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초저출산 탈출 걸림돌은 사교육비다?[노컷체크]
사실
▶ 글 싣는 순서 |
①한국은 인구소멸 국가다?[노컷체크] ②한국 합계출산율은 향후 상승한다?[노컷체크] ③합계출산율 1명 이하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노컷체크] ④저출산, 저출생으로 대체 사용해도 된다?[노컷체크] ⑤아동수당이 출산율을 높인다?[노컷체크] ⑥남편 육아휴직이 합계출산율 높인다?[노컷체크] ⑦한국 초저출산 탈출 걸림돌은 사교육비다?[노컷체크] (계속) |
"아이를 너무 갖고 싶긴 한데… 자식 나이에 '0' 붙이면 월 학원비래요."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윤모 씨(32)는 '강제 딩크족'이다. 아이를 갖고 싶으나 경제적 이유로 자녀를 포기했다. 주변에서 임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맞벌이 윤 씨 부부의 월평균 소득은 550만 원. 충분히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이 아니냐는 질문에 "우리야 아낀다고 해도 애한테 아낄 수 있나.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나이까진 괜찮을 것 같은데 학원비다 뭐다 그 이후가 시작인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교육비 부담으로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비단 윤 씨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실시한 '저출산 인식조사'에 따르면 청년세대(만 19~34세)는 출산을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로 '양육비·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57%)을 꼽았다.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의 2023 설문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39세 미혼 청년의 47%가 출산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남성은 '자녀 교육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서'(43.6%), 여성은 '육아에 드는 개인적 시간·노력을 감당하기 어려워서'(49.7%)라고 답했다.
월급 16%가 '사교육비'로 줄줄…학부모 허리 휜다
지난해 3인가구 중위소득이 약 420만 원임을 고려하면 월급의 10~16% 가량이 사교육비로 나간 셈이다.
해당 조사는 전국 초·중·고 3천여 곳의 학부모 7만 4천 명을 설문해 평균을 냈다. 대상을 교육열이 높은 지역으로 좁히면 서울 93만 7천 원, 경기 72만 7천 원, 대구 70만 4천 원으로 평균치를 훨씬 웃돌았다. (사교육 참여 고등학생 기준)
다만 3~5월(1차 조사), 7~9월(2차 조사) 사교육비를 연간화해 평균을 내기 때문에 겨울 방학 기간 사교육비는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일부 학부모들은 실제로 지출하는 교육비가 더 크다며 교육부의 조사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지역별 편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다음 학년 선행학습을 위한 겨울방학 기간의 사교육비를 포함하지 않아서다.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사교육 성행에 관해 "자녀 양육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아이의 경험이나 교육 등 높아진 기대 수준을 공교육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사적 부담으로 전가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희 육아정책연구소 저출생육아지원팀장은 "직업 간 위계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 팀장은 "의대 쏠림 현상과 같은 (일률적 기준의)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선호가 없어지지 않는 한 저출산 기조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며 "사회적 형평성 회복이 필요한데 고착된 분위기를 정책으로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교육비 1% 오르면 출산율은 0.0019명 감소한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의 '주택가격과 사교육비가 합계출산율에 미치는 영향과 기여율 추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인당 사교육비가 1% 증가하면 이듬해 합계출산율은 약 0.0019명 감소한다.
2009~2020년 우리나라 16개 광역지자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러한 경향은 모든 분석에서 일관됐다.
각 변수의 출산율 감소 기여율을 추정한 결과 사교육비 영향은 26.4%로 주택가격(12%)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자녀 사교육비 경감이 출산율 회복에 더 중요한 요소로 나타난 것이다.
박진백 부연구위원은 지난 6월 열린 '사교육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대안 모색' 토론회를 통해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서는 출산을 유도하는 방안이 뚜렷하게 발견되지 않고, 출산 이후 안정적인 양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러면서 "첫째 자녀 출산 유도를 위해서는 주택가격 안정, 신혼부부 주거비 경감, 주택공급 확대 등이 필요하며, 둘째 자녀 출산 유도를 위해선 사교육비 경감 및 공교육 현실화가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감사원도 '2021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및 인구구조 변화 대응 실태' 보고서에서 주택가격, 실업률과 함께 사교육비를 저출산 원인으로 짚었다. 사교육비, 주택 가격, 실업률은 출산·혼인율과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 등이 높아질수록 출산·혼인율은 떨어진다는 의미다.
돌봄공백에 학원 '뺑뺑이'…울며 겨자 먹기로 사교육비 지출
남양주에 거주하는 유모 씨는 저출산 시대에 보기 드문 네 자녀의 엄마다. 첫째는 초등학교 2학년, 둘째는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최근 일을 시작한 유 씨의 가장 큰 고충은 '돌봄 공백'이다. 아이들이 집에 없는 '황금 시간대' 근무를 운 좋게 구했지만 이 업무마저도 쉽지 않다. 아이들은 왜 이리 자주 아픈지, 또 방학은 왜 이렇게 자주 찾아오는지….
