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만원짜리 S23 울트라 "삼성 갤럭시 아니었어?" [IT+]

이혁기 기자 2023. 12. 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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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IT 언더라인
159만원→13만원 갤럭시폰
브랜드도 가짜 성능도 가짜
정품 성능 10분의 1도 안 돼
그럼에도 짝퉁폰 단속 어려워
스마트폰 시장의 어두운 그림자

# '쇼핑몰에서 최신 갤럭시폰과 아이폰을 10만원에 판다'는 소식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십중팔구는 망설임 없이 달려가 '구매 버튼'을 클릭할 겁니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을 10만원대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요.

# 기자도 그랬습니다. 150만원에 달하는 갤럭시S23 울트라를 13만원에 파는 상품 페이지를 보곤 결국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머릿속으론 그게 '가짜'라는 의심을 지우지 못했으면서도 말이죠. 과연 기자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10만원대 갤럭시폰'의 진실을 파헤쳐봤습니다.

고가 스마트폰을 10만원대에 파는 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얼마 전, "여기서 파는 스마트폰이 말도 안 되게 싼데 진짜인지 확인 좀 해달라"며 동료 기자가 링크를 하나 보내왔습니다. 링크는 쇼핑몰인 11번가로 연결됐는데, 상품명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글로벌 버전 S23 울트라 스마트폰, 7.3인치 풀스크린 4G 16TB 7800mAh 108MP 신제품'. 상품명만 보면 삼성전자가 올해 2월 출시했던 '스마트폰 갤럭시S23 울트라'를 파는 곳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격이 이상했습니다. 갤럭시S23 울트라는 기본 모델의 가격만 159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입니다. 하지만 이 링크에 쓰인 가격은 13만원이었습니다. 하이엔드 스마트폰을 기존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에 파는 셈이었습니다.

이건 사기일까요? 일단 상세 페이지는 꽤 그럴싸했습니다. 제품 사진도 버젓이 있고, 'S23 Ultra(울트라)'란 이름도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의 성능을 알려주는 문구도 빼곡히 적혀 있었죠.

모델: S23 울트라(5G)
CPU: 스냅드래곤 8 gen2(최신 10코어)
OS: 안드로이드 13.0
화면 크기: 7.3인치
배터리: 7800mAh 고밀도 리튬 이온 배터리
메모리: 16GB RAM

상품 페이지를 들여다볼수록 처음엔 사기라고 생각했던 기자도 머리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짝퉁폰이라고 하기엔 상세 페이지가 고화질 사진과 문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품명에 '글로벌 버전'이라고 표기한 것도 기자에게 혼동을 줬습니다. '해외에서 안 팔린 재고를 싸게 들여와서 파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이 상품을 유통하는 업체가 당당하게 홍보하는 것도 그랬습니다. 해당 상품을 유통하는 업체는 'H홀딩스'란 곳인데, 상세 페이지엔 '소비자만족 부문 1위' '브랜드대상 부문 1위' 등 자사를 뽐내는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회사 소개란엔 '저희 H홀딩스는 과장되거나 과대한 광고는 하지 않습니다'는 문구와 함께 전무이사라는 사람의 사진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 들인 티가 역력한 상세 페이지를 쭉 보고 있자니 처음엔 의심으로 가득했던 기자도 어느새 어떤 색상의 제품을 살지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기자는 한 스마트폰을 2년 넘게 쓰고 있습니다. 평소 최신폰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지만 비싼 가격 탓에 입맛만 다시고 있었기에, 갤럭시 S23 울트라를 10만원에 파는 이 링크를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옵션을 고르고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죠. 이게 진짜라면 기자는 엄청나게 저렴한 값에 '득템'을 한 것이니까요.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가격만 보고 구매를 결심한 건 아닙니다. 상품 페이지를 정성 들여 제작한 데다, 유통사까지 이름을 밝히고 홍보하고 있으니 '가짜'를 팔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이 상품을 파는 쇼핑몰은 다른 곳도 아니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11번가입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환불받으면 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죠.

[사진= 더스쿠프 포토]

그런데, 구매한 지 1~2시간이 지나자 전화 한통이 걸려 왔습니다. 자신을 스마트폰 판매자라고 밝힌 직원은 "주문한 색상이 품절됐으니, 다른 색상으로 재구매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색상이 남았냐"고 묻자 "골드 외엔 전부 품절"이란 답변이 돌아왔죠. 검은색으로 구매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차피 스마트폰 케이스를 쓸 테니 골드 색상으로 재주문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남은 색상마저 품절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것도 사실이었죠.

하지만 11번가 판매 페이지엔 직원이 말했던 골드 색상이 옵션에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아까 걸려 온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판매자는 "골드 상품 등록을 못한 것 같다"면서 "이쪽 링크에서 구매하시면 된다"며 문자로 링크를 보내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문자에 적힌 링크는 11번가가 아닌 '프리○(FREE○○)'이란 구매대행 사이트로 연결됐습니다.

이때부터 기자는 이상한 점을 느꼈습니다. 쇼핑몰이 아닌 구매대행 사이트로 연결해주는 것도 의심스러웠고, 무엇보다 링크에 적힌 상품명이 기자가 처음 봤던 상품명과 아예 달랐습니다. '스마트폰 i15 프로맥스 5g'. 맞습니다. 그 직원은 기자에게 갤럭시S23 울트라 대신 애플의 아이폰15 판매 페이지를 보내준 겁니다.

