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몰린 아베 파벌…‘저승사자’ 도쿄 특수부, 기시다파도 겨냥
기시다, ‘파벌 탈퇴’ 선언하며 비자금 의혹 정국 돌파에 안간힘
(시사저널=박대원 일본 통신원)
자민당의 비자금 의혹이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망 이후에도 '아베파'로 불리며 자민당 최대 파벌로서의 명맥을 유지해 오던 세이와정책연구회 소속 의원들이 정치자금규정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되었기 때문이다. 록히드 사건(1976), 리크루트 사건(1988) 등 대형 부정축재 관련 수사를 맡아왔던 도쿄지검 특수부는 일본의 임시국회가 폐회하는 12월13일 오후부터 자민당의 각 파벌 및 의원, 회계담당자 등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시다 '지지율 추락'에 비상
일본의 정치자금규정법은 정당이나 후원회 등의 정치단체가 5만 엔(약 4만5000원) 이상의 기부를 받는 경우 혹은 20만 엔(약 18만원) 이상의 정치자금 파티권을 구입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는 경우, 관련 내용을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이하 수지보고서)에 기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민당의 정치자금 파티는 의원 개인이나 파벌 단위로 개최되는 형태가 일반적이며, 파티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개인 및 단체가 장당 2만 엔에 해당하는 파티권을 구입해야 한다. 파티는 호텔에서 개최되는 경우가 많으며 참석자에게는 음료나 간단한 식사가 제공된다. 일본 정계에서 파티는 합법적으로 정치후원금을 모금하는 수단 중 하나다.
과거 아베파 소속 의원이었던 도요타 마유코에 의하면 파벌 단위의 파티에서는 지명도 혹은 당선 횟수에 따라 의원들에게 파티권 판매 할당량이 의무적으로 부과된다. 지명도가 높은 유력 정치인이라면 큰 어려움 없이 할당량 이상의 파티권을 판매할 수 있지만, 초선 의원 등 신인들은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자비로 파티권을 구매해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아베파 소속 의원들의 비자금 논란은 작년 11월 고베대학의 가미와키 히로시 교수가 자민당 각 파벌의 회장, 회계담당자 등을 부정축재 혐의로 형사 고발하면서 촉발됐다. 가미와키 교수는 1년 만에 아베파 소속 의원을 추가 고소했고, 이를 일본의 각종 매체가 보도함으로써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됐다.
가미와키 교수는 자민당의 각 파벌이 개최한 정치자금 파티에서 복수의 의원이 개인 혹은 단체들에 20만 엔 이하의 파티권을 구입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수지보고서에 기록하지 않고 파벌의 정치자금을 모은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 파티권 판매 할당량을 초과한 금액에 대해 각 의원이 파벌 측으로부터 이른바 '캐시백'을 받은 후 이를 수지보고서에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원 개인의 비자금을 축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12월13일)에 따르면, 세이와정책연구회(아베파) 측은 실제로 파티 수입의 일부를 소속 의원들에게 캐시백 형태로 제공하고 있었으며 해당 의원의 이름과 캐시백 액수를 기재한 기록도 보관하고 있어 도쿄지검 특수부가 이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다카기 쓰요시 국회대책위원장 등 아베파 각료의원들이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기록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정축재한 금액이 5억 엔(약 4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미와키 교수는 "(파벌의) 사무담당자들은 정치인으로부터 (캐시백 금액 등을) 기재하지 않도록 강요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책임소재는 정치인에게 있으며 사무담당자들만 기소당한다면 국민들의 분노가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민당 정치인의 비자금 논란이 가열되는 가운데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2월7일 총리 임기 중에 소속 파벌인 고치카이를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민당 각 파벌의 부정축재 의혹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내각 지지율이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가운데, 자민당 내에서는 비자금 논란에 대처하기 위해 아베파 출신 정무 3역(각료, 부대신, 정무관)을 전원 교체하는 방안이 부상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마쓰노 관방장관을 비롯한 아베파 출신 각료 4명과 부대신 5명을 무파벌 출신 혹은 아베파 이외의 인물로 교체한다는 의향도 밝히고 있다. 단 아베파 출신 정무관에 대해서는 사임 여부를 개개인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이다. 자민당 관계자는 "기시다 총리가 '(정무 3역을) 전원 교체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어렵다. (부정축재) 의혹 관련도를 조사하고, 검찰에 입건될 가능성이 높은 인물에 대해서는 교체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민당 전체 아닌 아베파 문제"로 프레이밍
자민당 내 기반이 약한 기시다 총리로서는 '꼬리 자르기' 식으로 아베파를 손절할 경우 거센 반발에 직면해 안정적인 정권 운영이 어려워진다는 문제와 내각 지지율 폭락 상황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권의 존속 자체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기시다 총리가 고치카이 탈퇴 의사까지 밝히며 아베파 출신 각료와 부대신 등 9명의 인사 교체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또 비자금 의혹의 중심에 있는 마쓰노 관방장관(아베파)이 같은 파벌 소속 부대신에게 "자의적으로 사표를 내달라"고 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아베파 자체적으로 쇄신을 단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국민의 비판과 정치 불신이 심화되는 가운데 아베파가 해당 문제를 일부 소속 의원의 실수 혹은 부정으로 축소함으로써 자민당 장기집권에 기여하는 대국적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일본의 각종 매체에서는 기시다 총리가 소속된 고치카이도 아베파와 마찬가지로 각 의원에게 정치자금 파티권 할당량을 부여하고 할당량 초과분에 대한 캐시백을 제공하고 있었으나, 파벌 측과 의원 측 모두 해당 내역을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누락 없이 기록하고 있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비자금 의혹이 자민당 전체의 문제가 아닌 아베파 일부의 문제로 축소돼 '프레이밍'되고 있는 것이다.
비자금 논란이 주목받는 가운데, 야당 입헌민주당은 12월12일 마쓰노 관방장관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해당 결의안이 부결되자 "기시다 정권의 정당성은 상실되었으며, 이미 기능 정지 상태에 있다"고 비판하며 13일 내각 불신임 결의안도 제출했다. 그러나 관방장관 불신임 결의안이 부결된 상황에서 내각 불신임 결의안 통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비자금 의혹이 정치인에 대한 형사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 부부장을 역임한 후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와카사 마사루는 "(수지보고서에) 정치인은 서명하지 않는다. 회계담당자가 서명할 뿐"이라고 밝히며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지 못한 채 파벌의 회계담당자만 처벌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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