유 씨는 "부모들 사이에서 '아이가 셋 이상이면 엄마가 일을 안 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말이 통용된다"며 "주위 맞벌이 부부들은 아예 차량이 학교 앞까지 오는 학원 위주로 뺑뺑이를 돌린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교육열과 함께 '돌봄 공백'이 사교육비 지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교육부의 사교육비 조사에서도 이러한 추세를 짐작할 수 있다. 초등학생 사교육 참여율은 85.2%로 중학생(76.2%), 고등학생(66.0%)보다 높았고, 주당 참여시간 또한 7.4시간으로 중학생(7.5시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와 관련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국 교육비 같은 비용 문제는 (저출산 해결의) 필요조건일 뿐"이라며 "보편적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해 사회적 돌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와 더불어 가족 친화적 기업 경영도 이뤄져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부모의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출산율 반등 효과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도 "결국 안정성에 대한 문제로 거주와 직장이 해결돼야 한다"며 "정부가 저출산 해결을 우선 순위로 세웠다면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직장이 있는 수도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밀어붙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교수는 "수도권 집중 문제가 생기겠지만 그 이후 지방 소멸-지방 분권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더 중요한 목적을 관철하고 다음을 달성해야지 동시에는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교육 낯선 스웨덴-프랑스…한국은 참여율 2위
싱글 대디로 아이를 키우는 니클라스 뢰프그렌(Niklas Lofgren) 스웨덴 사회보험청 가족재정 대변인은 "사실 스웨덴엔 사교육이라는 개념이 없다"며 "하교 후 추가로 교육을 받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라고 전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자녀를 방과 후 한글학교에 보내는 프랑스 교민 김민철 씨도 "이게 사교육이라면 한글 사교육"이라며 "프랑스에는 학원이나 과외 문화가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스웨덴과 프랑스에서 만난 전문가와 시민들은 사교육 시스템에 대해 낯설다는 입장을 취했다. 전문가들은 관련 질문에 비슷한 사례가 없다고 설명했고 거리의 시민들 역시 사교육을 해본 적도, 할 계획도 없다고 답했다.
2019년 TIMSS(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과 프랑스의 사교육 참여율은 각각 23.4%, 15.4%로 평균 참여율(43.9%)보다 한참 낮다. 반면 한국의 사교육 참여율은 77.6%.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는 이집트(79%) 단 한 곳이었다.
사교육 참여율이 높은 국가는 'GDP 대비 공교육 투자 비율'과 '1인당 GDP'가 낮은 특징을 보였는데, 이는 부실한 공교육의 보충전략으로 사교육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참여율이 70%대인 이집트의 1인당 GDP는 2022년 기준 4295달러(약 567만 원), 남아공은 6776달러(약 894만 원)로 3만 2409달러(약 4280만 원)인 한국보다 훨씬 낮다.
한국 외에도 1인당 GDP와 사교육 참여율이 모두 높은 국가들이 있었다.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대부분 경쟁이 치열하고 소득불균형이 심한 동아시아 국가였다. 해당 국가들은 사교육을 강화전략으로 사용했다. 더 높은 성적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는 교육을 통해 계층의 재생산을 꾀하고 지위 경쟁과 불안 등을 방어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한국(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일본(1.26명), 대만(0.87명), 싱가포르(1.04명)은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이기도 하다.
반면 스웨덴, 프랑스, 핀란드, 캐나다 등 선진국의 사교육 참여율은 20% 안팎에 불과했다. 이들 국가는 GDP 대비 공교육 투자비율이 높고 소득 불평등이 낮다.
이 국가들은 사교육비 지출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는 '돌봄 공백'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두 딸의 엄마 앤 조피 뒤벤더(Ann-Zofie Duvander) 스톡홀름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스웨덴 어린이집은 아침 6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하도록 제정돼 있고 보육이 필요한 부모가 있다면 일찍 닫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야간근무 직종과 부모의 피치 못한 사정을 고려해서다.
어린이집 비용 또한 낮다. 부모가 지불하는 보육비는 실제 비용의 10% 수준이고 나머지는 지자체의 세금으로 지원한다. 모든 부모와 아이가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보육비는 소득에 기반해 책정되며, 상한선이 있어 최대 비용은 아동수당 액수와 비슷하다.
유연한 노동환경도 마련돼 있다. 뒤벤더 교수는 "기존 주 40시간 근무를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주 35시간으로 줄이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직장 내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일종의 규칙을 만드는 일도 자연스럽다. 예를 들어 스톡홀름 대학교에서는 오후 3시 이후엔 회의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추가 혜택을 마련하는 일도 흔하다. 뢰프그렌 대변인은 "기업들은 인재 영입을 위해 우리 회사가 얼마나 가족친화적인지 내세운다"며 "심지어 협약을 통해 근로자에게 법정 상한선보다 많은 육아휴직수당을 제공하는 회사들도 많다"고 밝혔다.
올리비에 코르보베쓰(Olivier Corbobesse) 프랑스 가족수당기금(CAF) 국제관계담당자는 프랑스 역시 유연근무가 정착돼 있다며 "예를 들어 프랑스 엄마들은 수요일을 제외한 주 4일 근무를 택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수요일엔 오전 수업만 진행한다.
이와 더불어 '돌봄공백'에 공감했는데, 이는 프랑스 여성 경력단절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여성이 약 18만 명에 달한다. 탁아소가 부족해 아이를 맡길 수 없으니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돌봄 시설 확충이 곧 출산율 제고를 위한 투자임과 동시에 고용을 위한 정책이다"라고 밝혔다.
※2024 대한민국 출산·출생 팩트체크 문답
-기획·취재 : 박기묵 양민희 송정훈 강지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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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강지윤 기자 lepom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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