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김치’를 아시나요…재벌 회장님도 아버지도 추억과 맛에 빠지다[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3. 12.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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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人-6] 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feat. 부산이 고향인 아버지)
최근 김치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치가 영양적으로도 우수하거니외 국내 식품업체들이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결과기도 하다.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음식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다는데 기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그건 김치가 대량생산을 위해 획일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는 옛날부터 지역마다 집집이 그 재료와 맛이 다양했다. 필자 집에서는 부산이 고향이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굴을 양념에 같이 넣어 김장했다. 굴의 비릿한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면서 양념과 어우러진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보물찾기하듯 김치 속을 휘저으며 굴을 찾다가 어머니께 등짝 스매싱을 맞을 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사 먹는 포장김치에는 무언가 특별함을 기대할 수 없는 단조로움 뿐이다. 너무나 뻔한 상표 그대로 배추김치, 총각김치이다.

사라져가는 다양한 ‘집’ 김치에 대한 푸념과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이어지는 ‘생선 김치’에 대한 우리 가족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 글을 끄적여 본다.

어머니의 손맛을 못지켜준 김치냉장고
1960년대 말 부산의 어느 저녁 식사시간. 아버지께서 국민학교 다니실 때쯤이다. 아버지께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하신 터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식탁에 오른 갈치김치의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냄새를 아직 기억하셨다. 할머니가 김장 때 갈치와 각종 잡어를 넣어 만든 김치였다. 땅속에 묻어둔 항아리 안에서 몇 달간 숙성이 잘된 김치는 생선 기름이 베어 반질반질했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김치 사이사이에 들어간 갈치 조각을 모아 김치 그릇 한쪽에 가지런히 두셨다. 할아버지가 드시는 상에만 올라가는 특별 메뉴이다 보니 아이들은 김치 사이에 끼어 형태를 잘 알아보기 어려운 잡어의 부스러기 정도만 맛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께서 김치 양념에 숙성이 잘된 갈치 조각을 아버지께 한조각 내어주는 날은 밥맛이 더 꿀맛 같았다고 하셨다. 살짝 비릿한 냄새가 나지만 갈치 속살은 쫀득쫀득하니 부드럽고 짭조름한 맛이 입맛을 더 돋웠다고 줄곧 회상하셨다.

이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신 아버지께서는 갈치김치를 다시 맛볼 기회가 없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40대, 아들인 내가 10대쯤 되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아버지 지인이 땅에 묻은 김칫독에서 몇 년 묵은 거라며 김치 1통을 선물로 주셨다. 묵은지이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조기가 들어간 김치였다.

부모님께서 김치를 받아오시면서 어렸을 적에나 보았던 움집처럼 생긴 ‘김치광’을 직접 보셨다고 말씀해주셨다. 김치광은 겨울철 김장 김치를 바람, 눈, 비로부터 김치 맛이 상하지 않고 오래도록 맛있게 보존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다. 땅에 항아리를 묻고 그 위에 짚으로 만든 김치광을 덮어두는데, 자주 드나드는 점을 감안해 구조물이 크고 뼈대를 갖춘 집 형태를 많이 이용했다.

옛날 김치를 저장하던 김치광 모습
그렇게 생선이 들어간 김치와 나의 직접적인 첫 만남이 성사됐다. 조기 한 마리가 형태를 거의 그대로 갖춘 채 김치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먹기 좋게 토막을 내기 위해 어머니께서 칼로 자르려고 하니 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고 말랑한 젤리 같은 속살이 살며시 드러났다. 흰 쌀밥 위에 생선 살과 김치를 올려놓고 입안에 넣자,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마저 낫다.

그다음 해 김장철이 다가오자 손맛 좋으신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직접 조기 김치를 담기로 하셨다. 그러나 안타깝게 조기 김치 담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머니께서는 싱싱한 조기를 구해 소금에 약간 절여 김장 김치 사이사이에 넣어두셨다. ‘조기 김치가 별거냐’는 마음이셨던 거 같다. 김장 후 부엌 다용도실에 2~3일 가량 숙성시킨 후 김치냉장고에 1개월 가량 넣어두고 김치를 꺼냈지만 비린내가 몹시 나 먹지도 못하고 다 버리는 참사가 일어났다.

어머니는 “김치냉장고가 땅속에 묻은 김칫독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하셨다. 나도 음식 솜씨가 좋으신 어머니보다는 김치냉장고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 이후 생선을 넣은 김치는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갈치김치 맛본 재벌 회장님의 특명
아워홈의 갈치김치
그렇게 20여년이 흘러 우연히 올해 아워홈의 갈치김치를 만났다. 그리고 갈치김치를 먹자마자 생선 김치에 대한 기분 좋은 옛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몽글한 갈치속살은 비리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났고 김치에 생선기름이 배어 반질반질했다.

김치 업체들은 만들어서 바로 판매할 수 없고 최소 1달 이상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생선 김치 제품을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워홈이 갈치김치를 내놓은 것은 작년에 별세한 고(故) 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 덕분이다.

고(故) 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
구 명예회장은 2018년쯤 한 식당에서 갈치김치를 맛보고 어렸을 적 집에서 먹었던 김치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선을 활용해 감칠맛이 살아있는 김치’ 아이디어를 내고 아워홈 연구개발센터에 제품 개발 특명을 내렸다.

아워홈은 명태와 갈치, 볼락 등 다양한 어류 중 김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재료 선정을 위해 수많은 배합 테스트를 진행했다.

사실 생선 김치에 들어가는 생선은 지역마다 다르다. 함경도에서는 명태·오징어가, 부산이나 경남 해안가에서는 갈치 뿐만 아니라 굴 등이 자주 이용된다. 전라도는 조기보다 좀 작은 황석어를 넣는 경우도 있다. 김장 시기에 잡히는 잡어들도 종종 김장에 들어갔으며 신선한 상태의 생선을 넣어야 하므로 주로 해안가의 별미 김치로 꼽힌다.

아워홈은 명태와 갈치로 후보를 좁혔고 최종적으로는 뼈삭힘 공법 적용이 쉬운 갈치로 최종 선정됐다.

다음은 재료 배합 형태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토막, 순살, 젓갈, 다짐 등 어류 형태에 따라 김치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워홈 연구진은 어류의 비린내는 최소화하되, 깊고 시원한 맛을 낼 수 있는 형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여 ‘토막 형태’로 확정했다.

오랜 연구 끝에 탄생한 아워홈 갈치김치는 엄선한 ‘100% 국내산 갈치’와 국내산 배추, 무, 고춧가루를 사용한다. 머리와 내장, 비늘을 제거해 먹기 좋은 크기(1.5cm)로 토막 낸 갈치와 황금비율로 배합한 양념 속을 배추 사이사이에 채워 넣었다. 주재료인 갈치는 별도 세척 및 선별 공정을 통하여 이물, 유해균을 완벽히 제거하고 맛이 뛰어난 부위만 사용한다. 또한 최적 숙성 시간을 적용해 배추의 아삭함과 갈치의 꼬들꼬들한 식감을 살렸다.

내 입맛이 특이하지는 않은지 시장에서도 평가가 좋아 올해 10월까지 갈치김치의 누적매출이 작년 전체 매출 대비 125% 증가했다고 한다.

김장을 아예 할 생각조차 없는 나 자신이 무슨 낯짝으로 다양한 ‘집’ 김치들이 사라져간다고 나무랄쏘냐...그런데도 왠지 마음 한켠이 착잡하니 아쉽기만하다. 그나마 구 명예회장님 덕분에 갈치김치라도 먹을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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