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고물가 시대, 가성비의 배신
다시 찾아온 겨울. 시내 백화점들이 화려하게 연말을 맞이합니다. 이 설레는 분위기에 조금이나마 소비가 늘까 싶은데요.
최미선/인천 부평구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거 하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할인을 그렇게 많이 한다고는 안 느껴서 그냥 평소 쓰던 거 아니면 그냥 새로 구입한 거는 딱히 없는 거 같아요. 연말이라고 해서 뭐.”
주위를 둘러보니 물가가 뛴 걸 금세 체감할 수 있습니다.
각종 기름은 1년 새 10% 넘게 올랐고, 가방은 9%나 더 비싸졌습니다. 커피는 1년 전보다 12% 가까이 올랐고, 초콜릿이나 과자를 사려면 약 6%, 돈을 더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에도 함정이 있다고 합니다.
■ 고물가 시대, 장보기 전략은?
2008년 7월 21일, KBS 뉴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데 소득은 제자리고...”
2008년 2월 28일, KBS 뉴스
이은진(주부) : "그때 그때 필요한 물건만 사는 편이에요.“
2008년 5월 23일, KBS 뉴스
복혜정(주부) : "집에 오는 전단지나 쿠폰을 종류별로 모아둡니다.“
다시 찾아온 고물가 시대. 장보기 전략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천세이/30대 신혼부부
“올해 2월에 결혼해서 신혼부부 둘이 살고 있고 고양이 한 마리랑 같이 있어요.”
천세이 씨 부부는 1년 전부터 장을 보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세이/30대 신혼부부
“이전 영상보다 조금 비싸다 그러면 그냥 안 사고, 이렇게 하고 있어요.”
장을 볼 때는 당연히 가격부터 따집니다.
"여기 두 개 구매하면 50% 세일이래."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고 덥석 고르진 않습니다.
“몇 개 들었어?”
“하나에 2인분 들어있네.”
겉보기엔 비슷해도 용량이나 성분이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세이/30대 신혼부부
“이만큼 싸졌어요 라는 거는 엄청 많이 이렇게 붙여 놓으시는데 약간 안 좋은 거는 자꾸 숨기니까 소비자들이 그런 거를 믿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 "가격 보고 샀더니"...용량·성분 변경해 '꼼수 인상'
‘꼼수 인상’, 소비자가 잘 알 수 없게 가격을 높이는 기업의 전략입니다. 교묘하게 용량을 줄이는 ‘슈링크플레이션’. 인색하게 성분을 바꾸는 ‘스킴플레이션’도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박민희/서울 동작구
“제가 정신없이 애기랑 장 볼 때라든지 아니면 소비자가 안 보이게 표기가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윤혜신/서울 용산구
“배신감을 느낀다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저희는 그냥 가격이 싸면 고르는 건데 골라보니까 알고 봤더니 양이 작으면 그거는 싼 게 아니잖아요. 그거는 옳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취재진은, 소비자단체와 함께 제품들의 용량과 성분을 직접 점검해봤습니다.
이정수/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예전에는 300mL였는데 지금 275mL로 바뀐 거예요.”
마시는 요거트는 용량이 8% 줄었고, 사탕은 약 17%, 낱개 두 개 분량이 없어졌습니다. 꾸준히 구매해온 사람만 알 수 있는 변홥니다.
이정수/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생필품 중심으로 우유라든지 라면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하지, 이런 거는 잘 조사 안 하거든요. 사각지대에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이거는 자주 사시는 분들만 좀 알 수 있는.”
가격을 내렸다던 라면 관련 제보도 들어왔습니다.
이정수/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여기 내용량이 얘는 125g이잖아요, 한 봉지에 125g.”
대부분 한 봉지에 용량이 120g~125g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 출시된 이 라면, 용량을 살펴보니 같은 회사의 다른 제품들과 10g 차이가 납니다.
이정수/한국소비자단체연합회 사무총장
“어떤 소비자분이 먹다 보니까 좀 작은 거 같더라 다른 제품이나 기존 제품보다 그래서 봤더니 110g이더라, 속은 느낌이다”
정부는 지난 6월 라면 등의 가격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추경호 / 경제부총리(6월 18일, KBS 일요진단 중)
“(라면) 업계에서도 국민들께서 물가로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이제 국제 밀 가격이 내리고 했으면 적정하게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라면업계는 가격을 5%가량 인하했지만, 잇따라 출시된 신제품들은 왜인지 용량이 적습니다.
