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은 우연일까
● 세균이 침입한 곰팡이의 대처법
‘맨눈으로 보기 힘든 작은 생물체’라는 뜻을 지닌 미생물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흔히 매스컴에서 들을 수 있는 미생물에는 세균(박테리아)과 바이러스가 있고 평균 크기가 이들보다 더 큰 것으로 곰팡이와 원생생물이 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을 못하고 숙주 세포에 들어가서 숙주 세포의 능력을 이용해야 증식이 가능하므로 생물체와 무생물체의 중간에 속한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평균 크기로는 가장 작은 미생물이지만 거대세포바이러스와 같이 아주 큰 바이러스도 있다.
최근에 중국에서 폐렴 환자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원인은 세균보다 작은 마이코플라즈마(미코플라즈마)의 유행 때문이다. 마이코플라즈마는 바이러스보다는 크고 세균보다는 작은 미생물로 이미 20세기 초부터 그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마이코플라즈마를 세균의 한 종류로 분류하기도 하고, 독립된 미생물로 취급하기도 한다.
마이코플라즈마는 실험실에서 배양중인 세포에 감염되어 세포사멸의 원인이 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폐렴을 일으킨다는 사실도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전파속도가 빠르고 감염 후 증상이 전보다 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기, 독감과 마찬가지로 호흡기에 감염되는 병이므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예방에 노력해야 한다.
곰팡이는 세균보다 크므로 바이러스나 세균이 곰팡이에 침입할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은 외부로부터 침입한 미생물을 퇴치할 수 있도록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지만 단세포생물인 곰팡이는 면역 반응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곰팡이에게 더 작은 미생물이 침입하는 경우 이를 퇴치할 수 있도록 곰팡이는 세균을 사멸할 수 있는 물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이를 항생제라 하며 지금까지 수많은 항생제가 개발되어 사람에게서 발생한 세균감염증을 치료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곰팡이가 세균을 물리칠 수 있는 항생제를 가지고 있는 것도 신기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아내서 감염병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항생제는 언제 어떤 경로로 발견되었을까.
● 항생제 발견의 선구자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도시 인구가 많지 않았지만 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농촌 인구는 감소하고 도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사람을 많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면서 위생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십년이 지나면서 도시 환경이 질병의 원인이 될 거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19세기 초에 채드윅(Edwin Chadwick)은 가난한 사람들이 병에 잘 걸리는 걸 알아채고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두 밀레니엄 동안 믿어온 미아즈마설(나쁜 공기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이론)을 믿었으므로 나쁜 공기의 원인이 되는 나쁜 물과 악취를 일으키는 쓰레기 등을 제거하려는 위생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이 되자 미생물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s)는 1861년을 전후하여 효모가 발효를 일으키면 맛있는 포도주가 생산되지만 쓸모없는 세균이 오염되는 경우 포도주가 상해서 마실 수 없음을 알아냈다. 또 1876년에 독일의 코흐(Robert Koch)가 탄저(병)의 원인이 되는 세균을 발견하면서 감염병은 미생물에 의해 발생함이 알려졌다.
채드윅의 위생운동은 학문적으로 볼 때 옳은 이론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위생을 청결히 하면서 결핵을 비롯한 감염병 발생을 줄일 수 있었다. 현미경을 이용한 관찰이 일반화하면서 19세기 후반이 되자 감염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를 찾아내고 감염예방이 가능한 백신을 개발하는 등 미생물이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1870년 10월, 영국의 샌더슨(John Burdon-Sanderson)은 아주 흥미로운 발견을 했다. 곰팡이가 포함되어 있는 물을 끓인 후에는 이 물에서 세균이 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 보는 현상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그는 곰팡이에 들어 있는 항생제가 세균의 성장을 막는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세균이 공기를 통해 전파되지 않는다”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했다.
1865년에 수술실을 석탄산(페놀)으로 소독하면 수술후에 발생하는 2차 감염을 예방할 수 있음을 발견한 리스터(Joseph Lister)는 1871년에 곰팡이가 포함된 소변에서 세균이 자라지 못함을 발견했다. 그가 발견한 곰팡이는 Penicillium glaucum였고, 여기서 얻은 추출물로 간호사의 부상을 치료했다.
파스퇴르는 같은 해에 특정 세균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 다른 세균이 잘 자라지 못하는 현상을 발견하고 “한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89년에 비예맹(Jean Paul Vuillemin)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가 자신의 존재를 보장하기 위해 다른 유기체를 죽이는 생물학적 관계”를 항생(antibiosis)라 정의했다. 또 1897년에 뒤센느(Ernest Duchesne)는 Penicillium glaucum이 대장균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등 곰팡이가 세균의 성장을 막을 수 있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의 행운
1901년 세인트매리의대를 졸업한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미생물 연구를 하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패혈증 등 각종 감염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부상병을 대하면서 감염질환 해결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1918년에 세인트매리병원으로 돌아간 그는 1922년에 사람의 몸에서 분비되어 세균을 용해시킬 수 있는 리소자임(라이소자임, lysozyme)을 발견하기도 했다.
