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사랑하는 그대에게

김수연 2023. 12. 16. 23: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9층시사국 43회 II] 사랑하는 그대에게


■ '뇌사 장기기증', 삶의 마지막까지 생명을 나누고 가다

지난 8월 갑작스런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고 김건혜 씨. 김 씨는 뇌사장기기증으로 4명의 생명을 살리고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이재영 / 故 건혜 씨 남자친구
"네 분의 생명을 살리고 갔으니까 마지막까지 의미 있게 간 것 같아요. 따뜻하게 세상을 품어주면서 간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김보정 / 故 건혜 씨 엄마
"아이를 조금 더 존귀한 존재로 기억할 수 있어서 그게 또 저희한텐 너무 좋고. 큰딸도 가끔 그런 이야기 하거든요 ‘와 우리 건혜 너무 멋있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싹틔운 사람들.

손기동 / 장기기증 수혜자
"제가 처음 폐 섬유화증 진단을 받았을 때 병원 뜨락에 눈들이 많이 차 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아, 내 생명도 저 눈처럼 곧 사라지겠구나 (그랬는데) 6년 전에 폐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적같이 새로운 생명을 받고…."

손기동 / 장기기증 수혜자
(좋아하는 노래 구절 한 소절만 불러주실 수 있나요?)
"저 멀리 숲 사이로 내 마음 달려가나 <가곡 '눈' 중에서>"

(이 구절을 왜 좋아하세요?)
"뭔가를 향해서 그리움이란 것 글쎄요. 아직도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 건혜의 심장이, 다시 뛰도록

이재영 / 故 건혜 씨 남자친구
"남자친구이자 예비 신랑이었던 이재영이라고 합니다. 딱 7년 정도 만난 것 같아요. 7년 채우기 직전에 (건혜가) 먼저 떠나가게 됐고요. 모든 일상에서 다 정말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냥 진짜 그야말로 소울메이트."

지난봄, 재영 씨와 건혜 씨는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 준비도 시작했었습니다.

"이런 하루하루라면 진짜 평생 행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 같네요, 그때. 데이트하려고 만났는데 제가 좀 시무룩하다 싶으면 옆에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예쁜 표정 지으면서 애교 부려주고 그런 사람이었어요. 너무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원래 계획은 새벽에 출발해서 (강원도) 고성에 해변이 있는데 거기 가서 스노클링 하고…."

"모래사장에 구조가 됐는데 그때 호흡도 없고 의식도 없고 되게 안 좋은 상태로 발견됐어요. 한 일주일쯤 지났는데 점점 상황이 악화가 되면서 자가 호흡도 못해서 인공호흡으로 다시 돌아가고 (의료진이) 뇌사 판정위원회를 여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건혜 씨가 태어나 27년을 살았던 집. 엄마는 티 한 장 하나 버릴 수 없습니다.

김보정 / 고 건혜 씨 엄마
"이게 프러포즈 받을 때 반지. 얘는 선물로 준 건데 프러포즈로 착각했던 반지. 우리 건혜가 너무 이뻐요. 웃는 게 진짜 이뻐. 그래서 이런 것 때문에 애 옷을 못 버리는 거예요. 왜냐면 이거 입었을 때 얘가 이렇게 웃었지, 이렇게 행복해했었지, 하니까 옷을 못 버리겠더라고요. 티 하나 바지 하나 못 버리겠어."

작은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심정이지만, 건혜 씨가 가는 마지막 길에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뜻을 모았습니다.

이재영 / 故 건혜 씨 남자친구
"처음에는 되게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제가 사랑하는 여자친구 또 결혼하려고 했던 예비 신부인데. 신체에 손을 대서 간다는 게... 그리고 또 그동안 되게 힘든 싸움을 하느라고 많이 힘들고 지쳤을 텐데 거기서 더 힘을 써야 하는 거잖아요. 수술에 들어가는 거니까."

김보정 / 故 건혜 씨 엄마
"어려운 거는 다 남은 가족들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느냐면, 우리 아이를 다시 살리고 싶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죽음 뒤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게 뭔가가 있다면 장기기증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 받으신 분들이 어차피 삶을 이어갈 거니까. 심장도 받아서 다시 뛰게 할 거고."