이정수/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진정으로 소비자를 좀 생각해서, 이렇게 어려울 때, 원재료 가격이 인하한 것을 우리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해서 인하했다고 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남현종/9층시사국 앵커:
가격이 떨어졌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뭔가 먹다가 아 예전보다 양이 좀 줄어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이전에 나왔던 제품이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는 이상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게 지금 용량이 달라졌는지 성분이 바뀌었는지 알아차리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이런 꼼수 인상 어떻게 처음 시작됐습니까?
조혜진/9층시사국 기자:
외신에 이런 기사가 보도가 됐습니다. 역대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소개가 됐는데요. 미국에서 판매하는 과자인 오레오 제품, 사이에 하얀색 크림이 들어 있잖아요. 이 크림이 왠지 모르게 좀 줄어든 것 같다고 소비자가 의혹을 제기를 한 건데요.
워낙에 이 오레오가 미국에서는 국민 과자이다 보니까 SNS에서도 비슷한 내용들이 엄청나게 공유가 되고, 미국의 소비자 단체들이 진짜로 용량이 줄어드는 것들이 있는지 점검해 보자고 하면서 제품들을 공개하고, 이러면서 논란이 계속 커진 겁니다.
대표적으로 좀 몇 개를 보여드리자면 먼저 오래 5 제조사는 이 크림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반박을 했습니다만 보시는 것처럼 특정 제품에서는 과자의 용량이 한 3~4개 정도 분량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다음은 샐러드 소스인데요. 얼핏 보면 용량은 동일합니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방이라든지 칼로리가 줄어들었죠. 이게 알고 보니까 이 재료 중에서 비싼 기름을 줄이고 물과 소금을 더 늘렸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성분을 좀 저렴한 걸로 대체하는 스킨 플레이션의 아주 대표적인 예죠.
식료품뿐만이 아니라 이런 세탁 세제 용량을 좀 줄였다거나 아니면 뭐 휴지가 몇 칸 줄어들었다는 등 다양한 생필품에서 꼼수 인상이 확인이 됐는데요. 이렇게 같은 제품을 다른 가격을 주고 사는 일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서 이런 경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 같은 제품 다른 가격, 얼마나 차이날까?
균일가를 내세우는 잡화점.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합니다.
신정원/서울 서초구
“과자가 많이 싸요. 젤리 같은 경우에 한 1,200원에서 1,300원, 1,500원 정도 하는데 여기서는 거의 다 1,000원대, 1,000원 미만으로 파니까 사 먹는 거 같아요. ”
진열된 상품들 위에 별도로 부착된 가격표와 바코드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바코드가 붙은 식료품들을 직접 구매해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편의점에서 같은 제품들을 구매해 봅니다. 과연 가격이 어떻게,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이 과자는 잡화점 제품의 용량이 22% 적은 대신 가격이 41% 쌉니다. 낱개 1개당 가격으로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15개 차이. 낱개로는 가격이 30% 정도 저렴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잡화점이 항상 더 저렴한 건 아닙니다.
용량이 다른 또다른 과자. 낱개로 따지면 1개 차입니다. 개당 가격은 189원 대 125원, 편의점이 1.5배 더 비쌉니다.
그런데 편의점이 과자 2개를 사면 1개를 더 주는 행사에 나섰습니다. 그랬더니 개당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어느 제품이 얼마나 싼 건지 꼼꼼하게 따져보기 전엔 알기가 어렵습니다.
서용구/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미끼 상품이 있기 때문에 편의점에 들어오는 거거든요. 들어와서 편의점에 미끼 상품만 사는 게 아니라 다른 고가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담배 같이 이런 걸 구매하기 때문에 편의점은 거기서 마진을 가져가는 거거든요.”
기업들은 같은 제품이라도 유통 채널과 방식에 따라 가격은 달리해 수익성을 높입니다. 정부가 가격을 억누르는 방식으로 물가를 통제하면 ‘꼼수 인상’이 더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서용구/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올려야 할 인상분에다가 미래에 또 통제받을 가격까지 더 추가로 올려버리는 거죠. 그래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더 황당한 가격을 나중에, 가격 인상 폭이 했어야 하는 가격 인상보다 더 많은 폭의 가격 인상을 하는 거죠. 이런 걸 학습 효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시장에만 맡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식료품은 가격을 올린다고 해도 소비량을 크게 줄이기 어렵습니다. 한 번 오른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이윱니다.
