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권 상실하고 위기 봉착한 우크라이나
유럽 각국이 우크라이나에 공여하기로 한 전투기는 1970년대 초반 생산된 F-16을 1990년대 중반 개량한 F-16AM/BM 버전이다. 기존 F-16은 과거 한국 공군이 '피스 브리지' 사업을 통해 도입한 F-16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구형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대대적 성능 개량으로 구형 F-16을 신형 KF-16에 준하는 수준으로 환골탈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KF-16도 1990년대 후반 도입 당시에는 최신형이었으나 지금은 기술적으로 상당히 뒤떨어진 실정이다.
우크라, 미국에 "최신 레이더 장착해달라"
대만은 F-16보다 성능이 약간 떨어지는 F-16A/B 전투기를 1990년대 도입했다. 최근 이들 기체 전량을 최신형 V 사양으로 개량하는 사업을 완료했다. 141대의 성능을 개량하는 데 들어간 예산은 1100억 대만달러(약 4조6000억 원)로, 대당 326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투입됐다. 우크라이나가 요구한 전투기 업그레이드에도 비슷한 규모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현재 미 의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예산 승인을 놓고 극한 대립이 벌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이 수용할 수 없는 수준이다.
F-16 성능 개량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지자 우크라이나는 안드리 예르막 대통령실장을 단장으로 한 특사단을 워싱턴에 급파했다. 특사단에는 루슬란 스테판추크 최고 라다 의장과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도 포함됐는데, 이들은 12월 6일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예르막 실장은 미국 측에 F/A-18 전투기 공여를 요청했다고 한다. F-16 성능 개량이 어렵다면 미군이 대량으로 보유한 F/A-18E/F 슈퍼호넷 또는 미국 민간군사기업이 구매하기로 한 호주 공군의 퇴역 F/A-18을 달라는 것이다. 호주의 퇴역 F/A-18은 성능이 대폭 개량된 기체로 F-16보다 레이더 탐지거리가 훨씬 길다.
러시아의 초장거리공대공 요격 전술
이처럼 우크라이나가 AESA 레이더를 탑재한 전투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만큼 전황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각지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러시아군 포병의 포격량이 급증했고, 공군과 공격헬기를 앞세운 지상 공격도 크게 늘었다. 격전지인 아우디우카, 바흐무트, 쿠퍈스크는 물론 헤르손과 자포리자에서도 러시아는 Su-25 공격기를 앞세워 우크라이나군 진영에 맹렬하게 폭격을 퍼붓고 있다. 최전선에서 러시아군이 이렇다 할 저항 없이 폭격을 가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군이 제공권을 거의 상실했다는 방증이다.최근 러시아군이 자폭드론으로 대도시와 에너지 인프라를 집중 공격한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일선의 방공 자산을 인구 밀집지역과 발전소, 원유저장시설에 집중 배치했다. 야전부대 방공망에 구멍이 생기자 러시아는 공군력으로 우크라이나 지상군을 맹폭하기 시작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도 전투기를 대거 출격시켜 대응하려 했으나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바로 러시아가 꺼내 든 초장거리공대공 요격 전술이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이 운용하는 전투기는 옛 소련 시절 제작된 Su-27과 MIG-29다. 이들 전투기는 F-16 APG-66(V)2보다 사거리가 짧은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중거리 공대공 무장의 경우도 구형 R-27 알라모 계열을 운용하고 있다. 사거리 60~80㎞인 알라모 미사일에는 짧은 사거리뿐 아니라 결정적 약점이 또 있다. 바로 미사일이 명중될 때까지 전투기가 계속 조준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반능동 레이더 유도(SARH) 방식이라는 점이다. 이런 유도 방식의 미사일은 모기(母機)가 공격을 받아 회피 기동하면 조준 유지가 불가능하다. 애써 적기를 향해 미사일을 쏴도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라고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Su-27과 MIG-29 레이더를 개량해 최대 탐지거리를 기존 70㎞에서 100㎞까지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가 80㎞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SARH 방식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자국 영공에서 우크라이나 전투기 포착해 공격
