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만 마시면 두통이”…숙취, 즐길 수 없다면 피하는 방법 있다는데 [전형민의 와인프릭]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12. 16.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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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더 숙취가 심한 술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종종 ‘숙취’를 주제로 토론이 벌어지곤 합니다. 누군가 ‘와인을 마시면 유독 다음날 숙취가 심하다’는 불만을 토로하면, 와인 애호가들이 그에 질세라 ‘그건 와인을 마시고 다른 알코올을 더 보충해서 그렇다’라던가 ‘심리적인 문제’라는 식으로 대꾸하면서죠.

인간이 어떤 종류의 알코올이든 다량으로 섭취하고 숙취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과욕입니다만, 유독 와인을 마시고 숙취가 심하다는 호소가 여러명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일견 이유가 있어보입니다. 결국 핵심은 와인은 다른 주종(酒種)에 비해 더 숙취가 심한 술인가?인데요.

마침 최근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이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오늘 와인프릭에서는 와인과 숙취 사이의 가장 최신 연구를 얘기합니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숙취가 적은 와인도 소개합니다.

“난 와인만 마시면 숙취가 심하더라”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이야기죠. 우리에게 와인은 주류(主流)인 주류(酒類)가 아니지만, 와인이 주류인 서양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꽤 깊이 진행됐습니다. 대부분이 화이트 와인보다는 레드 와인에서 더 숙취를 느낀다는 점이 확인됐죠. 하버드(Harvard) 대학 의학전문대학원은 이에 대해 타닌(tannin)과 히스타민(histamine)을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포도 껍질과 줄기, 씨앗 등에서 추출되는 타닌은 화이트와인에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레드 와인에 향미와 구조감을 부여하는 요소이자 항산화 물질을 함유한 식물성 화학물질이지만, 통증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특정 화학물질의 방출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히스타민 역시 포도 껍질에서 발견됩니다. 당연히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보다 더 많이 함유하고 있죠. 어떤 사람들은 소장에서 히스타민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데요. 알코올도 효소를 억제하므로 레드 와인을 통해 혈액 내 히스타민 수치가 증가할 경우, 혈관을 확장시키고 두통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한때 와인에 첨가하는 아황산염(sulfite)을 원인으로 지목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황산염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한 재료로 와인에 첨가됐는데요. 현재는 아황산염이 들어가지 않은 와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일부 내추럴 와인들도 아주 소량이나마 아황산염을 첨가하죠.

다 이미 과학자들은 아황산염이 두통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정작 아황산염은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에 더 많이 첨가된다는 점도 숙취 유발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죠.

와인에 타닌이 발생하는 요인들. [winefolly]
새로 밝혀진 이유, 케르세틴
지난달 발표된 최신 연구에서는 타닌과 히스타민 외 케르세틴(quercetin)이 숙취에 영향을 준다는 가설이 도출됐습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케르세틴이 와인을 통해 인체 혈류로 들어가면서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세테이트로 바꾸는 효소를 차단하는 화합물인 케르세틴 글루쿠로나이드(quercetin glucuronide)로 전환되고, 이 때문에 독소(아세트알데하이드)가 체내에 축적돼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는 설명입니다.

UC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의 포도 재배 및 양조학과 명예교수이자 와인 화학자인 앤드류 워터하우스(Andrew Waterhouse) 교수는 “아세트알데히드는 잘 알려진 독소이자 자극제, 염증성 물질로 안면 홍조와 두통, 메스꺼움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 “동아시아 인구의 약 40%는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세테이트로 바꾸는 효소가 잘 작동하지 않아, 아세트알데히드의 체내 축적이 더 용이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케르세틴이 포도송이 숙성에 필수적인 햇빛에 의해 생성된다는 점도 레드 와인에서 유난히 숙취를 느낀다는 가설을 뒷받침합니다. 워터하우스 교수는 “나파 밸리에서 까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를 재배하는 것처럼 포도송이가 (햇빛에) 노출된 상태에서 재배하면 4~5배 더 높은 수준의 케르세틴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연구진은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에 비해 케르세틴을 만들어내는 플라바놀(flavanol)이 10배 정도 많이 들어있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연구 결과는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케르세틴의 함량이 포도의 양조를 비롯해 청징·숙성 등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하는 만큼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히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현재는 케르세틴이 많이 함유된 레드 와인과 그렇지 않은 레드 와인을 활용해 임상 실험을 진행하는 단계로 알려졌습니다.

UC데이비스 연구진이 숙취의 원인으로 지목한 케르세틴의 분자구조. [suntory 연구소]
어떤 와인이 그나마 숙취를 줄일까
그래서 결론적으로 어떤 와인을 골라야 숙취가 줄어드는 걸까요? 일부 전문가들은 레드 와인 대신 화이트 와인을 선택하라고 권합니다. 레드 와인이 화이트 와인에 비해 플라바놀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니까요.

또 다른 전문가들은 오랜 숙성이 가능한 무겁고 강건한 와인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즉시 마실 수 있는 와인을 마시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와인의 장기 숙성을 위한 필수 요소에 타닌과 농축되고 잘 익은 포도 열매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착안한 조언입니다. 포도 열매가 잘 익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일조량이 필요하고, 일조량은 케르세틴을 만들어낸다는 해석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두통을 피하기 위해 화학 물질을 첨가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내추럴(natural·천연) 와인만을 마신다는 것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두통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히스타민, 타닌, 케르세틴 등은 내추럴과 컨벤셔널(conventional·보통의 와인을 뜻함) 상관없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필터링을 하지 않는 내추럴 와인이 컨벤셔널 와인보다 타닌, 케르세틴 등을 더 많이 함유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아무튼 와인과 숙취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전문가들은 레드 와인보다 화이트 와인, 무겁고 강건한 와인보다 가볍고 경쾌한 와인을 마시는 게 숙취 우려를 덜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각자 다르게 느끼는 와인의 매력
인류가 와인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답이 있겠지만, 많은 애호가들은 다양한 취향과 개별성을 꼽습니다. A라는 와인이 누군가는 최고의 맛과 향을 느끼게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그저그런 와인일 수 있다는 것이죠. 주종(酒種)에 따라, 혹은 와인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숙취 역시 그런 연금술의 영역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고이접어 나빌레라’라는 다시 없을 아름다운 문구를 남긴 청록파 조지훈(본명 조동탁) 시인은 생전 음주를 무엇보다 사랑해 주도(酒道) 18단계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 중 12번째인 탐주(眈酒·3단)는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을 뜻하는데요. 술의 진경이란, 술맛은 물론 술로 인한 고통(숙취)까지 즐길 줄 아는 수준을 일컫는 말인 동시에 ‘숙취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적당히 마시라’는 조지훈 시인의 혜안이 숨겨져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맞이하는 첫 연말 입니다. 예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술자리가 기대되는 상황이죠. 소맥 대신 와인이라면 좀 더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술자리가 되지 않을까요. 부어라 마셔라가 아닌 맛과 향을 즐기는 술자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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