"그 사람을 알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는 거거든요. 분명히 동의했을 거라고 아니까. 우리 건혜도 백 프로 동의했을 거예요. 그리고 잘했다고 할 거예요. ‘엄마 나 진짜 쉬고 싶었는데 엄마 너무 잘해줬어’ 이럴 것 같아. 그래 줄 거라고 생각해요."

김대호 / 故 건혜 씨 동생
( 장기기증을 한 거에 대해서 (누나가) 뭐라고 했을 것 같으세요? )
"‘야 그걸 왜 고민했어. 당연히 하는 거지’라고 했을 거 같아요. 만약에 저 죽을 때 저 (장기기증) 안 하면 아마 엄청 혼날 걸요."


■ 선물, 혹은 기적
손기동 / 장기기증 수혜자
"저는 성악을 전공해서 30년간 협성대학교에서 성악과 교수로 재직했고…."

성악가 송기동 씨에게 폐 섬유증은 사망 선고와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숨을 거의 못 쉬었거든요. 대용량 고압 산소기 사용하면서도 숨이 차서 힘들어했으니까."

그러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6년 전에 폐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혜택이 나에게 올 것이라고 기대도 못 했죠. 중환자실에서 기다리다가 결국 기증을 못 받고 돌아가신 분들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진짜 안타깝고 제가 기증받아서 수술하게 됐을 때는 미안하기도 하고…."

"우리 폐 이식 환자들은 이식을 받게 되면 ‘천사님이 오셨다’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어떤 단순한 장기이식이 아니라 천사님이 생명의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닌가."

장기이식은 우리나라에서 왜 기적 같은 선물이 되었을까.

주동진 / 신촌세브란스 이식외과 교수
"스페인이 뇌사 장기 기증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의 하나인데 거기는 100만 명당 40명이 넘어가고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도 평균 한 30명 정도 선인데, 우리나라는 지금 10명이 채 안 되는 아주 부족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국내법은 심정지가 아닌 뇌가 사망한 뇌사자만 장기를 이식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동진 / 신촌세브란스 이식외과 교수
"국내에 지금 뇌사자가 1년에 400명 정도 생기고 있는데요. 간 대기자만 놓고 따지면 현재 간 이식을 받으려고 등록하고 대기하고 있는 환자는 6천 명이 넘습니다. 이식을 못 받고 돌아가신 환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올해 5만 명을 넘었지만(5만 707명, 9월 기준), 뇌사 장기기증자는 2016년 573명으로 정점을 찍고
조금씩 감소해 2022년엔 405명까지 줄었습니다.

국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는 280만 명이 넘습니다. 하지만 실제 기증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주동진 / 신촌 세브란스 이식외과 교수
"본인이 장기기증 서약서를 쓰고 희망을 생전에 했다고 하더라도 뇌사 상태에 빠졌을 때는 가족들의 동의가 없이는 뇌사(장기)기증을 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증 희망과 실제로 기증으로 이어지는 것은 차이가 나고요."

공식적인 뇌사 판정도 가족들의 힘든 결정이 이뤄진 후에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동진 / 신촌 세브란스 이식외과 교수
"전 세계적으로 뇌사라고 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사망이라고 하기 때문에 심장이 뛰고 있어도 뇌사 판정이 되면 그다음에 장기기증으로 이어질 수가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거꾸로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뇌사 판정을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고요."

유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함으로써 기증자의 삶을 끝냈다는, 마음의 짐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김보정 / 故 건혜 씨 엄마
"처음에 장기기증 이야기가 나왔을 때 너무 무서웠어요. 물론 지금은 아이의 심장이 어딘가에서 뛰고 있지만... '우리가 멈추게 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의학적으로가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 죽음을 우리가 만든 거 아닐까. 우리가 결정해야 되나 이게 너무 힘들었어요."

김대호 / 故 건혜 씨 동생
"아버지가 먼저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그거를 의사 선생님께 달려가서 제가 얘기했거든요. 먼저 가서 저희 장기기증에 대해 생각이 있다, 제가 직접 말하고 그때부터 약간 좀 더 빠르게 진행이 된 것 같아서 그게 조금 더 힘든 것 같아요. 제가 한 것 같아가지고…."

