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가 56조 베팅한 ADC…전방위로 불붙는 주도권 싸움
약물 타깃 부위에 선택적 전달 가능해 항암 분야 미래로…2028년 시장 규모 약 26조원 전망
항체-약물접합체(ADC)가 차세대 항암제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기술확보를 위한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글로벌 대형제약사들이 수십조원을 들여 기술을 사들이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에 열세인 국내사들은 자체 또는 협업을 통한 신약 개발 경쟁력을 제고하거나 관련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식으로 잰걸음을 걷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화이자와 머크, 애브비 등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ADC 기술력 확보를 위해 최소 10조원대에서 50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했다.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을 인수합병(M&A) 하거나, 공동 개발 형태로 맞손을 잡는 식이다.
화이자는 지난 3월 ADC 전문 개발사인 시젠(Seagen)을 430억달러(약 56조원)에 인수했다. 상반기 글로벌 제약바이오 전체 M&A 규모인 800억달러(약 104조원)의 절반이 넘는 액수다. 이어 미국 머크(MSD)는 지난 10월 다이이찌산쿄와 220억달러(약 28조원) 규모의 ADC 치료제 공동 개발 및 상업화 계약을 체결했다. 다이이찌산쿄의 ADC 항암제 파이프라인 3종에 대해 머크가 일본을 제외한 지역에 대한 상업화 권리를 보유하는 계약이다.
지난달에는 애브비가 미국 이뮤노젠을 101억달러(약 13조원)에 인수하며 ADC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화이자와 애브비가 ADC 기술 확보를 위해 투자한 금액은 올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M&A 계약 중 1위와 3위 규모에 해당한다.
기술확보를 위한 공격적 M&A의 배경은 ADC 기술의 활용 가치다. ADC는 독성이 강한 약물을 항체에 붙여 질병의 세포에 선택적으로 전달하는 표적형 기술이다. 약효 만큼이나 약물전달력의 중요성이 커진 최근의 신약 트렌드와 적합하다. 특히 인류 숙원사업으로 꼽히는 암 정복에 맞춤형 기술이라는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한 13개 ADC 신약은 모두 항암제다. 지난해 기준 매출 상위 3개 품목은 로슈 '케드실라'(유방암, 21억8800만달러), 아스트라제네카·다이이찌산쿄 '엔허투'(유방암, 16억4300만달러), 시젠·다케다 '애드세트리스'(림프종, 14억7200만달러)로 각각 연 매출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훌쩍 넘기는 블록버스터 품목이다.
기수술출 분야선 레고켐바이오가 대표 기업으로 꼽힌다. 독자 기술을 기반으로 한 ADC 플랫폼 기술로 10건 이상의 기술수출 성과를 거뒀고, 자체 품목 개발도 진행 중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의 주요 위탁개발생산(CDMO) 파트너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1월 JP모건헬스케어 컨퍼런스를 통해 ADC 사업 확장을 위한 전용 생산 설비 계획 구축 계획을 밝혔다. 지난 9월에는 삼성물산,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함께 조성한 '라이프사이언스펀드'를 통해 국내 ADC 개발사인 에임드바이오에 지분 투자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달 국내사인 인투셀과 ADC 분야 공동 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인투셀이 ADC 기술을 제공하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최대 5개 항암 타깃 ADC 물질을 제조하는 방식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말 인수한 시라큐스 미국 공장에 ADC 생산시설을 증설하고 있다. 10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증설을 통해 2025년 1분기부터 ADC 품목 생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셀트리온은 합병 이후 주요 과제로 내건 신약 개발 부문 핵심 과제 중 하나로 ADC를 낙점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월 국내 피노바이오와 ADC 플랫폼 도입 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올해 초 영국 익수다테라퓨틱스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종근당은 지난 2월 약 1650억원을 투입해 네덜란드 시나픽스로부터 ADC 기술을 도입했다. 이 회사는 지난달 1조7300억원 규모의 희귀질환 치료제 후보물질을 노바티스에 기술수출했다. 해당 물질에는 단백질의 세포의 성장과 분화 등에 관여하는 HDAC6를 저해 플랫폼 기술이 적용됐는데, 이 플랫폼에 ADC 기술을 더해 또 다른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나선다는 목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아직 국내사가 개발한 ADC 신약은 없지만 기술이전·도입, 지분투자, 공동연구, CDMO 등 국내기업들이 ADC 시장에 적극적인 참여 중"이라며 "실패 가능성이 높은 기술에 대한 기업들의 도전적인 연구 지원과 세제 혜택 등 다양한 지원으로 ADC 개발 생태계를 육성하겠다는 정부 의지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azoth4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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