A-50U는 최대 650㎞ 거리에서 전투기 크기의 공중 표적을 탐지할 수 있다. 60개 이상 표적을 동시 추적하고 공격을 유도할 수 있는 고성능 AESA 레이더와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갖췄다. 이처럼 우수한 성능의 조기경보기를 놓고도 제대로 된 활용법을 몰랐던 러시아 공군이 환골탈태한 것이다. 최근 러시아 공군은 MIG-31에 R-37 장거리공대공미사일을 탑재하고, 조기경보기와 합동으로 운용하고 있다. 러시아 영공에 떠 있는 A-50U가 500~600㎞ 거리에서 우크라이나 전투기를 탐지하면, 마찬가지로 안전한 자국 영공의 MIG-31이 최대 400㎞를 날아가는 장거리공대공미사일 R-37을 쏟아붓는다.R-37은 보통 공대공미사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마하(음속) 6급 극초음속 미사일이다. 미국 사이드와인더 시리즈의 속도가 마하 2.5, 암람이 마하 4인 것에 견주면 엄청난 고속이다. 다만 민첩성이 부족해 급기동하는 전투기를 잡기 어려운 게 단점이다. 하지만 전자장비 성능이 떨어지는 우크라이나군 Su-27이나 MIG-29를 상대로는 이 정도 성능도 충분히 위력적이다.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R-37을 피하느라 정신없는 사이 러시아군 MIG-31이 고속으로 접근해 거리를 좁힌다. 이어서 100~150㎞ 거리에서 능동 레이더 유도 방식인 중거리공대공 미사일 R-77을 쏘면 우크라이나 전투기로선 피할 길이 없다.
한반도 유사시 중국 공군에 제공권 뺏길 우려
러시아가 이런 전술을 쓰기 시작하자 우크라이나 공군의 활동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10월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10~20소티(sortie: 전투기 출격 횟수)의 임무를 수행하던 우크라이나 공군은 11월부터 존재감이 급격히 사라졌다. 12월 들어선 어쩌다 한 번 성공한 공습 임무가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지경이다. 전장에서 우크라이나 전투기가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제공권을 잃은 우크라이나군은 11월 말부터 거의 모든 전선에서 러시아군에 급격히 밀리기 시작했다. 1년 반 이상 버티던 전략적 요충지 아우디우카가 함락 위기에 처했고, 개전 초부터 꿋꿋이 버텨온 마린카는 이미 러시아 손에 넘어갔다. 우크라이나가 엄청난 전력을 동원해 일부 탈환한 바흐무트에서는 러시아군이 대대적 공세를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자국 영토 남부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기 위해 공세를 편 로보티네, 벨리카 노보실카 일대 거점도 하나 둘 함락되고 있다.조기경보기와 고성능 전투기, 초장거리공대공미사일을 이용한 제공권 장악 전술은 지구 반대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만의 일은 아니다. 12월 2일 중국 인민해방군은 선전매체 '해방군보'를 통해 자국산 전투기에 초장거리공대공미사일 PL-17과 장거리공대공미사일 PL-15를 여러 발 탑재해 운용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면 중국도 초장거리공대공 전술을 도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PL-17 공대공미사일은 최대 400㎞, PL-15는 200~300㎞급 사거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군이나 주한미군 전투기가 운용하는 최신형 암람보다 2~3배 긴 사거리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많은 조기경보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상당수가 한반도 서해와 마주한 연안 기지에 배치돼 있다. 한국 공군이 대응책 마련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처럼 유사시 중국의 초장거리공대공 요격 전술에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장거리공대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은 그보다 긴 사거리의 미사일을 만들어 배치하거나, 적 미사일을 교란할 수 있는 전자전 능력을 갖추는 것뿐이다. 현재 한국군으로선 EA-18G 그라울러 같은 전자전 전용기를 도입하거나, 각 전투기의 교란 장비를 현대화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제공권을 상실하고 위기에 내몰린 배경을 면밀히 분석해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 공군력을 보존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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