이정수/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
“인상 요인이 좀 해소됐을 때는 그럼 그걸 바로 또 가격에 반영해서 인하해주면 좋은데 그런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를 때는 그렇게 급하게 빨리 올리고 내려야 할 이유가 발생했을 때는 한 번도 내리지는 않는다.”
■ 꼼수 인상 대책은?
남현종/9층시사국 앵커:
이런 다양한 꼼수 인상들에 대해서 정부는 지금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까?
조혜진/9층시사국 기자:
최근에 정부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실태 조사를 진행해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9개 품목에서 용량이 12% 정도 평균적으로 줄어든 걸 확인했는데요.
하지만 이미 알려진 제품이나 앞서 보신 것처럼 소비자 단체에서 제보를 받은 제품들을 제외하고 정부가 나서서 이번에 새롭게 밝힌 제품은 바프의 아몬드, CJ 제일제당의 비엔나, 그리고 서울우유협동조합의 체다치즈 등 3개 품목뿐입니다.
남현종:
3개밖에 안 나왔어요?
조혜진:
네.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생필품 가격 정보 시스템인 참가격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건데 좀 더 면밀하게 추적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에 정부도 내년부터는 자체적으로도, 또 유통업체들과도 협력해서 정기적으로 가격 변동이라든지 용량 변동을 밝히겠다고 발표했고요. 나아가서 이러한 변경 사항들에 대한 고지를 의무화하는 방안 역시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한번 보시죠.
조홍선/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지난 13일)
“식품 및 생활용품의 경우는 제조업자의 용량 축소로 단위 가격이 변동되면 변경 사항을 포장에 표시하도록 하고, 사업자가 별도의 고시 없이 용량이나 성분 등을 변경하는 것을 사업자의 부당 행위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남현종:
지금 이런 기업들의 꼼수 인상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잖아요. 말씀하신 대로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해외에서는 이런 꼼수 인상에 대해서 어떻게 규제를 하고 있습니까?
조혜진:
브라질 같은 경우는 용량이 바뀌면 이를 6개월간 홍보를 하도록 법을 좀 바꿨고요. 그리고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경우도 이렇게 고지를 좀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에 프랑스의 사례가 굉장히 좀 주목을 받았는데요.
대표적인 프랑스 슈퍼마켓 까르푸에 붙여진 스티커입니다. 제품의 용량이 줄면서 실제로 가격은 올라갔다고 안내되어 있는 문구인데요. 이 스티커들이 대체로 네슬레라든지 펩시 같은 다국적 기업의 제품들에 주로 붙어 있습니다.
앞서 프랑스 정부가 자국의 어떤 물가 안정 정책에 비협조적인 다국적 기업들을 콕 집어서 비판을 한 바 있는데요. 제조업체, 특히 시장 지배력이 있고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는 다국적 기업이 가격 하락 요인을 무시한 채 자신의 몫을 늘리기 위해서 가격을 바꾼다든지 용량을 바꾸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겁니다. 비교적 메시지가 굉장히 뚜렷하죠. 이처럼 정부가 시장에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가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경제 더 중요해질 것"
천세이/30대 신혼부부:
(정부가 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거 뭐 있으세요?)
“정부가...월급을 올려주셔야죠.”
하지만 물가만큼 월급은 오르지 않고...
서용구/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
“월급은 오르지 않는데 생활 물가가 높아지면 자신의 가처분 소득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최근에 많이 그런 불만을 얘기하는 것 같고요. 또 정부 입장에서는 내년 선거가 있기 때문에 굉장히 경제가 중요한데..”
내년에도 좀처럼 가계 상황이 나아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물가 논란이 일 때마다
정부가 주로 내밀던 기업에 대한 가격 압박 카드, 과연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황성아/경기도 안산시
“요즘에는 이제 적어 가지고 가서 딱 필요한 것만 사지 않으면 너무 생각했던 거보다 지출이 좀 많이 되니까 그런 것들이 좀 힘든 거 같아요.”
모두가 힘든 시기, ‘꼼수’가 더 교묘해지지 않도록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박진/서울 강서구
아이 낳아서 키워라, 키워라 하지만 사실 그게 너무 힘든 현실이니까 그런 것들, 아이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장을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모든 것을 잘 살 수 있게, 물가가 많이 안정되었으면 좋겠어요.
촬영 : 조선기, 강우용
영상편집 : 이기승
CG : 정예나
자료조사 : 신용하
AD :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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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진 기자 (jin2@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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