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대응이 우선” “재래식 전쟁도 신경써야” 한반도 군비경쟁 결과는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23. 12. 1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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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위협에 대한 한국군 대응 기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 한국군은 한반도 전면전 가능성에 대비, 재래식 전력증강에 힘을 쏟았다. 현재 육·해·공군에 배치된 K-1·2 전차와 K-21 보병전투차, K-9 자주포, F-15K 전투기, 이지스함 등은 30여년 전부터 군 당국이 추진해온 전력증강 계획의 산물이다.
한국 공군 패트리엇(PAC-2) 지대공미사일이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추세가 바뀐 것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면서다.

북한은 김정일 체제의 유산인 액체연료 탄도미사일을 고체연료로 전환했다. 요격시도를 회피하는 기술을 지닌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도 만들었다. 전술핵탄두를 공개하며 대남 핵위협도 강화했다.

군 당국도 맞대응에 나설 태세다. 국방부는 향후 5년간 군사력 건설 방향을 담은 ‘2024~2028 국방중기계획’에서 한국형 3축 체계(킬 체인, 미사일방어, 대량응징보복)와 비대칭 전력에 집중 투자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재래식 전력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직면한 어려움을 한국군도 겪을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육군 전술지대지유도무기-Ⅰ(KTSSM-Ⅰ)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핵과 미사일 대응에 집중하는 한국군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군 당국이 꺼내든 카드는 미사일과 첨단 기술이다.

휴전선 일대 북한 갱도포병을 제압할 전술지대지유도무기-Ⅰ(KTSSM-Ⅰ)은 2028년 안에 전력화를 완료한다. 고정식 발사대에서 발사, 최대 160㎞ 떨어진 갱도진지를 파괴한다.

천무 다연장로켓 발사차량을 개조한 이동식발사대를 쓰는 KTSSM-Ⅱ는 연구개발이 이뤄진다. 개발이 끝나면 곧바로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서부전선에서 북·중 접경 압록강 하구에 있는 북한군 벙커를 파괴할 수 있고, 관통력도 한층 높아진다.

산악 지역 깊숙한 곳이나 강화콘크리트로 건설된 지하 시설을 파괴할 KTSSM-Ⅲ 개발도 추진된다. 

현무-2 탄도미사일 발사차량을 활용한 이동식발사대에서 발사되는 KTSSM-Ⅲ는 탄두 모양이 뭉툭하다. 그만큼 위력이 강하고 중량이 더 큰 탄두를 장착, 특정 지역에 거미줄처럼 구축된 지하시설망을 무력화할 수 있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MSAM)-Ⅱ와 패트리엇(PAC)-2,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 등으로 구성한 미사일방어망이 2028년까지 구축된다. MSAM-Ⅱ는 고도 15~40㎞, L-SAM은 고도 40~60㎞에서 미사일을 요격한다.
한국 공군 천궁 지대공미사일이 발사대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요격고도가 약 40㎞에 달하는 패트리엇 최신형 버전인 PAC-3 MSE와 유사한 MSAM-Ⅲ도 개발이 이뤄진다. MSAM-Ⅱ보다 요격고도가 높고,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를 사용해 탐지능력이 향상된다.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유사한 능력을 지닐 LSAM-Ⅱ는 고도 60~100㎞에서 미사일을 파괴한다. 

고고도에서 미사일을 파괴하는 고고도 요격탄, KN-23처럼 요격시도를 회피하는 능력을 지닌 활공단계 요격탄을 갖춘다. 음속의 5배가 넘는 속도로 날아가는 극초음속미사일 요격 등도 가능할 전망이다.

강력한 전자기펄스를 이용해 북한군 전자장비를 파괴하는 전자기펄스탄은 2025년까지 핵심기술개발이 이뤄진다. 

북한 전력망을 마비시켜 지휘통신체계를 무력화할 정전탄은 2028년까지 전력화가 이뤄진다. 국산 GPS유도폭탄(KGGB)에 정전섬유를 넣은 형태로 전투기에서 발사된다.

다수의 드론을 동시에 운용하는 군집 드론과 중거리 자폭드론은 2028년까지 전력화된다. 드론을 적절히 활용하면 가성비 등의 문제로 미사일을 사용하기가 어려운 표적을 파괴할 수 있다.

북한 전역의 도발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고 감시하는 425사업의 일환으로 군사정찰위성 5기를 2025년까지 확보한다. 후속 사업은 현재 소요 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성능과 국산화율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밖에도 초소형 위성 사업도 추진해 위성 재방문 주기를 2시간에서 30분으로 줄일 계획이다.

특수전부대 전력증강도 이뤄진다. 특임여단에는 관측경과 야간투시경, 정찰로봇 등을 추가로 지급해 정찰 및 타격력을 높인다. 