곰팡이를 배양하여 멸균 능력을 지닌 물질을 찾고 있던 1928년 플레밍은 세균을 키우는 배지에 곰팡이가 오염된 경우 곰팡이 주위로 세균이 자라나지 않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발견은 플레밍이 디자인한 연구방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플레밍이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중에 아래층에서 배양하던 곰팡이가 운좋게 윗층으로 날아와 플레밍이 배양중인 세균의 배지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플레밍은 실험중에 사용한 배지를 버리지 않고 휴가를 가는 바람에 배지가 실험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여기에 곰팡이가 떨어진 것이다. 배지는 배양기가 아닌 실온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 해 여름은 다른 해보다 온도가 낮았다.
그래서 플레밍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세균은 많이 자라지 않았고 특히 곰팡이가 오염된 주변에는 세균이 자라나지 않아서 배지 내에서 세균이 자란 부분과 자라지 않은 부분을 구별할 수 있었다. 휴가에서 돌아와 내버려둔 배지를 발견한 플레밍은 얼른 버리지 않고 무심코 배지를 들여다 본 순간 세균이 자라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알아내고자 한 것이 곰팡이가 지닌 항생물질의 발견으로 이어진 것이 우연이자 행운에 의한 발견이었다.
이 발견에 흥미를 느낀 플레밍은 곰팡이의 어떤 능력이 그 주변에 세균을 자라지 못하게 했는지를 알아내려 했고, 이 과정에서 Penicillium notatum 곰팡이에 들어 있는 항생효과를 지닌 물질을 찾아내어 페니실린이라 이름붙였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이 자신이 연구재료로 삼고 있던 포도(상)구균, 연쇄(상)구균, 뇌막염균, 임질균, 디프테리아균 등을 성장을 억제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페니실린의 항균력은 플레밍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지속시간도 짧았고 유효성분도 순수하게 분리해 내지 못했으므로 플레밍은 연구를 중단하고 말았다.
플레밍은 1929년 5월에 “곰팡이로부터 얻은 물질의 항균력이 우수하기는 하나 생체내에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후 연구를 중단했다. 결과적으로 플레밍의 발견은 앞 선 연구자들이 발견한 곰팡이의 항균 효과와 별 차이가 없었고 서서히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 페니실린을 살려내어 세상을 바꾼 플로리와 체인
앞선 발견과 아무 차이가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가던 페니실린을 살려낸 학자는 플로리(Howard Walter Florey)와 체인(Ernst Boris Chain)이었다. 1935년부터 옥스포드대에서 병리학교수로 일하기 시작한 플로리는 이듬해에 체인을 초빙하여 함께 연구를 진행했다.
초기에 이들은 라이소자임을 순수분리하여 작용기전을 알아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플레밍의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가 쓴 논문을 유심히 검토했다. 플로리와 체인은 플레밍이 발견한 물질에 대해 새로운 방법으로 연구를 하면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재검토에 들어갔다.
그들이 보기에 플레밍은 적정 용량을 측정하는 일에서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용량에 따른 사용기간을 측정하면 더 나은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연구에 착수했다. 순수분리한 페니실린 분말을 이용하여 1940년부터 동물실험을 수행하여 감염증이 발생한 쥐에서 페니실린이 유효하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이 페니실린을 분리하기 위해 사용한 곰팡이는 Penicillium chrysogenum이었다.
플로리와 체인은 페니실린을 대량으로 분리하기 위한 연구와 환자 대상의 임상시험을 실시하여 1941년에 페니실린이 감염병 치료제로 유효함을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영국의 제약회사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바람에 미국에서 대량생산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부터 페니실린은 부상병 치료에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다. 그 해에 페니실린의 구조식도 밝혀지고 구조의 작은 차이에 따라 종류도 다양함이 알려졌다. 지금은 곰팡이에서 분리하는 대신 반합성 페니실린을 사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수여된 1945년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장자로 페니실린을 발견한 플레밍, 페니실린을 대량 합성하고 그 효과를 입증한 플로리와 체인이 선정되었다. 플레밍은 자신의 수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플로리와 체인은 플레밍이 페니실린의 활용에 대해 무관심했으므로 공동 수상이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페니실린의 가치가 입증된 후부터 플레밍은 매스컴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의 업적을 잘 이야기한 것이 인터뷰를 자주 거절한 플로리와 체인보다 더 이름이 잘 알려지는 결과를 낳았다.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3명이 발견한 페니실린은 곰팡이로부터 세균에 의한 감염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첫 예에 해당한다. 그 후로 다양한 종류의 곰팡이로부터 다양한 항생제가 발견되어 인류를 감염병의 위험에서 구해줄 수 있게 되었다.
페니실린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1943년은 제2차 세계대전중이었으며, 전상자 치료에 페니실린이 이용되면 짧은 시간에 그 효과가 잘 입증되어 전쟁으로 인한 의학 발전의 한 예를 보여 주기도 했으니 시대가 항생제 보편화를 앞당겼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Guillaume André Durand, Didier Raoult, Grégory Dubourg. Antibiotic discovery: history, methods and perspectives. International Journal of Antimicrobial Agents. 53(4);371-382, 2019
데이비드 윌슨. 페니실린을 찾아서. 장영태 역. 전파과학사. 2019
John Harold Talbott. A biographical history of medicine: Excerpts and essays on the men and their work. Grune & Stratton. 1970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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