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비아그라의 정체는?…러시아 차르·프랑스 황제 침실엔 ‘이것’ 있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12. 17. 06: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기정의 와인클럽 29- 헝가리 토카이 와인

러시아의 황실의 명령을 받은 용맹한 코사크 부대가 헝가리로 들어옵니다. 이들의 임무는 ‘사랑의 묘약’을 헝가리에서 러시아까지 안전하게 수송하는 것입니다. 이 달콤한 사랑의 묘약은 워낙 인기가 높았던 탓에 헝가리에서 러시아로 이동하는 동안 약탈을 당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러시아 황실은 이를 막기 위해 가장 용맹한 코사크 부대에 수송작전을 맡깁니다.

이번 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18세기 최음제, 정력제로 알려지며 러시아 차르와 프랑스 황제의 침실에서 인기를 끌었던 헝가리 와인 ‘토카이(Tokaji)’와 이를 수송한 코사크 부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카자크(러시아어), 코자키(우크라이나어), 코사크(영어) 등 다양하게 표기하는데 코사크로 통일하겠습니다.

코사크 부대에 맞선 조선 포수들
영화 남한산성에서 조선 포수들의 모습. 청나라는 ‘나선정벌’을 위해 조선 포수를 요구한다.
“조선은 조총수 100병을 보내라. 나선을 정벌하려고 한다.”

1654년 청나라 사신은 조선에 군사지원을 요구합니다. 청나라는 병자호란 때 조선군의 조총술을 눈여겨보았던 겁니다. 조선이 처음으로 외국에 군사를 파견한 ‘나선(羅禪) 정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선’은 러시아를 의미합니다. 이에 앞서 1652년 아무르강(흑룡강) 일대 러시아군 200여명에게 청나라군 2000여명이 궤멸당하는데 이 러시아군이 코사크 부대입니다.

러시아의 동맹국이었던 프랑스에서 1904년 4월 3일 발행된 신문 ‘르프티파리지앵(Le Petit Parisien)’의 러일전쟁 풍자 그림.
코사크 기병은 용맹한 무사집단으로 ‘동유럽의 사무라이’라고 불리며 각종 전투에서 이름을 날렸습니다.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에 코사크 부대는 선봉대 역할을 했습니다. 동진 정책을 펼친 러시아는 1903년 평북 용암포를 점거하고 군사기지화하는데 이때도 코사크 부대가 동원됐습니다. ‘러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입니다. 러일전쟁에서 코사크 부대는 일본군의 신식무기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집니다.
대장 부리바의 후예들
대장 부리바 영화 포스터
‘코사크 기병’하면 50대 이상의 독자들은 러시아 태생 대머리 배우 율 브리너가 주연한 영화 ‘대장 부리바’를 떠올릴 겁니다. 우크라이나 태생 고골이 러시아어로 쓴 소설 ‘타라스 불바’(Taras Bulba)가 원작인데 대장 부리바는 일본식 번역이라고 합니다. 코사크 전통 털모자인 ‘쿠반카’를 쓰고 말을 달리며 대초원지대를 누비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촬영은 아르헨티나 팜파스 초원에서 이뤄졌다고 합니다.

타라스 불바는 동유럽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폴란드와 갈등을 빚은 1648년 카자크(코사크) 대봉기가 그 배경입니다. 코사크 지도자인 불바(율 브리너)는 폴란드 여인을 사랑해 민족을 배신한 아들(토니 커니스)을 향해 총을 쏘고, 영화는 결말로 달립니다.

귀하게 부패한 포도로 만든 와인
곰팡이 균에 감염돈 포도 아수.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이 헝가리 스위트 와인 토카이다.
헝가리 토카이 와인의 위력이 도대체 얼마나 대단했길래 러시아 황실은 용맹한 코사크 기병까지 동원해 헝가리로부터 토카이 와인을 가져오려 했을까요?

토카이 와인은 달콤한 스위트 와인입니다. 주로 식전 또는 식후에 디저트와 함께 마시지만 그냥 와인만 마셔도 풍미가 일품입니다.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은 ‘샤토 디켐’으로 유명한 프랑스 소테른과 독일에서 TBA라 불리는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Trockenbeerenauslese)와 더불어 세계 3대 스위트 와인으로 불립니다. 시기적으론 토카이 와인이 3개 와인 중 가장 앞서기 때문에 첫 ‘귀부와인’으로 불립니다.

‘귀부와인’이란 이름이 주는 뉘앙스가 묘합니다. 귀하고 부유한 자들이 마시는 와인이라 ‘귀부’라고 불렀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전엔 달달한 와인이 귀했고, 귀하니까 당연히 가격이 비싸서 스위트 와인은 부자들만 마실 수 있는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귀부와인의 뜻은 ‘귀하게 부패했다’는 뜻으로 귀부균에 감염된 포도로 만든 와인을 의미합니다. 귀부균은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 영어로는 노블 롯(Noble Rot)이라고 부릅니다.

