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인분 설거지도 벅찬데, ‘원장 지시 딴 일’까지…마음 다치지만
어린이집 주방보조원
식판 헹구고 열탕소독·건조까지
2시간 이상 서서 작업…손끝 저릿
법정 휴게시간 30분도 쉬지 못해
퇴근한 소연(가명)씨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집 근처 전철역에서 만나자고 해 일터도 한동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중교통으로 환승해 오는 길이라 한다. 집에 들어선 뒤 가방을 내려놓은 소연씨는 이내 부엌 창과 거실 창을 조금씩 열어 “바람길”을 낸다. 종일 집에 머물렀던 공기가 서서히 빠져나간다. 식탁 위 작은 사기잔에 꽂아놓은 솔잎 한 움큼. 지난 추석에 송편을 빚어 찌고 남은 거라는데, 향이 은은하다.
“한 몇 개월은 일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못 했어요, 진짜. 그냥 뻗어서. 거실 바닥에서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저녁을 한다든가 그랬는데, 지금은 가끔 그래요. 힘든 것도 좀 적응이 되더라고요.”
산더미 같은 설거지보다 힘든 일
소연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국공립어린이집에서 보육도우미(주방보조원)로 일한다. 주요 업무 공간은 주방이다. 점심 급식과 오전·오후 두 차례 나가는 간식을 0살부터 7살까지 각 반에 맞게 챙겨 교실에 내주고, 다 먹은 식기를 설거지하고 뒷정리하는 게 주 업무다. 음식 조리는 조리사가 하는데, 불을 쓰지 않는 샐러드와 과일 급식은 소연씨가 맡는다. 원아에 원장과 정교사·보조교사 등 보육교직원 수를 합하면 모두 90여명. “막 지지고 볶는” 조리사도, “옆에서 막 세팅하는” 소연씨도 바쁘다.
“식당에 가면 반찬 담아두는 스테인리스 통 있잖아요. 그걸 쟁반에 여러개 놓고 밥, 국, 반찬을 담아요. 여기 어린이집은 반찬이 세 가지 나가고 과일이 하나씩 꼭 나가요. 그리고 이제 각 반에 맞춰 식기를 챙기죠. 예를 들어서 2층에는 주로 큰 아이들이라 따로 있는 식당에서 먹는데, 그 인원이 50명이다 그러면 식판 50개, 국그릇 50개, 포크와 숟갈 각 50개를 챙겨요. 과일 놓는 그릇도요. 음식물 쓰레기 수거용 그릇과 행주도 준비하고, 물그릇과 양치 그릇도 인원수에 맞게 수십개를 챙기죠.”
설거지 그릇은 반마다 시차를 두고 나온다. 소연씨는 방수비닐 앞치마를 걸치고 고무장화를 신고,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에 나선다. 식판을 비롯해 종류별 모든 식기를 꼼꼼하게 수세미로 닦고 깨끗이 헹구기를 몇 차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식기세척기에 열탕 소독을 하고 다시 살균 식기건조기로 옮겨 건조해야 “산더미 같던” 설거지가 마무리된다.
“오전 간식 그릇 설거지하는 시간 빼고 점심 먹은 것만 2시간 정도 서서 해요. 허리는 괜찮은데 손끝이 아프고 저려요. 병원에 되게 많이 갔는데 잘 안 나아요. 그래서 지금도 한의원에 다녀요. 설거지가 굉장한 기술을 요한다거나 머리를 쓰는 게 아니니까 단순노동이라고 하겠는데, 단순노동! 그게 힘들고 어려워요. 계속 같은 부위를 쓰니까 이게 안 망가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소연씨는 몸보다 더 힘든 게 있었다. “사람 때문에 마음이 다치는” 일이다. 그래서 조리사와 단둘이 일하는 공간이 종종 거북하다.
“조리사가 조리하고 나오는 도구들을 설거지하는 데다 막 휙휙 던져요. 그게 너무 기분 나빴는데 ‘바쁘니까 그러겠지’ 하면서 참았어요. 일이 많긴 해요. 교실에서 요리 수업도 자주 하는데 그러면 준비해 줘야 하고, 어린이날이나 추석이면 더 바쁘거든요. 엄마들을 초대해서 같이 전 부치고 송편 빚는데, 모든 뒤치다꺼리를 다 주방에서 해 줘야 하니까요.”
주방보조는 조리사를 보조하면서도 한몫하는 엄연한 동료이니 분명 존중해야 하는데, 조리사는 자주 배려 없는 언행을 보였다. 소연씨가 하지 않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지레짐작해 “뒤통수에다 대고” 말했다. 치사했다. 그러나 조리사도 직장에서 집으로 일이 끊이지 않는, 열심히 살려는 한 여성이자 엄마. 소연씨는 다 알 수 없는 조리사의 성격과 사정을 이해하려는 한편, 조리도구를 던지지 말라고 요청하고 억측에는 분명히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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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좋아해서 할 수 있는 일”
오후 간식까지 주방 일을 다 끝내도 소연씨는 쉬지 못한다. 근로계약서에는 “그 외 원장이 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딴 일도” 한다. 처음에는 없던 일이 하나씩 자꾸 늘어갔다. 주방 일 사이사이 10분이라도 틈이 나면 계단을 닦고, 식당을 청소하고 정돈하고, 각 교실에서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버린다. 청소와 분리수거는 보조교사들도 함께한다.
“짬이 없어요, 짬이. 그러니까 안 움직이는 사람들은 교실 안에 있는 정교사들하고 주방에 있는 조리사만 안 움직여요. 나머지는 계속 움직여요. 정교사들도 애들을 봐야 하니까 어쨌든 혼자 쉬고 싶을 때 쉴 수가 없죠. 그래서 나만 못 쉰다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누구는 그래요. 그냥 하는 시늉만 하라고. 근데 어떻게 그래요. 청소라는 게 안 하면 티가 나고, 쓰레기 안 갖다 버리면 쌓이는 게 보이는데.”
소연씨는 하루 6시간30분 근무하지만, 달마다 받는 월급명세서에는 하루 6시간씩 최저시급으로 계산돼 있다. 30분은 법정 휴게시간인 셈인데, 그게 참 얄궂다.
“나도 몰랐는데 점심시간 포함해서 쉬는 시간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30분이라며 거기에 사인하래요. 근데 나 30분 못 쉬어요, 진짜. 애들 점심 다 나가면 밥을 한 15분 정도 먹고 이 닦고 오면 설거지가 들어와서 바로 해야 하거든요. 근데 뭐 어떡하겠어요. 그 보조 선생님들도 다 그냥 최저시급이고 휴게시간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소연씨는 “애들을 좋아해서” 어린이집에서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 이 일을 하게 됐다. 이전에는 어린이 교육 관련 일도 했다. 앞으로는 아이들을 더 가까이서 보살피고 싶어, 일하면서 보육교사2급 자격증을 준비한다.
“애들이 부쩍부쩍 자라는 게 보이죠. 봄에 걷지도 못하고 벌벌 기었는데 지금은 막 달려요, 달려. 말도 어찌나 잘하는지.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교실이건 주방이건, 어린이집 일은 애들 안 좋아하면 할 수가 없어요.”
르포 작가
‘여자, 노동을 말하다’(2013) 저자. 여성노동자가 머물고 움직이는 장소, 일하는 시간에서 이야기를 찾아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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