■ 미리 알았더라면...
김보정 / 故 건혜 씨 엄마
"아이를 (장기 적출)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너무 많은 걱정을 했어요.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잖아요. 저희는 바깥에서만 걱정을 하는 거야. 여지껏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우리 결정으로 내 아이의 몸에 상처를 내야 되나, 이런 것 너무 걱정했거든. 근데 나중에 얘기 들어보면 외과 수술하는 것처럼 다 마취하고 다 그렇게 하신대요. 다른 분들은 그런 내용을 모르니까 더 무서운 거고."

미리 알았더라면 선택이 덜 어려웠을 거라고, 유가족은 말합니다.

김보정 / 故 건혜 씨 엄마
"근데 나중에 들은 얘긴데 코다(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서 파견되신 분이 다 정리를 하신대요. 봉합하는 것까지 그분들이 하신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얘길 들으니까 조금 더 안심이 되는 거예요. (아이를) 너무 귀하게 생각하면서 해주셨을지 아니까…."

"이분들이 하기 전에 기도도 하시고 같이 그렇게 하신대요. 근데 그걸 우리한테는 얘기를 해주니까 우리는 우리가 유족이니까 우리한테 이야기를 해주지만, 다른 분들이 아시면 더 좋을 거 같은 거에요."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코디네이터는 장기기증 동의 절차부터 시신 인도까지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강지석 /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보호자가 법적으로 뇌사 장기 조직 기증에 동의할 시 법적인 동의를 한 시점부터 뇌사 판정 절차가 진행되는데요. 의사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사나 법조인 그리고 종교인들이 회의에 참여해서 환자의 뇌사 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판정이 끝나면 장기 코디네이터들은 국립 장기조직혈액관리원을 통해 전국에 이식 대기자가 있는 병원과 소통하여 수혜기관 선정 및 수술 시간 등의 일정을 조율하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수술에 들어가게 되고 장기 조직 코디네이터는 수술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수술실에서 계속 상주하며 수술 후에 유가족에게 이제 환자분의 시신을 인도하며 장기 기증 절차는 종료됩니다."

"장기기증이 다만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을 이어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좀 더 긍정적인 인식을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장기이식법 시행 23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7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까지 생명을 나누고 갔습니다.

이재영 / 故 건혜 씨 남자친구
"그렇게 장기기증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면 그분들께서 살아나가는 게 건혜가 다른 형태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 "하늘에 있는 학준이, '우리 엄마 최고다'라고 할 것 같아요"

서로의 머리를 매만져주고 옷 매무새를 고쳐주는 단원들.
장기기증자 유가족과 수혜자 등으로 구성된 ‘생명의소리 합창단’의 8번째 정기공연 날입니다.
같은 아픔을 나눈 사람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어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고동진 / 故 홍준이 큰아빠
"사실 민감한 얘기잖아요. 민감한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굳이 대화를 안 해도 어떤 감정인지를 서로 알고."

올해엔 학준이 엄마가 공연 주제곡의 노랫말을 썼습니다.
이학준 군은 17살이 되던 해, 갑작스런 심정지로 5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소현 / 故 학준이 엄마
"학준이라면 이걸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오랫동안 생각했고, 최종 결론은 학준이라면 저희 부모보다 더 원하는 일이었겠다."

꿈에서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간절함을 학준이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소현 / 故 학준이 엄마
"꿈에서 좀 봤으면 좋겠다 이랬는데 새벽에 이렇게 나타났어요. 그때 제가 학준이를 꿈인데도 너무 생생하게 느꼈고. 학준이가 진짜 하늘나라에서 무엇을 가장 바랄 것인가 생각할 때 엄마가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 같더라고요."

( 학준이가 만약에 있었으면 뭐라고 했을 것 같으세요? )
"학준이요? ‘우리 엄마 최고다. 엄마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딱 알았어?’ 이럴 것 같아요."

취재기자 : 김수연
외부촬영 : 조선기 강우용
영상편집 : 강정희
자료조사 : 이정훈
조연출 : 유화영 김영일
촬영기자 : 민창호 김영모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카카오 '마이뷰',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김수연 기자 (sykbs@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