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반문 "내가 아직도 서민음식으로 보여?" [질문+]
부산 깡통시장 찾은 윤 대통령
대기업 총수와 떡볶이 나눠 먹어
떡볶이 먹방, 불편한 이들 숱해
서민음식 떡볶이 가격마저 껑충
떡볶이+순대 가격 1만원 육박
저렴한 편의점 음식 찾는 청년층
원재료 가격 상승에 상인도 울상
2년 동안 분식점 1700곳 문 닫아
고위층 서민 코스프레 씁쓸한 까닭
# 때만 되면 시장을 찾는다. 어김없이 떡볶이를 먹고, 어묵 국물로 쇼잉의 종지부를 찍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부산 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먹방'을 시연했다.
# 그런데, 높으신 나리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떡볶이는 이제 '서민음식'이 아니다. 1인분 값이 평균 4000~5000원에 이르고, 순대라도 곁들이면 1만원에 육박한다. 과연 그들은 '떡볶이의 애환'을 알고 먹방을 펼쳤던 걸까.
그들이 택한 음식은 역시나 떡볶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깡통시장을 찾았다. 앞서 오전 부산에서 열린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를 마친 후였다.
윤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과 함께 시장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떡이 아주 쫄깃쫄깃한 게 (맛있다)"라면서 빈대떡·비빔당면 등도 나눠 먹었다.
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대동하고 '떡볶이 먹방'을 펼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2030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실망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서민음식인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민심을 보듬겠다는 거다. 실제로 시장을 둘러본 윤 대통령은 상인들을 향해 "엑스포 전시장이 들어올 자리에 국내외 기업들을 더 많이 유치해 부산 청년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떡볶이는 정치인들이 서민행보를 할 때마다 찾는 단골메뉴다. 정치인치고 시장 떡볶이와 어묵을 들고 사진을 찍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런데 서민음식의 대표라는 떡볶이는 더 이상 서민음식이 아니다. 떡볶이로 간단하게 한끼를 때우기도 부담스러워졌다. 과연 이들은 떡볶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고 먹었을까.
1000원짜리 두세장이면 떡볶이 1인분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최근 수년간 물가가 치솟으면서 떡볶이 가격도 껑충 뛰었다. 떡볶이 1인분 가격은 4000~5000원에 이른다. 이렇게 비싸진 떡볶이 가격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물가지수는 2020년 12월(100.54) 이후 36개월 연속 상승(2023년 11월 118.96)했다. 떡볶이 외식물가도 3년 새 23.8%(2020년 11월 100.59→2023년 11월 124.54) 올랐다. 떡볶이 한 접시에 따끈한 어묵 국물 한입조차 부담스러운 서민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직장인 김선경(34)씨는 "퇴근길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려고 분식점에 들어갔는데, 떡볶이 1인분과 순대 1인분을 주문하니 9500원이 나오더라"면서 "분식조차 1만원대니 갈수록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머니 가벼운 청년층이 체감하는 물가는 더 가혹하다.
대학생 김혜나(22)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동네 분식점에서 1인분에 3000원에 팔던 떡볶이가 4000원으로 오르더니 지금은 4500원이 됐다"면서 "그마저 부담스러울 땐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먹는 사람도 부담이지만 파는 사람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영등포구에서 11년째 분식점을 운영해온 김형규(55)씨는 올해 초 떡볶이 1인분 가격을 3500원에서 45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혹시나 오른 가격에 손님이 끊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 그의 속마음은 어떨까. "원재료부터 전기요금, 가스요금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어서 결국 가격을 인상했다. 떡볶이 가격은 20~30% 인상했는데 원재룟값은 50% 가까이 오른 것도 숱하니 견딜 재간이 없다. 손님들도 오른 물가에 지갑을 열지를 않고…. 분식점을 해온 11년 중 요즘이 가장 어렵다."
김씨가 그저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건 아니다. 분식점에서 주로 쓰는 가공식품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건 사실이다. 2020년 대비 2023년 주요 가공식품 물가 추이를 보자. 식용유는 69.1%(101.65→171.98), 설탕 44.2%(100.20→144.48), 물엿 38.7%(100.73→139.74), 고추장 31.6%(97.68→128.53), 어묵 30.5%(101.48→132.50), 떡 17.5%(100.26 →117.90)나 올랐다.
어디 그뿐만이랴. 도시가스요금 43.9% (94.59→136.18), 전기요금 38.6%(102.74→142.44), 상수도요금 8.6%(101.04→109.75) 등 각종 공과금도 줄줄이 인상됐다. 고민 끝에 가격을 올리고도 남는 게 없어 폐업을 고민하는 상인들이 숱한 이유다. 김씨는 "떡볶이를 즐겨 먹는 게 아이들인데, 학생 수도 줄어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 "10년 넘게 해왔지만 언제까지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전국 분식점 수는 2021년 5만5583개(국세청·이하 9월 기준)에서 올해 5만3890개로 줄었다. 2년 새 1700여개 분식점이 문을 닫은 셈이다. 장기화한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하는 건 떡볶이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죠스떡볶이' '신참떡볶이' '감탄떡볶이' 등의 점포 수는 2년 새(2020년 대비 2022년) 17.2%, 21.4%, 21.8% 감소했다. 더 심각한 건 이같은 침체기가 금세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떡볶이·김밥·라면처럼 청년이나 서민층이 즐겨 먹는 음식의 가격마저 껑충 뛰었다"면서 "가격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더 저렴한 음식을 찾으면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인들의 '떡볶이 먹방'은 계속되고 있다. 보여주기식 서민행보에 신물이 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이 부산 깡통시장을 찾은 지 이틀 후인 8일 분식점 상인들이 국회에 모였다. 진보당은 이들과 함께 '떡볶이·어묵 먹방 서민 코스프레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석한 떡볶이·어묵 판매 상인들의 호소를 들어보자.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떡볶이와 어묵을 먹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정운영입니다… 철 지난 시장 먹방쇼 그만두고 대한민국 영세업자들이 얼마나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 살펴보길 촉구하는 바입니다." 과연 이들의 외침은 높으신 양반들의 귀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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