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한 입만 더” “절대 안돼”…전쟁 부르는 ‘이것’ 대체 뭐길래 [추동훈의 흥부전]

추동훈 기자(chu.donghun@mk.co.kr) 2023. 12. 16. 11:3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흥부전-35][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30] 피에트로 페레로

겨울같지 않은 오락가락 날씨가 이어지는 요즘이지만 연말이 다가옴에 따라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금씩 달궈지고 있습니다. 백화점과 쇼핑몰은 외벽과 실내 곳곳에 트리를 설치하고 빨갛고 파란 불빛과 조명으로 꾸미는 등 방문객들을 위한 꽃단장이 한창입니다.

그리고 여러 제과점들과 카페는 크리스마스 에디션 케이크를 선보이며 산타 할아버지 분장을 한 아빠들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 춥지만 따뜻한 계절, 12월의 겨울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줄 디저트들도 빠질 수 없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디저트, 초콜릿 이야기입니다.

페레로 브랜드
그럼 이쯤에서 시작부터 드리는 퀴즈. 일론 머스크, 이재용, 베르나르 아르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국과, 대한민국, 프랑스에서 가장 돈이 많은 부자라는 점입니다. 세 사람은 각각 테슬라, 삼성, LVMH을 이끄는 세계적인 경영자입니다. 앞의 두사람은 혁신의 최전선인 전기차와, 스마트폰, 반도체 분야의 리더들이라면 아르노 LVMH는 루이뷔통을 비롯한 명품계의 큰손으로 세계 1위 부자에 올라가 있는 인물이죠.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초콜릿 하나로 15년째 이탈리아 부자 순위 1위를 수성하고 있는 초콜릿 제국의 창업자, ‘피에트로 페레로’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피에트로 페레로
페레로 가문은 2008년 이탈리아 부자 순위 1위에 오른 이후 한 번도 1위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지키고 있습니다. 3대에 걸쳐 가족 경영을 이어오며 핵심인 초콜릿 조제 기술은 가족만 알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페레로라는 이름, 어디서 들어봤더라 싶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바로 밸타인 데이와 수능 시즌만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초콜릿의 대명사 ‘페레로 로셰’가 바로 페레로 가문의 대표적인 초콜릿입니다.
누텔라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유명한 제품이 있는데요. 바로 지금의 페레로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헤이즐넛 초코 스프레드 ‘누텔라’가 바로 페레로의 제품입니다. 그리고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이 바로 페레로 가문의 제품이었다는 사실도 이번 흥부전을 준비하며 처음 알게 됐는데요. 바로 편의점 초콜릿계의 숨은 고수 ‘킨더’가 페레로 사의 작품이었습니다.

사심이 들어가며 서두가 길었는데요. 이번 주 브랜드로 남은 창업자들, 그 주인공 피에트로 페레로의 성공 스토리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피에트로 페레로는 1898년 이탈리아 파리글리아노에서 출생했습니다. 페레로 가문 사람들은 그들 특유의 열심히 일하는 근성으로도 잘 알려진 가문이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욕심과 그를 뒤받쳐준 열정은 그들 피에 흐르는 DNA입니다. 사업가의 꿈을 키우던 피에트로는 아내 피에라와 1924년 결혼한 뒤 1925년 외동아들 미켈레 페레로를 낳습니다.

이들은 피에몬테주에 위치한 알바라는 도시를 시작으로 곳곳을 떠돌며 이런 저런 사업을 벌였습니다. 토리노에 열었던 대형 제과점 역시 그러한 일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유통기간이 짧은 밀가루 제품과 빵의 특성상 재고 소진 문제가 계속 발생했고 제과점은 기대와 달리 실패로 끝났습니다. 결국 부부는 다시 알바로 돌아와 작은 제과점을 다시 엽니다.

초창기 페레로의 제과점
피에트로는 이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오랜기간 보관할 수 있는 초콜릿 과자를 만드는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2차 세계대전으로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이탈리아의 상황도 그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됐습니다. 값비싼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카카오 수입이 어렵다 보니 초콜릿을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피아몬테주에서 주로 나는 헤이즐넛들은 수출도 되지 못한 채 창고에만 가득 쌓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남아도는 헤이즐넛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와 레시피를 만들어가던 중, 피에트로 역시 자신이 갖고 있던 실험실에서 수많은 시도를 해나갑니다.

피에트로는 헤이즐넛과 코코아버터, 식물성 기름 등을 배합하는 연구개발을 거듭한 끝에 페레로만의 특별한 초콜릿바를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이는 잔두야라고 불리는데, 헤이즐넛이 많이 나는 피에몬테 지방의 전통 초콜릿으로 헤이즐넛을 주 원료로 합니다.

