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달러의 사나이’ 오타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선수가 되다
(시사저널=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서 역사적인 계약이 탄생했다. 12월10일(한국시간) 오타니 쇼헤이(29)는 LA 에인절스를 떠나 LA 다저스로 간다고 선언했다. 다저스와 오타니의 계약금액은 10년 7억 달러(약 9240억원)로,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2001년 미국의 사업가인 존 헨리는 명문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를 홈구장 펜웨이파크, 전담 방송국을 합쳐 7억 달러에 산 바 있다. 2012년 마크 월터는 다저스를 20억 달러에 샀다. 그 3분의 1에 해당되는 돈을 오타니 한 명에게 주기로 한 것이다.
이 계약을 통해 오타니는 2017년 리오넬 메시가 스페인의 FC바로셀로나와 맺었던 6억7400만 달러를 넘어서는 세계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대 규모 계약을 달성했다. 야구(MLB), 미식축구(NFL), 농구(NBA), 아이스하키(NHL) 등 북미 4대 스포츠 최고기록이었던 NFL 패트릭 마홈스(캔자스시티)의 4억5000만 달러와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이었던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의 4억2650만 달러 기록도 경신했다.
5년 이상 다년계약 선수를 기준으로 가장 비싼 타자는 연간 4000만 달러를 받는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 가장 비싼 투수는 연간 3700만 달러를 받는 제이콥 디그롬(텍사스)이었다. 그런데 오타니는 혼자서 둘을 합친 것과 비슷한 수준의 연봉을 받게 됐다.
'다저스, 6년 만에 투자금 7억 달러 회수' 예상 나와
다저스가 이렇게 많은 돈을 주면서까지 오타니를 영입한 첫 번째 이유는 오타니가 그만큼의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야구 통계 사이트인 팬그래프는 지난 3년간 오타니가 타자로서 1억2410만 달러, 투수로서 8740만 달러에 해당되는 활약을 했다고 계산했다. 연평균 7050만 달러는 다저스가 오타니에게 주기로 한 돈과 일치한다. 한편 오타니는 다저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계약 기간 10년 동안 2000만 달러만 받고 나머지 6억8000만 달러를 계약이 끝나고 10년 동안 받기로 해 또 한 번 충격을 안겨줬다.
두 번째는 오타니가 큰돈을 벌어다 주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9명의 타자와 5명의 투수가 투입되는 야구는 다른 종목과 비교하면 선수 한 명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 미식축구의 쿼터백은 전 경기에 출전하지만, 뉴욕 양키스의 에이스인 게릿 콜은 팀 경기의 20%에 출전했을 뿐이다. 르브론 제임스(LA 레이커스)는 팀 플레이 시간의 75%를 뛰지만 지난해 오타니는 팀 타석의 10%를 소화했다.
그렇다 보니 야구는 최고의 스타라도 다른 종목 대비 주목도가 떨어지며 광고 수입이 많지 않다. 지난해 제임스의 연봉 외 수입이 7500만 달러, 미식축구 톰 브래디가 4400만 달러였던 반면, 야구는 미국 선수 중 1위를 한 브라이스 하퍼(필라델피아)가 650만 달러였다(포브스 발표). 하지만 오타니는 본국에서의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지난해 3500만 달러, 올해는 45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에서 오타니의 인기는 어느 수준일까. 일본의 12세부터 21세 사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조사한 사사카와 스포츠재단은 얼마 전 오타니가 2002년 조사 시작 이래 역대 최고 지지율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오타니의 지지율은 22.3%로 2위인 축구의 미토마 가오루(영국 브라이튼)의 3.1%와 비교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오타니는 너무 많은 광고 의뢰가 들어와 애를 먹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오타니의 전 소속팀인 에인절스는 비인기 팀인데도 늘 일본 관중으로 가득 찼고 오타니 관련 상품이 엄청나게 팔려 나갔다. 이에 오타니로 인한 추가 수입이 연간 2000만 달러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에인절스가 이럴진대 최고의 인기 팀인 다저스는 말할 것도 없다. 보수적으로 3000만 달러만 잡아도 오타니의 연봉은 7000만 달러가 아니라 4000만 달러가 된다.
오타니가 역사적인 세 시즌을 만들어내는 동안, 에인절스는 심각한 성적 부진에도 구단 가치에서 42%의 성장을 기록했다. 구단에 막대한 추가 수입을 안겨주는 데다 구단의 가치까지 끌어올리는 존재이다 보니, 다저스가 오타니에게 쓴 7억 달러를 6년 안에 회수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에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유례없는 공연 매출로 지역경제를 살리고 있는 것처럼, 선수를 넘어 브랜드가 된 오타니는 '야구계의 테일러 스위프트'라 할 수 있다.
오타니의 엄청난 인기는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오타니는 스포츠계의 아카데미상인 ESPY 시상식에서 NBA 스테판 커리(골든스테이트), NFL 애런 로저스(그린베이) 등 최고의 미국 스타들을 제치고 올해의 남자선수로 선정됐다. 야구선수가 이 상을 차지한 건 1999년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이후 23년 만이었다.
스타 선수들이 출전을 꺼린 지난 3월의 WBC에서 오타니가 트라웃을 삼진으로 잡고 일본의 우승을 이끈 장면을 보면서 큰 울림이 있었던 한국 팬들 역시 오타니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야구 세계의 오타니에게는 이제 국적이 없다.
세계 야구의 르네상스를 이끌 록스타
2016년 일본 퍼시픽리그 MVP가 되고 소속팀 닛폰햄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오타니는 2017년 WBC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 진출을 1년 미뤘다. 하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입은 발목 부상이 악화돼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 1년 사이 미국 진출과 관련해 만 25세 이하 선수는 아마추어 선수와 동일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불리한 조항이 생겼다.
오타니는 2년 후 진출하면 다나카 마사히로가 양키스와 맺은 1억5500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더 기다리지 않고 진출함으로써 계약금 230만 달러와 첫 3년 동안 150만 달러를 받는 데 그쳤다. 그리고 그 3년의 시행착오를 통해 투타 겸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2021년 오타니는 베이브 루스도 해내지 못한 100안타 100타점 100득점 100이닝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2022년에는 규정 타석과 규정 이닝을 동시에 해낸 최초의 선수가 됐다. 올해 10승을 따내고 홈런왕이 된 오타니는 2021년에 이어 두 번째 만장일치 MVP를 차지했다. 만장일치 MVP를 두 번 수상한 선수는 오타니가 최초다.
최고의 스타였던 데릭 지터는 최고의 인기 팀인 양키스에서 5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반면 지터의 뒤를 이은 트라웃은 에인절스라는 비인기 팀 소속으로 12년 동안 가을야구 무대를 한 번 밟았을 뿐이다. 오타니의 다저스 입단으로, 메이저리그는 최고의 스타가 최고의 인기 팀에서 뛰면서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했던 지터의 시대로 돌아갔다.
미국에서 노인들이 보는 스포츠라는 오명을 안았던 야구는 경기 시간을 줄이는 노력을 통해 2년 사이에 티켓 구입자의 평균 연령을 만 49세에서 43세로 낮췄다. 그리고 농구의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판 커리에 대적할 만한 '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오타니'가 등장했다.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세계 야구의 르네상스를 이끌 록스타가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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