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뒤통수친 ‘원칙과상식’ 4인방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12. 17.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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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비주류 모임 ‘원칙과 상식’ 의원들이 민주당 혁신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종민, 조응천, 윤영찬, 이원욱. [사진 = 연합뉴스]
미국에서 남의 뒤통수를 잘 치는 3대 민족으로 유대인, 인도인과 더불어 한국인을 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스개지만 그럴듯 하다. 세 민족의 공통점이라면 오랜 세월 타 민족으로부터 탄압받거나 눈칫밥 먹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비우호적인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본심을 있는 대로 드러내서는 곤란하다. 생존에 나름 최적화된 행동 양식이 제삼자가 볼 때는 ‘통수’일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인인 내가 평소 느끼는 한국인관과 썩 매칭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인은 잘 흥분하고, 너무 솔직해서 불편한 민족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에서는 거의 매일 한편씩의 ‘인간 희극’이 쓰여지고 있다. 발자크가 있었다면 소설 100권은 남겼을 것이다. 신문지상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가져온 한국인상이 너무 순진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적어도 여의도에서 만큼은 한국인은 ‘통수의 민족’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이낙연 신당’에 승선하려는 사람이 지금껏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여의도 문법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놀랍다. 정세균, 김부겸 등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한 사람들은 이재명과 이낙연중에서 이재명 쪽에 설 모양이다. 그렇게 이재명 민주당을 걱정하는척 하더니 결국은 ‘그대로 이재명’이다. 그들의 명분은 ‘윤석열이 이재명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혹은 ‘정치는 차악의 선택이다’라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하기는 평생 정치를 하면서 ‘딴에 차악’만 찾아 줄을 섰던 사람들이 그 나이에 ‘혁명’을 하겠는가. 그들에게 차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본인의 남은 인생 복지에 덜 나쁠, 좀 더 안전한’ 기준으로 차악 아니겠나. 그렇게 차악을 쌓고 쌓아 이룩했을 총리 관록은 비루해 보인다.

민주당 내 ‘반명계’ 의원 모임 ‘원칙과상식’에는 4명 의원이 있다. 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이재명 민주당의 나쁜 행태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도맡아 해 온 사람들이다. 이낙연씨는 다른 이들은 몰라도 최소 이들 4인방만은 자기가 띄울 보트에 승선할 것으로 믿고 신당을 결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4인방중 이원욱과 조응천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낙연 신당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내 개혁이 목표이지 신당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머지 두 명은 신당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다.

이들 원칙과 상식을 따지는 4명 의원은 이낙연 신당에 합류하고 싶은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덕은 볼 가능성이 있다. 그로 인해 당내 ‘반명’의 레버리지가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낙연 신당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재명 대표가 공천을 약속할지도 모른다. 조응천은 이재명 대표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와 ‘지역구 여론도 좋은데 왜 그러시냐’고 말했다는 사실을 미주알고주알 전하기도 했다. 다른 의원들도 그 전화를 받았거나 기다리고 있을게 분명하다. 그들에게 원칙과 상식은 무엇인가. 22대 국회 본회의장에 본인이 금배지를 달고 앉아있는 세상이 원칙과 상식에 부합하는 세상이다. 이낙연 신당에서 풍찬노숙하며 정치개혁을 외치다 전사하는 것은 전혀 원칙적이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생각할 것이다.

앞에서 말하는 것과 뒤의 행동이 다른 것, 결정적인 국면에서 명분 대신 이익을 택하는 것이 ‘통수의 정치’라면 지금 이낙연 신당에 대한 민주당 비명계의 반응이야말로 그 전형이다. 여의도는 복잡성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인간성의 밑바닥을 드러내 보이게 만드는 놀라운 세계다. 원칙과상식 4인방이 지금 민주당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수수께끼다. 또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한국에선 정치인 본인의 정체성과 당의 정체성이 일치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디에 있든 의원이라는 것이 중요하고 다음 공천이 중요하다. 당 주류 입장에서 딴소리하는 위인들은 성가시지만 4명 정도라면 품고 갈 수도 있다. 악세서리처럼.

자기가 지향하는 세계관에 맞는 정당을 택하고, 그런 정당이 없으면 창당하는 것, 선거에서 지면 군말 없이 사라지는 것...한국에선 이런 정치를 보기 어렵다. 정치를 하겠다면서 이념은 따지지 않고 공천주겠다는 당을 택한다. 일단 그 당에 들어가면 하루아침에 이념 전사로 거듭난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사가 되지 못한 이들은 당 비주류로 겉돌지만 결코 탈당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시도 자체가 희귀할뿐더러 대부분 실패로 끝난다.

왜 그럴까. 여러 제도적·문화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국회의원 자릿값이 너무 비싼데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당선만 되면 그런 ‘절대갑’이 없다. 책임은 없고 허장성세는 끝장이고 나이와 상관없이 일약 인생의 정점에 선다. 허명이든, 오명이든 세상에 이름 하나는 남기고 갈 수 있게 된다. 잘만 하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어쨌든 본인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국회의원 공천 명부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인류학적인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는 대부분 생활의 달인들이다. 생활에 능한 사람들은 결코 이념에 골몰하지 않는다. 한국 정치에서 ‘통수’가 판치는 것, 가치가 뒷전이 되는 것은 이런 패턴이 무한 반복된 결과다.

생활의 달인들이 흥미를 못 느낄 정도로 국회의원직의 매력을 낮추면 어떻겠는가. 특권은 폐지하고 봉급은 절반으로 낮추고 대신 정원을 두배 혹은 세배로 늘리면 어떻겠는가. 그러면 국회의원은 더 이상 위세 떠는 자리가 못될 것이고 직업으로서의 선망은 격감할 것이며 공천을 놓고 사활적 경쟁을 펼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창당 시도는 늘어나고, 성공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당 주류를 아니꼬워하면서 기어코 그 당에서 살아남으려는 기이한 행태도 없어질 것이다. 원칙과상식 4인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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