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미술의 내면까지 지배할까? [김승민 큐레이터의 아트, 머니, 마켓]
편집자주
김승민 큐레이터는 영국 왕립예술학교 박사로 서울, 런던, 뉴욕에서 기획사를 운영하며 600명이 넘는 작가들과 24개 도시에서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 시장의 모든 면을 다루는 칼럼을 통해 예술과 문화를 견인하고 수익도 창출하는 힘에 대한 인사이더 관점을 모색한다.
관객이 인공지능(AI)으로 되살아난 빈센트 반 고흐에게 질문한다.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인공지능 고흐는 답한다. “나에게 가장 어두운 시기였고 그게 유일한 답인 줄 알았어.”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은 AI 기술자와 함께 1년을 준비, 어떤 질문이든 답을 해주는 AI 챗봇 고흐를 선보였다. 10월 3일에 개관한 이번 전시의 끝부분에서 관객은 챗봇으로 '환생'한 고흐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 가장 많이 쏟아진 질문은 역시 ‘왜 삶보다 죽음을 택했는지’였다.
그런데 비슷한 질문이 거듭될수록 '고흐 로봇'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아름다움과 희망은 있어" 등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뀐 답변을 내놨다. 그 이유는 AI 연구자들이 AI에 자극적인 주제를 '극복'에 초점을 두고 답하도록 간섭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AI가 학습한 내용은 고흐가 직접 썼던 900여 개의 편지였다. 그런데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뭐야?”라는 질문에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답을 내놨다는 것이다. 그가 쓴 편지를 보면 '별이 빛나는 밤'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었다. 인공지능이 내놓은 정보와 판단을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이야기를 접했을 당시, 나는 AI를 활용한 전시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행사의 요지는 이렇다.
먼저, 저작권이 사라진 명화들을 AI 생성기에 넣는다. 그리고 물, 불, 공기 등의 요소를 텍스트로 첨가해 전혀 새로운 영상을 만들게 한다. 이렇게 탄생한 7개의 그림은 계속 변한다. 인공지능이 짧은 시간에 상당한 퀄리티의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영상은 무용수의 라이브 댄스 공연과 함께 관객을 만났다. 여기에 관객들에게 물, 불, 공기 카드를 지급해 무용수의 동작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어, 무용수가 불을 표현하고 있는데 관객이 ‘물의 카드’를 내밀면, 무용수는 꺼져가는 불을 몸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탄생한 춤은 관객이 어떤 카드를 내밀고 어떤 개입을 하더라도 무용수만의 고유의 터치를 담고 있었다.
이는 모두가 우려하는 AI 기술의 오용과 위험성에 대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작은 답변을 던져줬다. 컬렉터는 작품을 만났을 때, 단순히 AI가 표현한 작품의 아름다움에 집중하기보단 작품 내면에 내포된 진실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또 기계와 공존하는 능력과 감각, 자질은 개발하는 한편, 창의성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윤리적 데이터 학습에 대한 이해도 이 기획을 통해 깊게 깨닫게 됐다.
지금 뉴욕 니노마이어 갤러리(NINO MIER Gallery NY)에서는 애셔 리프틴(ASHER LIFTIN)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언뜻 보면, 그의 작품은 신화를 배경으로 한 것처럼 굉장히 전통적인 느낌이 난다. 중세 서구에서 제단화로 시작된 트립틱 형식도 갖고 있다. 하지만 제목(The Devouring of Ziggy Stardust, 2023)을 보면, 소재는 팝송 속 주인공이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인공지능으로 조작된 이미지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작품을 좀더 가까이서 관찰하면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점 하나하나, 아크릴 붓으로 찍어 점묘법으로 그렸다. 인쇄한 픽셀처럼 보이지만 삐뚤빼뚤한 휴먼 터치가 대형 잉크젯 인쇄가 아님을 증명한다.
예술은 급속한 기술의 진화 앞에서 늘 실존 문제에 직면해 왔다. 마르셀 뒤샹(1887~1968ㆍ프랑스)은 개념 미술로 당시 기계 혁명(활동사진 등)에 대항했다. 이처럼 앞으로도 AI 자체가 핵심이 아니라, AI를 활용해서 태어난 전혀 새로운 창작물이 향후 도래할 예술 세계의 변곡점이 될 것이다.
김승민 슬리퍼스 써밋 & 이스카이 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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