권사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 집중 점검

국내 증권사가 채권형 랩·신탁을 운용하면서 위법 사항을 대거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자전 거래로 고객 간 손실을 전가하고, 특정 고객에게 사후 이익을 제공한 사례 등이 적발됐다. 금융감독원은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 손해 배상 절차를 마련할 방침이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뉴스1

17일 금감원은 9개 증권사를 상대로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를 집중 점검한 결과 중대 위법 사실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채권형 랩어카운트와 특정금전신탁은 증권사가 고객과의 1대 1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금융 상품이다.

다수의 고객 자산을 집합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를 감안한 단독 운용이 가능한 게 특징이다. 이같은 점 때문에 법인 고객은 단기자금 운용 수단으로 랩과 신탁을 선호해왔다.

지난해 하반기 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다수의 법인 고객이 가입한 채권형 랩·신탁의 환매를 증권사에 요청했으나, 기업어음(CP) 등 편입 자산의 시장 매도가 어려워지면서 환매가 중단된 바 있다. 일부 증권사가 고객의 투자 손실을 회사의 고유 자산으로 보전해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금감원은 수탁고와 증감 추이, 시장 정보 등을 고려해 9개 증권사를 상대로 집중 점검을 실시했다. 그 결과 A증권사는 지난해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6000여회의 연계·교체 거래를 통해 특정 고객 계좌의 CP를 다른 고객의 계좌로 고가 매도했다. 이렇게 고객 간 전가된 손실액은 약 5000억원이다. 랩·신탁 운용 시 특정 투자자의 이익을 해하면서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해선 안 된다.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를 통해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다. 금감원은 해당 증권사의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할 방침이다. 관련 혐의자(운용역)는 30명 내외다.

금융투자업자는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사후에 제공해서는 안 되나, 고객 계좌의 CP를 고개에 매수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제공한 사례도 확인됐다. B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지난해 11~12월 중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매수하는 방식으로 11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했다.

C증권사는 자사에 설정한 펀드를 통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700억원 규모의 이익을 제공했다.

계약 조건을 위배한 증권사도 적발됐다. D증권사는 고객과의 랩 계약 시 운용 가능한 자산의 잔존만기 한도를 1년으로 제한하기로 했으나 잔존만기가 4년인 회사채를 편입해 운용했다.

E증권사는 고객과의 랩 계약 시 운용 가능한 자산의 신용등급을 AA+로 제한하기로 약정했음에도 신용등급이 AA-인 회사채를 편입해 운용했다.

동일 투자자 계좌간 자전 거래를 한 증권사도 있었다. F증권사는 고객의 요구가 없었음에도 동일 고객의 1번 랩 계좌의 CP를 2번 랩 계좌에 시가보다 2억원 높은 가격으로 매도해 1번 랩 계좌의 목표 수익률을 달성시켰다.

일부 증권사는 고객 자산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고유 자금으로 펀드를 설정하고 특정 채권, CP를 고가 매수하도록 요청하는 등 펀드 운용에 관여했다. G증권사는 고객 신탁 계좌의 환매를 위해 다른 증권사에 채권형 펀드를 설정하고 해당 펀드의 운용역에게 고객 신탁 계좌의 CP를 시가보다 고가로 매입해달라고 요청했다.

금감원은 “시장 금리와 괴리되는 가격으로 이뤄지는 이상거래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내부통제가 필요하다”며 “환매 시 원금 및 수익률을 보장하는 잘못된 관행은 근절돼야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 금융투자협회와 협의해 객관적인 손실 가격을 산정하고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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