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가 가른 오피스 임대시장… 서울 ‘북적’ 뉴욕 ‘텅텅’ [이슈 속으로]
재택근무율 세계 최저 韓
국내 월평균 재택근무 일수 1.6일 불과
加 6.8일·美 5.6일·대만 2.8일보다 적어
서울 오피스 평균 공실률 2.2%로 하락세
뉴욕 16.3%·베이징 24% 오히려 올라가
나홀로 성장 이유와 전망
국내 기업, 재택 대신 사무실 선호 영향
출퇴근 시간 적은 지리적 환경도 작용
고금리·경기침체로 기업 실적 떨어져
2024년 임대시장 하락세·양극화 가능성
국내 오피스 임대시장 분석
도심권, 치안 유리해 외국계 기업 선호
여의도권 금융업, 강남권 IT·벤처 몰려
분당권 첨단기업, 성수권 젊은층 선호
15일 상업용 부동산 종합 서비스 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서울 오피스 평균 공실률은 2.2%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 2분기부터 이듬해 1분기까지 공실률이 치솟았던 것을 제외하면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꾸준히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임대료는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3분기 전용면적당 임대료(3.3㎡ 기준)는 24만2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가까이 상승했다.
임대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오피스 빌딩 매매시장도 선방하고 있다. 오피스 거래의 특성상 금리가 인상되는 시기에는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업무·상업용 빌딩 거래액은 1조6879억원으로 전월 대비 77.5% 증가했다. 지난해 7월 이후 15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거래 건수는 111건으로, 전월보다 줄었지만, 올해 상업용 부동산 최대어로 꼽혔던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삼성SDS타워가 8500억원에 거래된 효과가 작용했다. 오피스 거래는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임대시장의 안정세가 투자 수요를 뒷받침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반면 해외 주요국에서는 오피스 임대시장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전문회사 코스타에 따르면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오피스 공실률은 각각 16.3%와 20%로 조사됐다. 유럽 국가 중 오피스 시장이 가장 발달한 영국 런던의 공실률도 9%로, 2003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역대급 부동산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에서는 베이징(24%)과 상하이(21%) 등 주요 도시의 공실률이 20%대에 달할 정도다.
국내 오피스 시장이 ‘나홀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비결은 한국의 문화적·지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재택근무 대신 사무실을 선호하는 국내 기업의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 지난 4∼5월 미국 스탠퍼드대·멕시코 기술자치대·독일 IFO경제연구소가 세계 34개국 직장인 4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 직장인의 월평균 재택근무 일수는 세계 최저 수준인 1.6일로 나타났다. 캐나다(6.8일), 미국(5.6일) 등 미주 지역과 영국(6일)을 비롯한 유럽은 물론 대만(2.8일)과 일본(2일)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보다 적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해외 주요국은 재택근무가 정착된 반면 국내 직장문화에서는 재택근무가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 결과다. 애초에 대기업과 일부 업종에서만 재택근무가 도입됐고, 전면 재택근무 대신 사무실 출근과 재택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가 주를 이뤘다. 그마저도 엔데믹 이후에는 재택근무를 폐지한 곳이 많다. 지난달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매출 50대 기업 재택근무 현황 조사’에서 엔데믹 이후 재택근무제를 지속해서 활용하겠다는 응답은 9.7%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재택근무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고용주의 취향뿐 아니라 지리적 환경의 차이도 작용했다. 미주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대중교통이 덜 집약된 만큼 통근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반면 재택근무에는 유리한 환경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도시는 밀집도를 빼면 출퇴근 시간 자체는 길지 않고, 집 안에서 따로 구분된 업무 공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재택근무로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오피스 수요는 좀처럼 줄지 않는 가운데 ‘서울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화 현상이 심각한 한국 특성상 공급은 한정돼 있다. 국내 오피스 거래 중 수도권 비중(한국부동산원 기준)은 2019년부터 70%를 넘어섰다.
하지만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실적 부진과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이 늘면서 내년에는 오피스 임대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들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류강민 알스퀘어 리서치센터장은 “코로나19 사태와 엔데믹 시점에 창업이 늘어난 것보다는 기타 지역에서 이전하는 수요가 많았다”며 “오피스 시장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어 서울 핵심권역에 있던 사무실을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한 서울 기타권역으로 이전하는 회사가 늘면서 내년에는 공실률도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오피스 시장은 서울의 ‘업무지구 3대장’이 독점하는 구조다.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만큼 업무 환경이 쾌적하고 유사업종이나 협력업체 간 원활한 교류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기 유리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3대장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학술적인 명칭은 아니지만, 오피스 업계에서는 서울의 주요 업무지구를 도심권(Central Business District·CBD), 여의도권(Yeouido Business District·YBD), 강남권(Gangnam Business District·GBD)으로 구분한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업무지구인 CBD는 종로와 광화문, 을지로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지하철 1∼5호선이 지나 교통이 편리하고 정부서울청사와 서울시청 등 행정기관이 밀집돼 사업에 유리한 환경이다. 특히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 국가 대사관이 있는데, 대사관 주변이 치안 등에 유리하다는 인식으로 과거부터 외국계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된 YBD는 영등포구 여의도와 인근 지역이 해당한다. 인터넷 발달 이전에는 금융기관들이 주식, 외환 등 각종 금융거래 관련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붙어 있어야 했다. 1979년 명동에 있던 한국증권거래소가 여의도로 이전한 뒤 주요 증권사가 속속 집결하면서 여의도 증권가라는 이름이 생겼다. 현재도 증권사, 은행, 보험 등 금융기업 본사가 많고, 금융 관련 업종이나 핀테크(금융·디지털 기술 결합) 등 과학기술 분야 기업이 선호하는 업무지구다.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를 중심으로 한 GBD는 198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대기업과 금융기업들이 들어오며 자리를 잡았다. 금융기업 상당수는 여의도로 자리를 옮겼지만, 1990년대 정부가 이 지역을 서울 제2상업지역으로 지정하며 정보기술(IT) 기업과 게임업체, 벤처기업 등이 몰려들었다. 서초구에는 대법원과 대검찰청이 있는 만큼 자연스럽게 소규모부터 대형 로펌까지 법률사무소가 오피스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은 아니지만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인근 용인시 일부 지역의 업무지구를 분당·판교권(Bundang Business District·BBD)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2010년대 초중반부터 판교테크노밸리에 IT 기업들이 입주하면서 업무권이 발달했고, 이후 바이오 등 첨단기술 분야 기업들도 이곳에서 창업하거나 이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숲 주변 성동구 성수동 일대가 신흥업무지구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 업무지구인 CBD와 GBD 사이에 있다는 입지적 장점이 있고, 과거 준공업지역으로 활용되던 곳에서 재개발, 리모델링 등을 통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의 신규 오피스가 공급되면서 차별화된 세련된 분위기를 원하는 젊은층이 선호하는 장소가 됐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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