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 [곽윤섭의 사진 뒤집어보기]
뉴스룸엔 하루에도 수천장의 사진이 통신을 통해 들어온다. 중요한 국가의 선거가 있거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등이 시작됐을 땐 1만장을 훌쩍 넘겼다. 올림픽, 월드컵 등 세계적인 스포츠 제전이 열리거나 영화제, 패션쇼 같은 문화행사가 열릴 때도 사진이 쏟아진다. (기술적으로) 좋은 사진이 있고 한눈에도 급하게 찍었거나 전문사진기자나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가 찍은 것으로 보이는 허술한 사진도 있다. 보도사진계의 원칙이 있다. 아예 없는 것보다는 대충 찍은 사진이라도 있는 게 백번 낫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찍은 사진이 있다면 이야기가 180도 달라진다. AP, AFP, 로이터, EPA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굵직한 통신사의 사진들은 기본적인 품질이 보증되어 있다. 그들은 1. 현장에 가까이 가서, 2. 적확한 앵글로, 3. 불필요한 요소가 배제된 군더더기 없는 사진을 찍어서 세계로 날려 보낸다. 위 세 가지 외에도 좋은 보도사진의 요건이 몇가지 더 있지만 단숨에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오늘은 좋은 보도사진의 요건 중에서도 본질적인 면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로이터가 발표한 2023년의 사진 중에서 골랐다.
앞서 언급한 장기적인 두 전쟁이나 가뭄, 홍수, 태풍 등 세계 곳곳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 않고 일어나는 기후변화로 인한 대규모 재해상황 등은 압도적인 규모의 사진이 먼저 시선을 끈다. 폭격을 맞은 듯한 게 아니라 실제 폭격을 맞아 회색빛 콘크리트 잔해밖에 남지 않는 가자지구를 보면 911 당시의 월드트레이드센터 잔해가 떠오른다. 허리케인 오티스가 강타한 멕시코 해변휴양지 아카풀코의 항공사진을 보면 떠 있어야 할 요트들이 바다에 머리를 박고 있거나 땅으로 올라와 있고 땅 위의 자동차는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재해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폭격을 맞은 것 같다”
규모가 큰 재해 사진이 항상 더 인상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 원인 제공을 인간이 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지구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뒤로 겪은 지구적 재난 중에서 중세의 페스트,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스페인이 발원지가 아니다. 현재 미국 캔자스로 보는 것이 가장 유력하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았던 코로나19 같은 전염병도 있다.
100% 인간이 자초한 대규모 재난상황도 있다. 1929년에 미국을 중심으로 발생해 전세계 경제를 뒤흔든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서구 자본주의 체계를 뒤흔든 범세계적 경제후퇴 현상으로 이보다 큰 경제 부침은 유래를 찾을 수 없다. 최소 10년 동안 미국에서 기업은 파산하고 만여명이 넘는 서민들이 굶어 죽기까지 했다. 실업자들이 늘어나서 음식배급을 받는 줄도 길어졌다.
그런 큰 규모의 사진들보다 더 강력한 한 장이 역사에 전해지고 있다. 도로시아 랭의 계절이주노동자 어머니(The Migrant Mother)다. 대공황 때 미국 정부는 뉴딜정책의 하나로 농업안정국(FSA)을 만들어 미국 농촌의 빈곤을 퇴치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 기관에선 사진가 집단을 조직해 가난한 농촌의 환경을 17만장의 네거티브로 남겼다. 워커 에반스, 칼 마이던스, 고든 파크스도 있었는데 도로시아 랭도 있었다. 그는 1936년 캘리포니아 니포모에서 이 사진을 찍었다. 당시 이 가족은 막 자동차의 타이어를 팔아서 끼니를 연명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연들이 있다. 어쨌든 이 사진에 찍혀있는 어머니와 아이들의 뜻과 상관없이 미국 대공황시절의 아이콘이 됐다.
이 사진 한 장에는 대공황의 원인도 보이지 않고 급식을 기다리는 긴 줄 같은 규모도 보이지 않는다. 무너져가는 집도 보이지 않고 (끼니와 바꾼) 타이어가 없는 자동차도 보이지 않는다. 이 표정 안에 전 미국을 10년 이상 휩쓸었던 고난의 순간이 모두 들어있지 않다. 다만 앞날과 아이들을 걱정하는 한 어머니의 표정이 있을 뿐이다.
끝없이 늘어선 인플루엔자 환자들의 병상에선 특정인의 얼굴이 부각되지 않는다. 1929년 검은 목요일 이후 월스트리트에 몰려든 사람들에도 특정인의 얼굴은 없다. 캘리포니아 니포모의 이주노동자 어머니는 한 개인의 표정만 있다. 개인의 표정에서 개인적 위험지각이 더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로이터의 전문사진기자들이라면 도로시아 랭을 공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2023년 로이터가 선정한 올해의 사진 중에서도 유난히 재난에 처한 개별적 인간들의 모습이 우리에게 큰 울림과 경각심을 던진다.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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