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공동체 관계’ 요구 거부...中에 ‘NO’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
남중국해 분쟁 문제도 “국제법 따라 해결해야”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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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2월12일 1박2일 일정으로 베트남을 국빈 방문해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서기와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시 주석이 베트남을 방문한 건 2017년 이후 6년 만이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키자 맞대응에 나선 겁니다.
중국 외교 당국은 시 주석의 이번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양국 관계를 기존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서 ‘운명공동체’로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고 해요. 미국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베트남은 중국측 제안을 거부했다고 해요. 영어로 된 양국 공동성명에는 공동 운명을 의미하는 ‘common destiny’라는 용어 대신 ‘미래 공유’를 뜻하는 ‘shared future’라는 말이 들어갔습니다. 응우옌 총서기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서도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등 국제법에 따라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상황을 복잡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중국에 경고했어요.
◇‘공동 운명’ 대신 ‘미래 공유’로 표현
시진핑 주석의 외교 전략인 운명공동체론은 중국 중심으로 지역 질서를 재편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개념입니다. 과거 왕조시대의 조공 질서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오죠.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 등 여러 동남아 국가들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중국과 운명공동체 관계를 맺었습니다.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반중 정서가 가장 뿌리 깊은 나라라고 할 수 있죠. 1979년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하면서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과거 왕조시대에도 수없이 많은 침략을 당했죠. 이런 베트남이 중국의 운명공동체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가 없을 겁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과 베트남 외교 당국은 지난 수개월간 운명공동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고 보도했어요. 공동성명에 운명공동체 관계를 넣자는 중국 측 제안을 베트남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논란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결국 중국어로 된 공동성명문은 운명공동체라고 쓰고, 영어와 베트남어로 된 성명문에는 ‘미래 공유’라고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해요. 하나의 성명문을 각자 입장에 따라 따로따로 해석하기로 한 겁니다. 대만 중산대학 정치학연구소의 천쫑옌 부교수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베트남은 중국과 오랜 역사적 애증관계가 있고 독립적인 대외관계를 추구하는 나라”라면서 “중국의 동생 국가가 돼 운명을 같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더군요.
◇경제와 안보 문제는 별개
베트남은 중국 서남부 지역과 인접한 이웃 국가입니다. 비야디 등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앞다퉈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경제적으로도 관계가 밀접해지고 있죠.
올 들어 11월까지 중국의 베트남 직접 투자액은 83억 달러로 전체 베트남 해외직접투자(FDI)의 29%를 차지했습니다. 압도적인 1위 투자국이에요. 작년 양국 간 무역액도 2349억 달러나 됩니다. 양국은 이번에도 쿤밍~하이퐁 철도 추진 등 37건의 각종 협약을 체결했어요.
중국의 전략은 베트남에 자국 기업의 생산기지를 대거 구축해 중국의 공급망에 편입하겠다는 겁니다. 현대적 산업국가로 변신하려는 베트남 입장에서도 중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반가운 일이겠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밀접하다고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주권과 안보 이익이 걸린 문제까지 양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뿌리 단단한 ‘대나무 외교’
베트남의 외교 노선을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라고 불러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대국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유연한 실리외교를 펼치되, 국가의 독립과 주권에 관한 문제는 대나무 뿌리처럼 단단하게 원칙을 지킨다는 뜻입니다.
응우옌 총서기는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와 관련해 동지, 형제 등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했지만,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는 날 선 발언을 쏟아냈어요. 그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문제는 상호 간의 합법적인 이익을 존중하고 상황을 복잡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면서 “1982년 유엔해양법협약 등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국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데 대해 경고를 한 거죠.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 난단은 이 발언을 자세히 보도했는데, 중국 관영 매체의 정상회담 보도에는 이 대목이 아예 빠져 있었습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9단선이라는 선을 긋고 자국 영해라는 주장을 펴고 있죠. 베트남, 필리핀 등 주변 국가의 앞바다를 모두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러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2016년 필리핀이 제기한 소송에서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어요. 베트남은 올 7월 중국 측 구단선을 묘사한 장면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영화 ‘바비’의 자국 내 상영을 금지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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