상품 페이지를 잘못 보내줬단 얘긴데,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상품 페이지는 애플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어딘가 조악해 보였습니다. 게다가 애플 공식 홈페이지 사진과 비교해 보니 카메라 배치나 측면 버튼 등 스마트폰 모양이 실제 아이폰15와 조금 달랐습니다. 아이폰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제품이 '짝퉁'이란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죠.

그래서 처음에 봤던 갤럭시S23 링크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니 그제야 이상한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로고라 여기고 지나쳤던 파란색 타원형 이미지엔 'Samsung' 대신 'Global version(글로벌 버전)'이란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또 상품 이름을 포함해 상세 페이지 그 어디에도 '삼성전자'란 말은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기자는 다시 판매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자: "제가 본 링크가 삼성전자 갤럭시S23 울트라 판매하는 곳이 맞나요?"
판매자: "아, 모르셨어요? 그거 갤럭시S23이 아니에요."
기자: "네? 삼성전자에서 만든 게 아니라고요?"
판매자: "네, 제품명만 S23 울트라예요."

기자는 구매를 황급히 취소하고 동료 기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자 동료 기자도 "나도 제품을 샀는데 판매자한테서 전화가 왔다"면서 "현금결제를 하라고 유도하길래 구매를 취소했다"고 답했습니다.

11번가는 판매자가 현금결제를 요구할 경우 거부하고 11번가에 신고하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현금거래 후 판매자가 물건을 배송하지 않은 채 잠적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판매자가 제시한 계좌로 거래를 하면 쇼핑몰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쇼핑몰에서도 보상을 해줄 수 없습니다. 동료 기자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상품을 취소한 거죠. 어쨌든 이로써 기자가 받은 링크는 정품이 아닌 '짝퉁'을 파는 곳이란 게 분명해졌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기자가 속을 뻔했던 '짝퉁 사기극'의 전모입니다. 문제는 이런 수법에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을 거란 점입니다. 통계를 봐도 소비자와 관련 산업이 짝퉁 제품으로 입는 피해 규모는 상당합니다.

지난 3월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가짜 브랜드 확산으로 매년 22조원의 산업 피해가 발생하고, 3만1753개의 일자리가 감소합니다. 터무니없이 저렴한 가격과 정품 뺨치는 상세 페이지 탓에 기자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일반 소비자들이야 오죽할까요.

이렇게 '짝퉁 갤럭시폰'과 '짝퉁 아이폰'을 파는 업체도 한두곳이 아닙니다. 당장 11번가에 '글로벌 버전 S23'으로만 검색해도 132곳에 달하는 상품 페이지가 쏟아져 나옵니다. 쿠팡이나 G마켓 등 다른 쇼핑몰에서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짝퉁 스마트폰'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는 방증입니다.

더구나 짝퉁 스마트폰은 성능도 '짝퉁'입니다. 기자가 상세 페이지에서 봤던 '짝퉁 갤럭시S23 울트라' 성능은 허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봤던 7800mAh에 달하는 배터리 성능이 대표적입니다. 정품 갤럭시S23 울트라의 성능(5000mAh)을 뛰어넘는단 건데, 짝퉁 스마트폰이 이 정도 기술력을 가졌을 리 만무합니다.

정품과 가품의 성능을 세밀히 비교한 자료도 있습니다. 전자기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말방구 실험실'이 정품 갤럭시S23 울트라의 성능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기기 성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워크 3.0 퍼포먼스(스마트폰의 처리 속도)' 부문에서 갤럭시S23 울트라는 1만5772점이 나온 반면 가품은 0점을 기록했습니다.

쓰기 성능, 사진 편집 성능, 저장 공간 성능 등 다른 분야에서도 정품과 가품의 성능 차이가 적게는 4.5배에서 많게는 16배까지 차이가 났죠. 말방구 실험실은 영상에서 "스펙은 높은 것처럼 조작해 놓고 실상은 10년 전 스마트폰보다 못한 성능을 집어넣어 놨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렇듯 가짜 스마트폰이 암암리에 활개를 치고 있지만 이들 판매업체는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듯합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지식재산권(IP) 보호를 위해 설치한 해외지식재산센터(IP-DESK)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위조품 단속을 지원한 사례는 60건에 불과합니다. 같은 기간 지식재산권 관련 상담이 4만여건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적은 수치입니다. 그만큼 정부에서도 짝퉁 단속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단 얘깁니다.

그렇다고 쇼핑몰이 나서서 이들 짝퉁 판매자를 일일이 단속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익명을 원한 쇼핑몰의 한 관계자는 "쇼핑몰에 하루 등록되는 상품만 수천개인데, 상품명만으론 정품인지 짝퉁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면서 "소비자들이 제보하지 않는 한 쇼핑몰 측에서 일일이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짝퉁 스마트폰의 현주소입니다. 스마트폰 가격은 점점 비싸지는데 서민의 지갑은 점점 얇아지니, 이런 저렴한 짝퉁폰에 눈길을 떼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정부의 별다른 단속도, 쇼핑몰에 제재도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짝퉁폰 판매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소비자들에게 '미끼'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속는 사람이 바보'라고 웃어넘겨야 할 일인 걸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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