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감옥이 아닌 인간성과 창의성의 출발이 돼야 한다[홍성용 기고]
최근 몇 년 사이 정부는 학교시설 개선에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에너지 개선 차원에서 시작한 환경개선이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의미와 개념을 확대해 유청소년기 중요한 인성과 창의력 기반의 공간으로 개선하고 있다. 모 대학 교수는 한국 학교환경을 비판하면서 교도소와 학교건축을 언급한 적이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덧붙이면 정신병원도 유사하다.
사실 오늘날 학교 교육 시스템은 산업혁명 이후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 접근에 의해 구성됐다. 교육적 가치와 의미도 있지만, 학교는 첫 사회교류 공간이면서, 장차 사회구성원의 역할과 능력, 정서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목적과 취지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학교는 경쟁에 의한 입시 준비공간으로 수십년간 존재했다. 창의성과 사회성, 정서적 교육환경이 미흡하다고 자주 비판받았다. 부정하고 비판해도 공간에서 목적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이상 학교가 바뀔 수가 없다.
전문가입장에서 서울 교육청 건축설계공모 심사위원으로 매번 학교 신축설계공모 심사할 때마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최대한 현 제도 안에서 창의력이 솟아나는 그런 학교건축을 선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이 시점에 여전한 제도와 이에 맞출 수밖에 없는 학교 공간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이웃 중국이나 일본은 혁신적이고 창의적 학교를 계속 만들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은 오래전부터 도전하고 모험하고 시도하고 있다. 남미 학교에서도 놀라운 시도들이 발표되고 있다. 교육열과 사교육비는 전세계 최고 수준으로 지불하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입시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역시 문제는 교육시스템이 첫 번째 이유다. 현재 한국 교육시스템은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 서열 만들기가 핵심으로 공교육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시니 수시니 하는 대학을 가기 위한 테스트도 너무 디테일해 학교에 요구하는 공간 자체가 의미가 없다. 이런 시험제도 자체를 개선하지 않으면 공간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미국도 썩 좋은 교육제도를 가진 나라는 아니지만, SAT 자체가 여러 평가 기준 중 하나일 뿐이고, 말 그대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수업을 따라가는 기준이라 학교가 좀 더 풍부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의 경우는 지나친 민간 중심이라 공교육도 부자 동네에서는 환경이 너무 좋지만, 가난한 동네에서는 그저 그렇다.
엄청난 학비를 자랑하는 필립엑스터 중고등학교는 대학 이상의 거대한 캠퍼스를 가졌다. 세계적 건축 거장 루이스 칸의 놀라운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성장기를 보낸다. 사립학교가 압도적 시설을 갖췄고 공립도 못지않다. 미식축구장이 여럿 있고, 수영장이 있는 캘리포니아 얼바인 공립중고등학교는 눈의 휘둥그래질 정도로 시설이 좋다. 인터넷으로 얼바인 노스우드 공립고등학교를 찾아보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는 화장실에 있어서 규칙적 수업에 미숙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 시간과 규율을 자연스럽게 사회 속에서 학습하는 것이다. 학교인지 카페인지 모를 중국 시범 공립 초중고등학교, 마치 잔디밭이 솟아오른 듯이 층층이 교실을 형성하는 프랑스 학교, 도우넛 모양으로 끝없이 뛰어다니는 옥상을 가진 일본 유치원까지 우리가 아는 학교 모습을 완전히 벗어난 모양새다.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일까. 핵심은 공간 전문가인 건축사에게 일임하는 시스템과 탄력적인 예산운영이다. 거기에 학교건축의 상상력과 전문성을 강화하는 건축 발주 시스템도 한몫한다. 미국 표준 초등학교 건축 모델을 만든 에로 사리넨(뉴욕 TWA공항 설계 건축가)이라는 건축가가 한 일만 봐도 전문가 육성과 인정이 얼마나 매력적 성과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은 건축사에게 완전히 일임하지 않을뿐더러 새로운 창의적 환경 공간을 만들어내는 전문 건축사를 키우지도 않는 구조다. 그냥 발주하고 만들어내는 용역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홍성용 대한건축사협회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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