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비아그라의 정체는?…러시아 차르·프랑스 황제 침실엔 ‘이것’ 있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의 와인클럽 29- 헝가리 토카이 와인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18세기 최음제, 정력제로 알려지며 러시아 차르와 프랑스 황제의 침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헝가리 와인 ‘토카이(Tokaji)’와 이를 수송한 코사크 부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카자크(러시아어), 코자키(우크라이나어), 코사크(영어) 등 다양하게 표기하는데 코사크로 통일하겠습니다.
1654년 청나라 사신은 조선에 군사지원을 요구합니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때 조선군의 조총술을 눈여겨보았던 겁니다. 조선이 처음으로 외국에 군사를 파견한 ‘나선(羅禪) 정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선’은 러시아를 의미합니다. 이에 앞서 1652년 아무르강(흑룡강) 일대 러시아군 200여명에게 청나라군 2000여명이 궤멸당하는데 이 러시아군이 코사크 부대입니다.
타라스 불바는 동유럽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폴란드와 갈등을 빚은 1648년 카자크(코사크) 대봉기가 그 배경입니다. 코사크 지도자인 불바(율 브리너)는 폴란드 여인을 사랑해 민족을 배신한 아들(토니 커니스)을 향해 총을 쏘고, 영화는 결말로 달립니다.
토카이 와인은 달콤한 스위트 와인입니다. 주로 식전 또는 식후에 디저트와 함께 마시지만 그냥 와인만 마셔도 풍미가 일품입니다.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은 ‘샤토 디켐’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테른과 독일에서 TBA라 불리는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와 더불어 세계 3대 스위트 와인으로 불립니다. 시기적으론 토카이 와인이 3개 와인 중 가장 앞서기 때문에 첫 ‘귀부와인’으로 불립니다.
‘귀부와인’이란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묘합니다. 귀하고 부유한 자들이 마시는 와인이라 ‘귀부’라고 불렀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전엔 달달한 와인이 귀했고, 귀하니까 당연히 가격이 비싸서 스위트 와인은 부자들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귀부와인의 뜻은 ‘귀하게 부패했다’는 뜻으로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의미합니다. 귀부균은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 영어로는 노블 롯(Noble Rot)이라고 부릅니다.
루이 14세는 달콤한 토카이를 마시면서 “왕들의 와인이자, 와인들의 왕(The Wine of Kings, King of Wines)”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루이 15세와 그의 정부 마담 퐁파두르가 사랑을 나누며 이같이 속삭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토카이 와인 덕분인지 프랑스와 러시아 황실에는 ‘사랑’이 넘쳤습니다. 프랑스 루이 15세는 왕비로 부터 10남매를 얻었지만 유부녀 퐁파두르 부인을 애첩으로 두고 토카이 와인을 함께 마셨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후에 스스로 ‘채홍사’ 역할까지 하면서 루이 15세의 성욕을 채워줍니다.
루이 15세는 ‘사슴 정원’(Parc aux Cerfs)이란 곳을 만들어 젊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중 한 명이 로코코 미술의 대가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오뮈르피였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오뮈르피의 벗은 모습을 담은 ‘엎드려 쉬는 소녀’ 그림을 보고 루이 15세는 그녀를 사슴정원의 여인으로 만듭니다. 오뮈르피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는데 사슴정원의 여인들은 하층계급 출신의 소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루이 15세가 성병을 피하기 위해 성관계 경험이 없는 가난한 집안의 소녀들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토카이 와인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사람은 영국의 유명 와인평론가 휴 존슨입니다. 1989년 헝가리 민주화가 이뤄지자 그는 서구 자본을 유치해 ‘로얄 토카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토카이 와인을 생산합니다. 프랑스 보험회사 악사(Axa) 등도 토카이 와인 투자에 동참하면서 토카이 와인은 다시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토카이 와인 중에서도 에센시아(Essencia)는 가장 귀한데 휴 존슨은 토카이 에센시아를 ‘액체 비아그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프랑스 황제와 러시아 차르 등 유럽 황실의 러브 스토리를 소환한 것이지요.
와인을 만들 때 효모는 포도의 당을 분해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만드는데요. 당이 지나치게 많으면 효모가 활동하지 못합니다. 효모가 당을 분해하지 못하면 남아있는 잔당은 높고, 알코올 전환이 안 돼 알코올 도수는 낮아지게 됩니다. 토카이 에센시아는 알코올 도수가 5% 미만이며 잔당은 리터당 450그램 이상이나 됩니다. 달달하면서도 도수가 낮아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위 ‘앉은뱅이’ 술이 됩니다.
우크라니나 전쟁이 터지면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겐 코사크의 피가 흐른다”며 전투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1648년 폴란드에 대항했던 코사크 기병대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대장 부리바(타라스 불바)의 활약상을 보여준 영화와 실제 역사는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이후 코사크 기병은 러시아 황제 차르의 근위대로 활동하며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을 러시아 황실로 운송하기도 하고, 러시아의 동진정책에 앞장서 1903년 평북 용암포에서 조선군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나선정벌’ 역시 1654년이란 점입니다. 그렇다면 페레야슬라브 협정(1654년)보다도 앞서 1652년 청나라 군대와 충돌한 코사크 부대는 누구였을까요? 이들은 예르페이 하바로프의 코사크 부대였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10월 혁명으로 러시아에선 붉은 군대와 제정 러시아군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이 소용돌이에 휘말린 코사크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고요한 돈강’입니다. 코사크의 일부는 붉은 군대에, 다른 일부는 제정 러시아군에 속해 싸웁니다. 양쪽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러시아가 1차 세계대전 중 멸망하자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소비에트 연방에 분할 지배됩니다. 이어 2차대전이 터지자 코사크 일부는 독일 편에, 또 다른 일부는 소련 편에서 싸우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1992년 소련 해체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가 됩니다.
하지만 1654년 코사크와 러시아가 맺은 페레야슬라브 협정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의 불씨가 됩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협정을 러시아와의 단순 군사동맹으로 해석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이 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귀속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코사크도 폴란드로 부터의 독립에 실패합니다. 같은 시기에 조선의 총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무르강 유역에서 또 다른 코사크 부대와 서로 총을 겨눴습니다. 당시 폴란드의 지배를 피해 러시아에 의존했던 코사크(우크라이나)는 결국 러시아와 다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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