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1R는 ‘유죄’ 결론…법원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 암초 만난 이재명[법조 Zoom In/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월 10일부터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은 국민적 관심이 높았던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매주 진행되는 재판을 토요일에 연재합니다. 이와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은 남은 의혹들에 대한 취재도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번 편은 대장동 재판 따라잡기 제54화입니다. |
이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 부당한 업무추진을 견제하는 책무를 핵심으로 수행해야 하는 지방의회의 의원인 피고인 김용과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사업을 관장하는 성남시 산하 공사의 실세 기획본부장인 유동규가 성남시 대형 부동산개발과 관련하여 피고인 남욱 등 민간업자들과 장기간에 걸쳐 사업공모참여, 인허가 등을 매개로 금품수수 등을 통해 상호 밀접하게 유착되어가는 과정에서 행해진 일련의 부패범죄로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의원의 직무의 공정성 및 청렴성과 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한 행위로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의 정치자금법 위반 및 뇌물 혐의 1심 판결문의 양형이유 일부 (‘양형판단의 전제’ 전문(全文)은 기사 끝부분에)
지난달 30일 대장동 관련 사건 중 처음으로 1심 선고가 이뤄졌습니다. 결과는 유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조병구)의 판단이었습니다. 김 전 부원장은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6억7000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징역 5년과 벌금 7000만 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또 6억7000만 원 추징명령도 내려졌습니다.
김 전 부원장은 2021년 4∼8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와 정민용 변호사를 통해 4차례에 걸쳐 이 대표의 대선자금 명목으로 8억47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013년 2월∼2014년 4월 성남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며 대장동 사업 관련 편의 제공을 대가로 유 전 직무대리로부터 1억9000만 원을 받은 혐의도 받았습니다.
● ‘뿌리깊은 부패의 고리’ 인정한 법원
이 사건은 엄밀히 따지면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메인 사건은 아닙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김동현)가 심리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FC 배임·뇌물 혐의 재판과, 같은 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이준철)의 대장동 민간업자 5인방의 배임 혐의 등 실질적 본류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중요한 건 판결문의 내용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148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에서 다른 재판에서도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상당 부분 정리해뒀습니다. 통상 연관사건의 재판을 각각 맡은 합의부 재판장들은 사실관계나 쟁점 판단을 큰 갈래에서 협의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향후 다른 재판에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우선 재판부는 대장동 민간업자들과 당시 경기 성남시 인허가권자들의 유착관계를 상당부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비정상적 정치적 개입을 통해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됐고, 공사가 민간업자들 이권 개입의 통로가 됐다”며 “(대장동)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민간업자들에게 귀속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각종 개발사업의 인허가와 관련된 직접적인 업무는 공사와 성남시에서 결정하여 추진한 것”이라고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남시 의사결정의 최고 책임자는 시장이던 이 대표였으니, 대장동 사업의 당시 최종 결정권자가 이 대표라는 검찰 주장을 법원이 상당부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이러한 민간업자들과 지방자치단체 개발사업 인허가 관련자들 사이의 뿌리깊은 부패의 고리는 지방자치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주민의 이익과 지방행정의 공공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병폐”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김용이 받은 돈, ‘이재명 대선 캠프’ 行 의심
판결문에는 또 김 전 부원장이 민간업자들로부터 받은 돈이 ‘이재명 대선 캠프’로 흘러갔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표현들도 곳곳에 담겼습니다. 재판부는 “각종 증거들을 보면 범행 시기는 대선 경선 조직 구성과 준비 등을 위해 정치자금이 필요했던 시점”이라고 판시했습니다. 김 전 부원장은 대선 1년 전인 2021년 5∼6월경 남욱 변호사로부터 유 전 직무대리를 통해 총 6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인정됐는데, 민주당 경선 준비 자금이 필요했던 시점과 겹쳤다는 것입니다.
김 전 부원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전국 단위 조직이 완성된 상태라 조직관리 비용이 필요하지 않았고, 경선 준비 비용은 자원봉사와 갹출(醵出·여러 사람이 나눠 냄)로 해결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경선 준비 규모에 비춰 볼 때 (갹출로) 해결될 수 있는 정도로 보이지 않는다”며 “피고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비용 결제 내역 등 객관적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습니다. 특히 이 대표 측이 예비경선 후보 등록일 이전부터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 2곳을 운영한 점이 판단의 근거가 됐습니다. 갹출만으로는 사무실 임차보증금과 월세 등을 충당하기가 어려웠을 거라는 겁니다. 재판부는 또 김 전 부원장이 금품을 받았을 당시 캠프는 전국 단위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고 봤습니다.
법원이 이처럼 경선자금 유입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이른바 ‘428억 약정설’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될지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유 전 직무대리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 원을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게 주기로 약속했고, 김 전 부원장이 요구한 돈은 이 중 일부”라고 검찰에 진술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올 3월 대장동 의혹으로 이 대표를 기소하면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이 혐의는 일단 제외했습니다.