공중 침투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인 C-130H가 북한군 레이더 추적을 피할 수 있도록 성능을 개량하고, 미군 MH-47과 유사한 특수작전용 대형기동헬기를 확보할 방침이다.

북한의 무인기 위협에 대비해 무인기를 전파 교란 등 비물리적 방식으로 무력화하는 능력을 확보하고, 무인기를 직접 파괴할 수 있는 레이저 대공무기 등도 전력화할 계획이다.
한국 육군 K-1A2 전차가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한반도는 여전히 재래식 위협이 크다

국방중기계획이 미사일과 비대칭전력에 집중된 것은 재래식 전력이 어느 정도 확보됐다는 판단에 따른조치로 풀이된다.

문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에 예산을 집중 투자할 경우 재래식 전력 증강 속도가 느려지면서 군사력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0년대부터 러시아는 군사력 강화 기조를 천명하며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육·해·공군 전반에서 핵전력 강화에 예산이 집중 투입됐고, 독특한 핵무기들이 등장했다.

사르마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아방가르드·킨잘 극초음속미사일, 포세이돈 핵탑재 잠수정,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보레이급 전략핵잠수함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새로 만든 핵전력을 수시로 과시하면서 러시아의 이익을 지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문제는 국방예산의 대폭 증가가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 증가율이 2016년 4.7%에서 2019년 2.8%까지 낮아졌다.

2021년 미국의 국방비는 8280억달러였다. 반면 러시아는 659억달러에 그쳤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3280억달러보다도 크게 낮다.

이같은 상황에서 다양한 종류의 핵무기를 개발했다면, 재정적 여력은 크게 줄어든다. 재래식 전력증강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러시아 육군은 1만3000여대의 전차를 보유했지만, 대부분 30여년 전 옛소련 시절의 유산이었다. 최신 무인전차인 아르마타는 생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T-90A 전차마저도 일부 부대에만 배치됐다.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파괴된 러시아군 기갑차량들이 방치되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격침됐던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인 순양함 모스크바함은 냉전시절에 만들어진 노후 함정이었다. 기함 교체도 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러시아는 미국 F-22·35와 같은 세대의 스텔스 전투기 SU-57·75를 선보였지만, 양산과 개발에 투자할 여력은 크지 않다. 

핵무기에 집중하면서 재래식 전력을 제때 강화하지 못했던 문제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꺼번에 드러났다.

30여년전에 개발됐던 러시아군 전차는 우크라이나군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저지할 능동방호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수천대가 파괴됐다. 일선에서 물러났던 T-62 전차까지 재등장하는 상황이다.

총탄 정도만 막을 수 있었던 보병전투차도 대규모로 부서졌다. 러시아 공군은 현재까지도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세계에서 가장 강한 핵전력과 비대칭전력을 지닌 것이 재래식 군사력 약화의 원인이 되어버린 셈이다. 러시아는 뒤늦게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입은 손실과 ‘종이호랑이’라는 비판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도 이같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군이 원하는 만큼 정부가 국방예산을 배정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국방중기계획에서 가정한 예산 증가율(연평균 7%)이 향후 5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적은 자원으로 많은 일을 하기는 어렵다. 러시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산 압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한국형 3축 체계 집중 기조가 강화되면, 재래식 전력 증강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정전체제가 유지되는 한반도 특성상 대규모 지상전 위협은 여전히 남아있다. 21세기 유럽에서 대규모 재래식 전면전이 발생했는데, 공식적으로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에서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육군 K-21 보병전투차가 부교를 건너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같은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을 방지하려면, 북한 위협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 전력 수준과 형태 등을 분석해서 위협의 정도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소요와 예산을 책정해 한국형 3축 체계 예산 지출의 효율화를 추구해야 한다.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정확히 평가해 소요를 산출하고, 한국형 3축 체계 지출 효율화로 얻은 재정 여력으로 재래식 전력 증강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대전차공격력이 강화되면서 30t급 이상의 중장갑차 소요가 세계 각국에서 제기되는 만큼 한국군도 급조폭발물을 사용하는 북한군의 비정규전에 대비할 수 있는 차세대 중보병전투차 개발이 필요하다. 

대전차미사일 공격을 저지할 전차 탑재 능동파괴장치(APS) 도입, 현궁보다 사거리가 늘어난 대전차미사일, 경량 화포 등의 도입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한반도는 핵·미사일과 대규모 재래식 전쟁 위협이 공존하는 독특한 안보환경을 갖고 있다. 반면 재정적 여유는 크지 않다.

특정 위협에 대응하는 ‘위협 기반 군사력 건설’ 대신 다양한 종류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능력 위주 국방력 확보’ 기조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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