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86세대 그들 방식의 ‘민주와 정의’ 지적
-교회서 만난 운동권 출신 여대생 삶 통해
-80년대 운동권의 오만·지적 허영 드러내
5·18이 진행되던 그 기간에 전국은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었다. 휴교령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다. 하숙촌에 지내던 학생들은 대부분 고향으로 내려갔다. 나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지냈다. 정국이 어찌 될지 정보를 수집하려고 노력했지만 방송에서나 신문에서나 그 어느 곳에서도 자세한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혹시 그곳에 가면 소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집에서 멀지 않은 용두산공원 인근에 있는 미국문화원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미국에서 보내온 최신 신문 잡지 서적 등이 있었다. 나는 주로 ‘TIME’이나 ‘Newsweek’ 등의 미국 잡지를 통해 뉴스를 접하려 했다. 당시 잡지들에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기사나 단어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매직펜으로 까맣게 칠해졌거나 아예 페이지가 찢어져 진열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문화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딱히 갈 곳이 없는 나는 그해 여름 평일에 거의 매일 미문화원을 찾았다. 이렇게 익숙해진 이곳은 영어를 전공하던 나에게는 방학이면 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그후 1982년 3월 서울로 올라와 새 학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고향 부산으로부터 충격적인 뉴스를 들었다. 미문화원에 방화 사건이 일어나 그곳에서 책을 보던 동아대학교 학생이 사망하고 여러 명의 학생이 중경상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매일 다녔던 그 미문화원에서.
얼마 후 방화 사건의 범인들이 자수하거나 체포됐다. 그들은 재판에서, 어떤 이는 사형과 무기형을 선고받고 어떤 이는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이후 감형돼 석방되었다. 이것이 80년대 반미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부미방 사건)’이었다. 86세대의 시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동년배의 방화범들 또 그들의 배후 모두 긴 재판 끝에 감옥에서 수 년을 보낸 후 가석방 등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후 세월이 흘러 내가 50대에 접어들었을 때 잊고 있던 부미방 사건이 다시 뉴스를 탔다. 사건의 주범 김은숙이 암으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와 연계된 사람들, 그와 함께했던 사람들, 그를 도왔던 사람들의 이름이 소환되었다. 문부식 김현장 김광일 노무현 리영희 최기식 함세웅 고은 유시춘 임수경 등이 오르내렸다. 그녀에게 따라다녔던 단어들, 야학, 공부방, 봉제공장, 이혼, 암 투병. 그리고 김은숙 주변인들만 알 수 있는,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들었을 고통들.
또 하나 떠오르는 이름 장덕술. 동아대 경영학과 3학년. 그는 방화 사건 때 미문화원 도서관에 가서 유학 시험준비하다 연기에 질식사했다.
시인 고은은 김은숙을 ‘숨은 꽃’이라 불렀다. 숨은 꽃들이 더러 있었다. 이 소설, ‘86학번 승연이’의 얘기도 또 다른 숨은 꽃의 이야기이다. 이 책의 작가 박선경이 동네 교회에서 알고 지냈던 운동권 여대생에 관한 내용이다. 독재 타도와 민주화에 헌신했던 그 언니는 ‘운동권 출신’이라는 빛나는 프리미엄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지 못한 채 파국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민주와 해방의 명분하에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이용당한 그들의 80년대 방식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아직도 그들의 삶 속에 못다 푼 숙제로 남았다. 이 소설은 80년대를 보낸 운동권 학생들의 패기 넘치는 오만과 지적 허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것이 위선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을 기다린 것은 모멸감과 수치심이었다. 그들의 삶에 남은 민주라는 생채기는 무엇이었을까? 소설 ‘86학번 승연이’에서 확인해 보자. 철저하게 소모품으로 이용당한,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민주화에 헌신했던 ‘그들의 민주’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86학번 승연이’에 나타난 또 다른 주인공 윤희숙과 김은숙이 ‘숨은 꽃’이라면 공부하다 느닷없이 죽어간 장덕술은 무엇인가? 숨은 꽃은 이렇게 기억되고 있는데 장덕술은 누가 기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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