● 법원 “유동규 진술, 실체 밝힐 의도가 우선한 것”
법원은 또 대장동 관련 재판의 핵심 증거로 여겨지는 유 전 직무대리의 증언과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도 상당부분 인정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김 전 부원장 측은 유 전 직무대리가 지난해 9월 무렵부터 진술을 번복한 점을 근거로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 전 직무대리에 대한 추가적 수사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한 검사의 협박이나 회유 등이 행해졌다고 볼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유 전 직무대리의 진술을 일괄하여 배척할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치자금법 관련 진술과 관련해선 “유동규로서는 자신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관여하였다는 이야기를 굳이 제보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본인에 대한 수사가 더 확대될 여지가 있었다”며 “오히려 사안의 실체를 밝히겠다는 의도가 우선한 제보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재판부는 올해 2월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의 뇌물 수수 혐의 공판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정영학 녹취록’에 대해서도 “다소 과장이나 거짓이 있을지언정 허언으로 치부할 순 없어 보인다”며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원장과 정 전 실장, 유 전 직무대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재명의 정치적 성공을 바라는 정치적 동지이자 의형제라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판결문에 적시했습니다.
● 유동규 교통사고로 재판 일정 밀려
김 전 부원장은 선고 당일 법원에 출석하며 “(소감 발표는)선고 나고 하겠다”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결국 법정구속된 그의 소감은 들을 수 없었습니다. 법조계에선 김 전 부원장이 옥중에서 심경변화를 일으켜 진술을 번복한다면 향후 대장동 재판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고 보는 분위깁니다.
다만 김 전 부원장의 변호인은 선고 직후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는데 이렇게 선고한 것에 납득할 수 없다”며 항소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도 “1주일 만에 20억 원 넘는 후원금이 모일 정도로 경선 자금 조달 여력이 넘치는 상황에서 경선 자금 확보를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건 믿기 어렵다. 부정 자금은 1원도 없었다”며 “검찰의 짜깁기 수사와 기소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유 전 직무대리가 이달 5일 오후 8시 반경 경기 의왕시의 한 고속화도로에서 화물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재판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습니다. 유 전 본부장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조만간 재판에 출석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당초 11일로 예정됐던 대장동 민간업자 5인방의 배임 혐의 본류 재판은 이달 18일과 22일로 미뤄졌습니다. 그가 증인으로 나와야 하는 이 대표의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FC 배임·뇌물 혐의 재판 역시 기일이 이달 19일로 늦춰졌습니다.
※혹시 재판부의 정치적 성향을 의심하는 독자들을 위해 재판부의 과거 판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김 전 부원장 사건에서 재판장을 맡은 조병구 부장판사는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시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었습니다. 이 판결은 항소심에서 깨졌고, 대법원에서도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다음은 김 전 부원장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밝힌 ‘양형판단의 전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1995년경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을 선거로 선출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지방자치행정을 민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이를 통해 지역주민의 복지를 증진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지방자치법 제1조 등 참조).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의사결정 및 행정 전반의 권한과 책임은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부여되어 있고, 그 재량의 폭도 넓어 지방자치단체장은 전문성과 리더십 외에도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구비하여야 한다. 더불어 그 재량행사에 있어서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의 의사결정이 적법하고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지방의회에서도 예산심의권, 출석요구권, 감사 및 조사권의 행사 등을 통해 적절한 사전, 사후견제가 행해져야 한다.
이 사건은 지방자치단체의 위법, 부당한 업무추진을 견제하는 책무를 핵심으로 수행해야 하는 지방의회의 의원인 피고인 김용과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사업을 관장하는 성남시 산하 공사의 실세 기획본부장인 유동규가 성남시 대형 부동산개발과 관련하여 피고인 남욱 등 민간업자들과 장기간에 걸쳐 사업공모참여, 인허가 등을 매개로 금품수수 등을 통해 상호 밀접하게 유착되어가는 과정에서 행해진 일련의 부패범죄로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의원의 직무의 공정성 및 청렴성과 그에 대한 사회 일반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한 행위로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
피고인들, 유동규 및 김만배 등 민간업자들의 관여로 인해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할 공공개발에 있어, 이를 반대하는 지방의회 다수당의 이의가 있음에도 비정상적 정치적 개입을 통해 공사가 설립되었고, 이후 공사가 위 민간업자들의 이권개입의 통로가 되었으며, 지역주민과 공공에 돌아갔어야 할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이 민간업자들에게 귀속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피고인 김용과 유동규 등은 민간업자들과의 유착관계를 시장선거일 직전 상대 후보측에 관한 부정적 보도가 이루어지는 데에 이용하는 등 정치적으로도 활용하였고, 민간업자들은 이들과의 끈끈한 관계로 얻은 개발사업의 기회를 통해 취득한 이익과 네트워크 등을 기반으로 수도권에서 실시하는 도시개발사업에 지속적으로 관여하려는 행태까지 보였다. 이러한 민간업자들과 지방자치단체 개발사업 인허가 관련자들 사이의 뿌리깊은 부패의 고리는 지방자치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주민의 이익과 지방행정의 공공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병폐이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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