고체 형태의 초기 페레로 잔두야
그리고 이러한 제품의 가장 큰 경쟁력은 바로 가격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초콜릿은 원래도 비싼 기호식품인 데다 공급란 탓에 구하기도 힘든 고급 사치품같았습니다. 피에트로는 가격이 싸면서도 달콤한 초콜릿을 만든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것이란 확신 아래 양이 많으면서도 가격이 싼 초코 제품을 만드는데 몰두한 것입니다. 또한 대도시 토리노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러 출퇴근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던 그는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값싸고 맛있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구상했습니다. 피에트로가 만든 잔두야는 싼 가격을 무기삼아 입소문을 타고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미켈레 페레로
그는 1946년 이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고 본격적인 대량 생산에 돌입합니다. 그 해 2월 300kg 생산에 그쳤던 제품 생산량은 연말에 무려 100만kg까지 늘어나며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습니다. 50명에 불과하던 직원은 이듬해 1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페레로는 1946년 5월, 아내와 함께 ‘페레로’라는 회사를 설립하며 공식적인 페레로 사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는 동생 지오반니와 함께 판매조직을 확대했고 유통 네트워크를 구축했습니다. 또한 당시 20살이던 아들 미켈레 역시 아버지와 함께 가업에 뛰어듭니다.

창업후 본격적인 사업확장에 나서던 1949년 3월 2일,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합니다. 피에몬테 거리를 오가며 영업활동을 벌이던 피에트로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입니다. 가족은 슬픔에 잠겼지만 그렇다고 이제 막 번성하기 시작한 사업을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를 떠나보낸 뒤 그의 아내와 남동생인 지오반니, 그리고 아들 미켈레는 회사 경영권을 인수해 사업을 이어 나갑니다. 사실 피에트로는 페레로의 영광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페레로의 시작이자 끝인 누텔라는 피에트로 사후, 2세 경영자 미켈레가 만들어낸 상품인데요. 미켈레 페레로는 1951년 헤이즐넛 초콜릿을 잼형태로 만들어 ‘슈퍼크레마’라는 제품으로 선보였습니다.

수퍼크레마
사실 이 제품이 나오는데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에트로는 앞서 언급한 대로 노동자들이 한끼 식사거리로 먹을 수 있도록 빵 사이에 헤이즐넛 초콜릿을 발라서 만든 샌드위치를 개발했습니다. 이를 식당 등에 납품하거나 직접 팔면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는데요. ‘악마의 잼’이라 불리는 헤이즐넛 초콜릿이 너무 맛있는 바람에 빵은 버리고 잔두야만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아예 헤이즐넛 초콜릿을 녹여 빵이나 음식 등에 발라 먹을 수 있는 스프레드 상품을 만들어 파는 게 낫겠단 아이디어가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출시된 슈퍼크레마는 말 그대로 대박이 났습니다. 해당 제품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입소문이 났고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 셀러로 각 가정마다 비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슈퍼크레마는 1964년 헤이즐넛의 ‘넛(Nut)’과 여자 이름의 대명사로 쓰이는 ‘엘레(Ella)’를 합쳐 누텔라로 이름을 바꿉니다. 그리고 6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전 세계 식탁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페레로가의 2세 경영자 미켈레는 누텔라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1968년 킨더, 1982년 페레로 로셰 등을 선보이고 흥행시키며 지금의 초콜릿 왕국을 구축했습니다. 전 세계 생산되는 헤이즐넛의 25%가 바로 이 페레로 가문의 초콜릿에 쓰이고 있다고 하니,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입니다.

미켈레 는 2015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피에트로 페레로 주니어와 지오빈니 페레로 형제가 3세 경영을 이어가게 됩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창업자의 이름을 딴 손자 피에트로 페레로 주니어는 201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전거를 타다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할아버지보다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현재 페레로 가문 그의 동생 지오반니가 이끌고 있습니다.

페레로 로셰
페레로의 초콜릿 조합기술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가보와 같습니다. 그렇다 보니 페레로 가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현실판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또한 70년간 가족 경영 원칙을 이어오며 이러한 페레로 가의 전통성을 유지해온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랬던 페레로는 2017년 라포 시빌로티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하며 기존의 전통을 깨며 변화를 주었습니다.
지오반니 페레로
또한 2019년엔 미국을 대표하는 켈로그의 제과 부문을 인수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꾀하고 있습니다. 창업자에서 아들로, 아들로부터 손자로 이어진 페레로의 역사.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는 매년 돌아올 것이고 페레로의 초콜릿은 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다른 이에게로 전달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기업 페레로였습니다.
‘흥’미로운 ‘부’-랜드 ‘전’(傳). 흥부전은 전 세계 유명 기업들과 브랜드의 흥망성쇠와 뒷야이기를 다뤄보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더욱 알차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