곰팡이 균에 감염된 포도.
토카이 와인의 탄생은 17세기로 올라갑니다. 1650년대 당시 헝가리는 오스만튀르크의 침략을 당합니다. 헝가리 농부들은 포도수확을 포기하고 피란을 갔는데 다시 돌아와 보니 포도가 곰팡이(귀부균)에 감염돼버렸습니다. 곰팡이가 껍질에 구멍을 내 수분이 날아가고 말라버린 포도를 아수(Aszu)라고 불렀는데 ‘마르다’(Dry)란 뜻입니다. 아수로 만든 와인은 당도가 응축된 독특한 맛을 내면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망한 게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황제, 러시아 차르의 침대를 지킨 토카이
루이 14세
18세기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헝가리는 귀족 라코치 페렌츠 2세를 중심으로 해방운동을 벌였습니다. 1701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을 계기로 프랑스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견제하기 위해 헝가리 독립운동을 돕습니다. 독립전쟁은 실패했지만 라코치 페렌츠 2세는 토카이 와인을 루이 14세에게 외교선물로 보냅니다.

루이 14세는 달콤한 토카이를 마시면서 “왕들의 와인이자, 와인들의 왕(The Wine of Kings, King of Wines)”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루이 15세와 그의 정부 마담 퐁파두르가 사랑을 나누며 이같이 속삭였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루이15세의 정부 퐁파두르 부인
헝가리를 지배한 합스부르크의 프란츠 요제프 1세도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토카이를 생일 때마다 선물했다고 합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영국(잉글랜드)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가를 돕습니다. 요제프 1세는 빅토리아 여왕이 살아 온 개월 수마다 1병꼴로 와인을 보냈는데, 여왕의 마지막 생일이던 81세 때는 972병의 와인을 보냈다고 합니다.
표트르 1세
합스부르크 가문은 러시아 황실에도 토카이를 선물로 보냅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와 그의 부인 예카테리나 1세부터 예카테리나 2세(캐서린 대제)까지 러시아 황실도 토카이 와인을 즐겼습니다.
루이 15세, 예카테리나 2세가 즐긴 사랑의 묘약
루이 15세
헝가리 토카이 와인에 ‘정력제’나 ‘최음성분’이 들어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았지만 17~18세기 당시 토카이 와인은 최음제, 정력제로 알려졌습니다. 또 ‘만병통치약’으로도 사용됐습니다.

토카이 와인 덕분인지 프랑스와 러시아 황실에는 ‘사랑’이 넘쳤습니다. 프랑스 루이 15세는 왕비로 부터 10남매를 얻었지만 유부녀 퐁파두르 부인을 애첩으로 두고 토카이 와인을 함께 마셨습니다. 퐁파두르 부인은 후에 스스로 ‘채홍사’ 역할까지 하면서 루이 15세의 성욕을 채워줍니다.

루이 15세는 ‘사슴 정원’(Parc aux Cerfs)이란 곳을 만들어 젊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가졌는데 그중 한 명이 로코코 미술의 대가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오뮈르피였습니다. 당시 15세였던 오뮈르피의 벗은 모습을 담은 ‘엎드려 쉬는 소녀’ 그림을 보고 루이 15세는 그녀를 사슴정원의 여인으로 만듭니다. 오뮈르피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는데 사슴정원의 여인들은 하층계급 출신의 소녀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루이 15세가 성병을 피하기 위해 성관계 경험이 없는 가난한 집안의 소녀들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엎드려 쉬는 소녀.
황후였다가 여황제가 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크림반도를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고 유럽의 신흥강국 폴란드를 무너뜨리는 등 러시아를 강대국의 대열에 올려놓습니다. 그녀는 60세가 넘어 죽을 때까지 다양한 남성들을 정부로 두며 황제의 침실로 들인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황제인 남편을 폐위시키며 친위쿠테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예카테리나 2세는 처음에는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공히 하는 수단으로 잠자리를 이용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남성편력이 심해지면서 젊고 잘 생기기만 하면 침대로 남자를 불렀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 2세
액체 비아그라 토카이의 부활
마시는 비아그라로 불린 로얄 토카이 에센시아
헝가리 공산화와 함께 토카이 와인의 명성은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집니다. 와인 생산시설이 국유화되고 ‘대량생산’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품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됐습니다. 또 비위생적인 생산시설에서 산화된 와인들이 풀리면서 토카이 와인 소비는 급감하게 됩니다.

