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100만명 정신상담” 외쳤지만…‘최저임금 계약직’ 상담사 줄퇴사 [저격]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3. 12. 16. 17:4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격-6]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식’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더이상 개인의 문제로 두지 않고 주요 국정 어젠다로 삼아 적극 해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윤대통령은 “임기 내 정신건강 정책의 틀을 완성하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해 새로운 정책을 발굴·기획하며 인프라와 재정 투자를 총괄하는 거버넌스를 확립하겠다”는 포부를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신건강 정책 비전 선포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정부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 정책 혁신위원회를 만들어 전 국민의 정신건강을 관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2027년까지 국민 100만명에게 상담 기회를 제공하고 만 20세부터 10년마다 이뤄지는 국가 정신건강 검진을 이르면 내년부터 20~34세 청년부터 먼저 2년 주기로 단축하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이번 혁신방안을 통해 지난해 기준 인구 10만명당 25.2명인 국내 자살률을 10년 안에 5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이 높은지 의문”이라는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현재 심리상담 지원 기관들은 상담사들의 줄퇴사로 인해 극심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정부, 국민 정신건강 ‘예방에서 회복까지’…“전문 인력 확보가 관건”
정부는 국민 정신건강에 대한 관리를 ‘예방부터 회복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체계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신 건강 혁신 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자료=연합뉴스]
현장에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력 확보가 관건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재도 이런 체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정신질환자는 전국 곳곳에 설치된 240여 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등록됩니다.

이후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등 관련 자격증을 갖춘 정신건강관리요원이 정신질환자의 병원 동행, 집 청소 등 일상 생활을 돕고, 구직을 비롯한 사회 복귀까지 관리합니다.

문제는 센터에 등록된 환자 수에 비해 정신건강관리요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권은 정신건강관리요원 1명당 40명꼴로 중증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농촌은 전문요원이 아예 없는 곳도 있습니다.

정부는 내후년까지 요원 1명당 맡는 환자 수를 22명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이처럼 검진 규모를 크게 확대하면 신규 환자가 늘게 돼 요원이 맡는 환자 수가 오히려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 정신 건강 문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청소년 우울증
지난 10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국 중고등학생 5만여명을 대상으로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12개월간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학생은 전체의 14.3%로 집계됐습니다.

특히 여학생(17.9%)은 10명 중 2명 가까이 자살을 생각해 남학생(10.9%)보다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스마트폰을 통해 자살 콘텐츠 등에 쉽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는 2014년부터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전담상담사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지역별 센터에 예산을 배정하면 센터가 상담인력 채용 및 운영을 담당합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7곳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근무하는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전담상담사는 총 54명이었습니다.

지난해 전국 센터에 접수된 상담 건수(18만8518건)로 나누면 상담사 1명이 연간 3500여 건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또 2012년부터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의 후속조치로 여성가족부와 교육부, 경찰청이 합동으로 117학교폭력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누적 신고건수만 60만건이나 되지만 근무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근무자는 학교폭력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심리상담사 등의 자격을 보유한 청소년 전문 상담가들인데 총 179명이 17개 시도에 8~21명씩 지역별로 나뉘어 근무 중입니다.

“임기 내 100만명 심리상담 제공 목표”…질 낮은 상담 제공 우려 목소리
정부는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상적 마음 돌봄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습니다.

내년 정신건강 중·고위험군 8만명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 임기 내 100만명에 심리상담을 제공한다는 목표입니다.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거나 가족의 자살을 경험한 유가족, 의료기관이나 복지센터에서 정신건강에 개입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이들부터 제공됩니다.

이를 통해 2021년 기준 12.1%에 불과한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을 2030년에 24%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신규 환자가 급증하는 데 비해 전문 심리상담 인력이 부족하면 상담의 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뿐만 아니라, 전문성 없는 민간 상담사가 더욱 난립하면서 국민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

유정복 인천시장,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가운데 왼쪽부터)이 21일 인천 주안역 앞 광장에 마련된 찾아가는 전세피해지원 심리상담버스에서 심박변이도 검사 시연을 살펴보고 있다. 2023.4.21
민간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의 이름은 그럴 듯 하지만, 실제로는 반나절만에 취득할 수 있는 전문성 없는 자격증입니다.

실제로 제가 취재를 하며 취득한 적이 있었습니다. 20분 내외 강의 22강을 60% 이상 들으면 시험 응시가 가능했고, 60점 이상 취득하면 합격이었습니다.

강의는 틀어두기만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처리됐고, 시험 문제는 강의를 듣지 않고도 합격할 수 있을만큼 쉬웠습니다.

지금도 일부 전문성이 떨어지는 ‘민간 상담사’들이 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내세우고 상담을 하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공신력 낮은 민간 자격증이 적지 않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마땅치 않습니다.

현재까지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만 4개입니다. 이들 법안은 심리상담 전문가’를 심리학 관련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고 2년 이상 3000시간 이상의 실무수련을 마치거나,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년 이상, 1000시간 이상의 실무수련을 마친 자로 규정하고, 심리사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자의 심리검사와 심리상담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문제는 이들 법안의 국회 통과가 난망하다는 것입니다. 이 법안들은 발의된지 1년이 넘도록 보건복지위 소관위에 계류 중입니다.

최저임금 수준 처우에 짐싸는 심리상담사들
그렇다면 전문 심리상담사는 현장마다 왜 턱없이 부족한 것일까요?

현장에서 근무하는 상담사들은 열악한 임금 수준을 인력난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청소년상담복지센터의 상담사 월급은 230만77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기준 월급인 201만580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이들에 요구되는 학력 수준은 최소 상담복지 분야 석사 학위 이상입니다.

한 임상심리사는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및 위센터(위기학생 관리센터)에도 임상심리사를 배치하는데, 채용 조건이 석사 이상 졸업과 2년 정도 수련한 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2급 이상 소지자인데 월급은 190만원도 되지 않는다”며 “상담에 대한 국가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상담사들은 상담 외 행정 업무까지 맡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낮은 처우에 업무까지 과다해 해마다 절반 이상의 상담사가 퇴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자료=연합뉴스]
또 심리상담사를 대부분 계약직으로 뽑고 있다는 점도 상담사들을 현장에서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지원을 받아 상담인적자원개발위원회가 지난해 심리상담사 8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리상담 분야 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심리상담사의 59.4%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응답자의 53.4%는 지금 속한 기관에 재직한 기간이 2년 이하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먼저 심리상담사를 국가공인자격으로 법제화해 자격 미달자를 걸러내고, 심리상담사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