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시 “번아웃 올 때면 집에서 시원하게 울어요”
(시사저널=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고민시라는 배우의 스펙트럼은 무한대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 장르를 넘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지난 몇 년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배우다. 그리고 지난해 영화 《밀수》를 통해 대선배들 사이에서 긴장감, 타격감 전혀 없이 완벽하게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 극찬을 받았다. 역시나 제32회 부일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며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냈다.
실제로 그는 데뷔 초부터 업계에서 '깡' 하나로 유명했다. 신인 시절 오디션 현장에서 그녀를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떡잎"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고민시는 "현장에서 떨리지만 절대 그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다.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최근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2》로 컴백한 그녀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2023년 한 해 가장 바쁜 배우였다. 최근에 선보인 《스위트홈2》는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는데 어땠나.
"어느 작품이든 호평과 혹평은 항상 있다. 또 어느 작품이든 배우고 느끼는 부분이 있기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흥행과 상관없이 애초부터 후회하지 않을 작품만 선택한다. 개인적으로 《스위트홈》은 내게 특별한 작품이다. 처음으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이고, 은유라는 캐릭터를 만나지 않았으면 배우라는 길을 걷는 데 있어 더 천천히 가지 않았을까 싶다."
《스위트홈2》를 통해 배우고 느꼈던 것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첫 번째는 액션이다. 평상시에도 도전을 좋아하고 담력도 깡도 있는 편인데 현장에서 촬영을 하면서 너무 힘들더라. '나에게 남는 게 있을까' '이게 끝나기나 할까' 할 정도로 힘들더라. 한데 다음 작품 촬영을 하는데 제가 몸을 스스로 내던지고 있더라. 몸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시즌1 때는 신인이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났고 시즌2로 컴백할 때는 어엿한 주연배우로 성장했다. 특히나 영화 《밀수》를 통해 올해 큰 사랑을 받았다.
"활동하면서 가장 바쁘게 일했던 한 해였다. 특히나 여름에 《밀수》를 통해 많은 분이 영화관을 찾아주셔서 행복했다. 장담컨대 처음 연기를 하고자 할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역할의 크기에 상관없이 좋은 작품이라면 늘 도전할 것이다."
데뷔 초부터 업계에서 '깡'이 있기로 유명했다.
"맞다. 속으로는 긴장해도 절대 그 약한 마음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 프로다워야 한다는 주문을 걸며 정신력으로 버텼다. 스스로를 테스트하는 마음으로 '이 정도 벽도 못 넘어?' '그래서 무슨 배우가 되겠다고?'라고 생각하며 긴장하고 지냈다. 기분 좋은 긴장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
한 번쯤 번아웃도 왔을 것 같다.
"당연하다. 연기는 늘 새롭고 어렵다. 더구나 제가 캐릭터를 분석하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라 그 시간이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데 현장에서 오케이 하는 사인 소리가 나는 순간, 힘들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 순간 때문에 연기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몰입도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럴 때마다 '그래, 난 연기를 너무 사랑하지'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고통의 시간은 있지만 결국 그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
번아웃은 어떻게 해소하나.
"혼자 집에서 운다. 제 성향이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하는 편이다. 데뷔 초에는 주변 분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이겨내야 하더라. 온전히 그 시간을 다 느끼고 눈물을 쥐어짜내고 난 후에 돌파구가 보이더라. 그래서 울고 싶을 때 시원하게 운다."
《스위트홈2》를 촬영하면서 모니터를 안 했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감독님이나 주변 분들이 영상 속 모습을 확인하지 말고 작업을 해보라고 제안해 주셨다. 은유라는 캐릭터처럼 현장에서도 홀로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더욱 몰입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의도였다. 그래서 도전을 해봤다. 사실 저는 평소에 모니터를 열심히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계산 없이 촬영에 임해 봤다. 한데 그냥 내가 하던 대로 그림에 맞춰서 일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 하하. 덕분에 나에게 맞는 것을 명확하게 찾았다."
한 번 작업했던 감독과 다시 작업하는 기분은 어떤가.
"감사하지만 부담감도 크다. 한 번 더 제안을 주신 거라 실망을 드려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족 앞에서 연기를 하는 마음과 비슷하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저는 이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적정한 거리감이 있는 게 좋다. 그 이상의 친밀함이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더라. 친밀함과 존중은 별개다.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오히려 서로를 더 존중하게 된다. 그 불편한 긴장감이 연기할 때 분명히 도움을 주더라."
《밀수》 《스위트홈》 《헤어질 결심》 《봉오동 전투》 《마녀》 그리고 《스위트홈2》까지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넘나들며 연기를 했다. 주연부터 단역까지 다양했다.
"분장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작품을 했다. 그렇다고 화려하게 꾸미는 작품도 없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피 분장, 땀 분장 등등 분장을 해야 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당분간은 현실적인 분장을 하는 현대극을 하고 싶다(웃음). 그리고 저는 제 역할에 대한 분량은 전혀 상관이 없다. 좋은 작품이면 언제든 한다."
어떤 종류의 현대극을 하고 싶나.
"따뜻하고 평범한 가족 이야기나 몽글몽글한 멜로에 도전해 보고 싶다. 20대 때는 사랑 이야기에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30대가 됐으니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양한 포인트들이 있는데, 첫 번째는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강력할 때. 그리고 캐릭터가 주체적인 인물이라 도전의식이 생길 때. 그리고 그게 조금 덜하더라도 제가 채워나갈 수 있는 것들이 보일 때 도전하는 편이다."
2024년 계획도 궁금하다
"영화는 꼭 한 편 찍고 싶다. 사실 영화는 매년 1편씩은 하고 싶다.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고 큰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영화라는 작업을 매년 하나씩 제 필모그래피에 남기고 싶은 소망이 있다. 요즘에는 드라마 작업이 많아지는 추세다. 영화 시장이 좋지 않은데 젊고 유능한 배우들이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면 관객들도 호응해 주지 않을까 싶다. 적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다. 꼭 상업영화가 아니어도 좋다. 인디나 독립영화 쪽 작업도 꼭 해보고 싶다."
배우로서 지키고 싶은 신념은 뭔가.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지금 작품을 끝내고 몇 달 쉬고 있는데 빨리 현장에 가서 연기하고 싶다. 40·50대가 되더라도 이런 열정과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가 있나.
"홍콩 배우인 장만옥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분이 나오는 작품은 다 봤고, 그중에서도 《첨밀밀》을 가장 좋아한다. 그 작품을 보면서 '나는 언제쯤 저렇게 연기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감정 표현을 어쩜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배우로서 영감을 많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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