토카이 와인의 르네상스를 주도한 사람은 영국의 유명 와인평론가 휴 존슨입니다. 1989년 헝가리 민주화가 이뤄지자 그는 서구 자본을 유치해 ‘로얄 토카이’라는 회사를 만들고 토카이 와인을 생산합니다. 프랑스 보험회사 악사(Axa) 등도 토카이 와인 투자에 동참하면서 토카이 와인은 다시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토카이 와인 중에서도 에센시아(Essencia)는 가장 귀한데 휴 존슨은 토카이 에센시아를 ‘액체 비아그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프랑스 황제와 러시아 차르 등 유럽 황실의 러브 스토리를 소환한 것이지요.

와인을 만들 때 효모는 포도의 당을 분해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만드는데요. 당이 지나치게 많으면 효모가 활동하지 못합니다. 효모가 당을 분해하지 못하면 남아있는 잔당은 높고, 알코올 전환이 안 돼 알코올 도수는 낮아지게 됩니다. 토카이 에센시아는 알코올 도수가 5% 미만이며 잔당은 리터당 450그램 이상이나 됩니다. 달달하면서도 도수가 낮아 꿀꺽꿀꺽 넘어가는 소위 ‘앉은뱅이’ 술이 됩니다.

“우리에겐 코사크의 피가 흐른다”
코사크
다시 코사크 기병대 얘기로 돌아가 봅니다. 코사크의 후예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니나 전쟁이 터지면서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우리에겐 코사크의 피가 흐른다”며 전투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언론에 자주 등장합니다.

1648년 폴란드에 대항했던 코사크 기병대에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대장 부리바(타라스 불바)의 활약상을 보여준 영화와 실제 역사는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폴란드 기병 후사르
카자크(코사크) 대봉기는 당시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폴란드 기병 ‘후사르’의 활약에 밀려 좌절됩니다. 패색이 짙어지자 코사크의 보흐단 흐멜니츠키는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고 1654년 러시아 황제와 페레야슬라브(Pereiaslav) 협정을 맺습니다. 코사크는 자치권을 얻는 대신 러시아의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코사크 기병은 러시아 황제 차르의 근위대로 활동하며 헝가리의 토카이 와인을 러시아 황실로 운송하기도 하고, 러시아의 동진정책에 앞장서 1903년 평북 용암포에서 조선군과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나선정벌’ 역시 1654년이란 점입니다. 그렇다면 페레야슬라브 협정(1654년)보다도 앞서 1652년 청나라 군대와 충돌한 코사크 부대는 누구였을까요? 이들은 예르페이 하바로프의 코사크 부대였습니다.

러시아 극동부의 중심도시 하바로프스크에 세워진 하바로프 동상.
러시아 모피무역상 스트로가노프는 1581년 동방원정대를 조직해 시베리아로 동진하는데 이때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의 코사크 부대가 활동합니다. 이어 스트로가노프 가문에서 일하던 하바로프가 코사크 부대로 원정대를 꾸립니다. 러시아 극동부의 중심도시 하바로프스크의 이름이 여기서 유래됩니다. 동진하던 하바로프 부대는 아무르강에서 청나라 군대와 충돌하게 됩니다. 하바로프는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 부대가 지역의 부족 군대라고 생각하고 러시아 차르에 항복할 것을 권유합니다. 반면 ‘항복권유 문서’를 받아든 청나라 황제는 ‘대노’하고 ‘나선정벌’을 명령합니다.
힘이 없는 코사크의 ‘자치권’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페레야슬라브 협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는 코사크 자치를 인정하지 않고 러시아에 복속시킵니다. 코사크는 단합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집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10월 혁명으로 러시아에선 붉은 군대와 제정 러시아군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이 소용돌이에 휘말린 코사크 청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고요한 돈강’입니다. 코사크의 일부는 붉은 군대에, 다른 일부는 제정 러시아군에 속해 싸웁니다. 양쪽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합니다.

러시아가 1차 세계대전 중 멸망하자 우크라이나는 폴란드와 소비에트 연방에 분할 지배됩니다. 이어 2차대전이 터지자 코사크 일부는 독일 편에, 또 다른 일부는 소련 편에서 싸우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우크라이나는 소련에 편입되었다가 1992년 소련 해체와 함께 우크라이나는 독립국가가 됩니다.

하지만 1654년 코사크와 러시아가 맺은 페레야슬라브 협정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의 불씨가 됩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협정을 러시아와의 단순 군사동맹으로 해석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이 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귀속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을 방문해 참호 속에서 위장망 아래를 걷고 있다. AP연합뉴스
헝가리 토카이 와인은 ‘달콤’한 스위트 와인의 대명사입니다. 1650년대 탄생한 최초의 귀부와인으로 프랑스와 러시아의 황실에서 ‘사랑의 묘약’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달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코사크도 폴란드로 부터의 독립에 실패합니다. 같은 시기에 조선의 총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무르강 유역에서 또 다른 코사크 부대와 서로 총을 겨눴습니다. 당시 폴란드의 지배를 피해 러시아에 의존했던 코사크(우크라이나)는 결국 러시아와 다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