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이XX들이…" 최초 발견 MBC 기자의 작심 비판
이기주 전 대통령실 출입기자, 신간 '기자유감' 통해 尹정부 비판
"김은혜 수석의 '날리면' 발표는 수긍 가는 대목이 하나도 없었다"
"MBC 너희들 다 죽어. 상대는 대통령이야" 대통령실 발언 공개도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윤석열 정부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바이든-날리면' 사태.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문제적 발언을 최초 발견했던 이기주 MBC기자가 자신의 신간 <기자유감>에서 2022년 9월22일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밝혔다.
“순방 기자단 단체 채팅방에 한미 정상이 만났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풀러로 현장에 나갔던 TV조선 기자의 전언이었다. 그런데 두 정상이 만난 시간이 고작 2분이란다. 서로 인사하고 통역하고 기념 촬영하면 2분이 다 지날텐데 20분도 아니고 2분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하는 찰나 두 정상의 회담 시간이 2분이 아니라 48초밖에 안 된다는 또 다른 기자의 글도 올라왔다.…아침 7시 추가 중계를 마친 뒤 나는 곧장 프레스룸으로 복귀했다.”
“노트북으로 48초 회동을 확인하기는 했지만, 영상을 끄지 않았다. 계속 재생되는 화면 속에서 윤 대통령은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윤 대통령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뭔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다. 내가 이어폰의 볼륨을 높이던 그때 '국회에서 이XX들이…'로 시작하는 윤 대통령의 찰지고 걸쭉한 발언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너무 놀라워 머릿속이 하얘질 정도였다.…혹시나 잘못 들었을까 2배속으로, 4배속으로, 또는 0.5배속으로 들어도 나의 귀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 기자는 곧장 옆에 있던 타사 기자들에게 해당 영상을 확인해보라고 권했다. 해외순방에 동행했던 기자들 다수가 윤 대통령 발언을 들었을 무렵, 김영태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이 영상기자단에게 '영상을 어떻게 해줄 수 없겠느냐'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후 문제의 영상이 SNS를 통해 한국에서 돌기 시작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9시30분 영상 엠바고가 해제됐고, MBC뉴스 유튜브채널을 시작으로 국내 언론의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이 기자는 “비속어 논란은 이미 뜨거운 감자였고 어디서든 보도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MBC는 퍼스트 펭귄이 된 것일 뿐, MBC가 아니라 누구라도 퍼스트 펭귄은 나타났을 상황이었다”고 적었다.
사태가 커지자 김은혜 홍보수석이 브리핑에 나섰다. “지금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당시 브리핑을 지켜봤던 이기주 기자는 “마치 쪽대본으로 급하게 촬영된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아 지켜보기 거북했다”고 털어놨다. 또 “한국의 야당을 향한 발언이었다는 김 수석의 '날리면' 발표는 수긍 가는 대목이 하나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기자는 “바이든 날리면 사태는 나에게 처음으로 기자란 무엇인가, 기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면서 “다 같이 바이든과 이XX를 보도했지만 대통령실의 '날리면' 발표 뒤 태세를 바꿔 MBC가 보도 경위를 밝혀야 한다며 MBC 책임론을 거론하는 유체 이탈 기자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칼럼뿐 아니라 일반 기사를 통해서도 윤 대통령 방어에 혼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신간 <기자유감>에선 바이든-날리면 사태 이후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도 등장한다. 이 관계자는 이 기자에게 MBC 태도를 강하게 비난하며 “도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되네. 해도 적당히 해야지. 그러다 MBC 너희들 다 죽어. 착각하지 마. 상대는 대통령이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는 MBC 보도가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했다”며 정정보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 기자는 “솔직히 소송 결과에 별로 관심이 없다. 국민의 귀를 재판한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을 일이기 때문이다”라면서 “판결은 나에 대한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상관없이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계속 외치기로 했다”고 적었다.
대통령실은 이 사건 이후 그해 11월9일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 이 기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서 전용기 탑승은 취재 편의 제공이라며 탑승 배제 결정이 불가피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은 전용기 탑승이 왜 취재 편의 제공에 불과한 것인지를 묻지 않았다. 전용기가 대통령 사유재산도 아니고, 기자들이 공짜로 타는 것도 아닌데 대통령 주장을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으며 “기자단의 (취재) 보이콧 논의가 무위로 돌아가자 국민의힘 일부 정치인들은 이를 MBC 탑승 배제의 정당한 논리로 삼기도 했다”고 적었다.
이후 11월18일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에서 “MBC 전용기 탑승 배제는 국가안보의 핵심축인 동맹 관계를 (MBC가)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의 일환으로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이 기자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과 설전이 이어졌다. 그 직후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약식 기자회견)은 중단됐다.
이 기자는 당시를 떠올리며 “도어스테핑은 나를 빌미 삼아 6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기회가 없어진 것은 아쉽지만, 낯 뜨거운 아부성 질문을 더는 듣지 않아도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적었다. 이 기자는 올해 초까지 MBC 대통령실 출입 기자였으며, 지난해 <대통령 나토 순방에 민간인이 동행...1호기까지 탑승?> 단독보도로 제54회 한국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신간에선 당시의 쉽지 않았던 취재 과정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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