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측근 친강 ‘사망설’…관례 뒤엎는 시진핑의 1인 통치
(시사저널=모종혁 중국 통신원)
10월29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샹산(香山)포럼'이 열렸다. 샹산포럼의 정식 명칭은 국제안보협력과 아시아태평양지역 안전논단이다. 2006년 중국군사과학학회 주관으로 처음 개최된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샹산포럼을 개최하는 이유는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주도하는 '샹그릴라 대화'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샹그릴라 대화는 2002년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외교안보 관심사를 논의하는 대화체다. 정식 명칭은 아시아안보회의다. 싱가포르의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리기에 샹그릴라 대화라는 별칭을 얻었다.
샹산포럼도 마찬가지다. 처음 유명 관광지인 샹산의 호텔에서 개최되어 이런 별칭을 얻었다. 수년 후에는 아예 이름을 바꿨다. 샹산포럼은 해마다 급성장했는데 중국 군부의 최고위 인사가 포럼의 호스트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방부장이 외빈을 영접하고 기조연설을 하는 등 행사를 주도해 왔다. 올해는 더 특별했다. 엔데믹에 따라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대면회의가 복원됐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영국, 러시아 등 90여 국가 및 국제기구 대표단이 참석했다. 국방장관 및 참모총장급 인사도 30여 명에 달했다.
그런데 올해 샹산포럼 호스트는 이례적으로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장유샤와 허웨이둥이 번갈아 맡았다.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시진핑 주석에 이어 군부 서열 2위의 인사다. 장유샤 부주석은 개막식 기조연설에서 미국을 겨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은 미국과의 모든 군사 소통채널을 끊은 상태다. 하지만 연설 말미에는 미·중 군사관계 개선 의지도 피력했다. 마침 미국에선 국방부 차관실의 중국 담당 책임자가 참석했다.
신조어가 된 '호랑이·파리' 잡기
이후 외신은 미·중의 군사 소통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11월15일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만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은 양국 간 군사 소통 복원에 합의했다. 그러나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이를 담당할 국방부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10월24일 국방부장 리상푸(李尙福)가 해임됐다. 리상푸는 8월29일 이후 계속 실종 상태다. 중국은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았다.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그래서 샹산포럼 호스트를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맡은 것이다.
12월8일 존 커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중국과의 군사 소통은 오판과 오해를 줄이는 데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커비는 "우리는 군사 소통채널이 복원되길 고대한다"며 "빨리 국방부장을 새로 지명하길 촉구한다"고 했다. 이상 기류는 또 있다. 올해 공산당 제20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3중전회)가 무산된 것이다. 그동안 3중전회는 5년 동안 중국을 이끌 최고지도부를 선임한 전국대표대회(당대회) 다음 해 10~11월에 열렸다. 전체회의는 7차례 열리는데, 3중전회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신임 지도부가 향후 펼칠 주요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이 종식된 후 복권한 덩샤오핑은 1978년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발표했다. 2013년 시진핑 주석은 3중전회에서 일대일로를 새 국책사업으로 공식화했다. 하지만 올해 3중전회가 물 건너가면서 1984년 이후 39년 만에 공산당 관례가 깨져버렸다. 외신은 "미·중 분쟁, 경기 침체, 외국인 투자 감소 등 최근 들어 다뤄야 이슈가 많아져 중국 최고지도부에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2월 시진핑 주석의 행보를 보면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12월8일 시 주석이 주재한 중앙정치국 회의는 당내 반부패 운동을 강화하고 가속하는 방침을 확인했다. 곧이어 나흘 동안 리펑신 전 신장위구르 자치구 부서기 등 3명의 고위 관료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조사 대상이 됐다. 이로써 올해 기율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차관급 이상 전·현직 간부는 45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가장 많은 수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원이 사정 대상에 오르면 기율감찰위가 먼저 조사하고 이후 검찰이 수사해 사법처리하는 수순을 밟는다.
즉 기율 위반으로 조사받는 자체가 사실상 낙마로 간주된다. 시 주석은 집권 직후부터 부정부패 척결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로 인해 중국에서는 '호랑이'와 '파리' 잡기가 신조어로 등장했다. 호랑이는 차관급 이상 거물 혐의자를, 파리는 지역의 당정 관료를 가리킨다. 기율검사위 발표로 추려 보면 시 주석 집권 첫해인 2013년 21명을 시작으로 호랑이를 잡았다. 2014년 41명, 2015년 37명, 2016년 29명, 2017년 32명, 2018년 28명, 2019년 22명, 2020년 20명, 2021년 25명, 2022년 34명 등 해마다 최소 20명 이상을 단죄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시 주석과 다투었던 정적, 경쟁 관계에 있는 파벌 인사 등을 제거하거나 은퇴한 관료를 단죄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는 권력을 분점한 집단지도체제를 시 주석의 '1인 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저항·반발 세력을 처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20기 중앙정치국 중앙위원 4명이 1년도 안 되어 낙마했는데, 모두 시 주석이 임명한 이들이었다. 심지어 전 외교부장인 친강, 국방부장이었던 리상푸는 시 주석의 총애로 성장했다. 사정 칼날에 시 주석의 수족이 날아간 것이다.
"친강, 고문으로 죽었다" 소문 떠돌아
게다가 11월부터 중국 내에서는 친강이 이미 죽었다는 소문까지 떠돌고 있다. 친강이 기율검사위에서 조사를 받다가 심한 고문을 못 견뎌 자살했다는 내용이다. 12월6일 미 정치 전문매체인 폴리티코도 중국 내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지난 7월말 친강이 중국 고위층 인사들을 치료하는 군병원에서 숨졌고, 고문이나 자살이 확실한 원인이라는 내용이다. 진위는 좀 더 살펴봐야 알겠지만 소문을 들은 중국인들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과거 공산당 내에서 불문율처럼 지켜왔던 숙청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건국의 아버지 마오쩌둥 이래 최고지도자는 정적을 숙청해도 목숨은 보존해 줬다. 오랫동안 공산당원으로서 당을 위해 헌신했던 공로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이 숙청했던 류샤오치와 펑더화이가 문혁의 광란 속에 홍위병에게 맞아 제대로 치료를 못 받고 죽었을 뿐이다. 끝내 살아남은 덩샤오핑은 결국 권력을 잡았다. 시 주석과 다투었던 보시라이, 저우융캉 등도 숙청 후 친청 감옥에 있지만 일반 교도소와는 환경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특급호텔급 시설에서 호화 서비스를 받으며 지낸다.
그러나 친강이 고문까지 받다 죽었다면 또 공산당 관례를 뒤엎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법치주의를 통해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평소 시 주석의 호언장담도 공수표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이미 정식적인 사법 처리 과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기율감찰위가 시진핑 주석의 집권 이래 사실상 수사기관 역할을 맡고 있는 현실 자체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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