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반문 "내가 아직도 서민음식으로 보여?" [질문+]

이지원 기자 2023. 12. 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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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부산 깡통시장 찾은 윤 대통령
대기업 총수와 떡볶이 나눠 먹어
떡볶이 먹방, 불편한 이들 숱해
서민음식 떡볶이 가격마저 껑충
떡볶이+순대 가격 1만원 육박
저렴한 편의점 음식 찾는 청년층
원재료 가격 상승에 상인도 울상
2년 동안 분식점 1700곳 문 닫아
고위층 서민 코스프레 씁쓸한 까닭

# 때만 되면 시장을 찾는다. 어김없이 떡볶이를 먹고, 어묵 국물로 쇼잉의 종지부를 찍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부산 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먹방'을 시연했다.

# 그런데, 높으신 나리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떡볶이는 이제 '서민음식'이 아니다. 1인분 값이 평균 4000~5000원에 이르고, 순대라도 곁들이면 1만원에 육박한다. 과연 그들은 '떡볶이의 애환'을 알고 먹방을 펼쳤던 걸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나눠 먹었다.[사진=연합뉴스]

그들이 택한 음식은 역시나 떡볶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대기업 총수들과 함께 부산 깡통시장을 찾았다. 앞서 오전 부산에서 열린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간담회를 마친 후였다.

윤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등과 함께 시장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떡이 아주 쫄깃쫄깃한 게 (맛있다)"라면서 빈대떡·비빔당면 등도 나눠 먹었다.

윤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대동하고 '떡볶이 먹방'을 펼친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2030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로 실망한 부산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서민음식인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민심을 보듬겠다는 거다. 실제로 시장을 둘러본 윤 대통령은 상인들을 향해 "엑스포 전시장이 들어올 자리에 국내외 기업들을 더 많이 유치해 부산 청년들에게 기회와 희망을 만들겠다"고 외쳤다.

떡볶이는 정치인들이 서민행보를 할 때마다 찾는 단골메뉴다. 정치인치고 시장 떡볶이와 어묵을 들고 사진을 찍지 않은 이는 없다. 그런데 서민음식의 대표라는 떡볶이는 더 이상 서민음식이 아니다. 떡볶이로 간단하게 한끼를 때우기도 부담스러워졌다. 과연 이들은 떡볶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고 먹었을까.

1000원짜리 두세장이면 떡볶이 1인분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최근 수년간 물가가 치솟으면서 떡볶이 가격도 껑충 뛰었다. 떡볶이 1인분 가격은 4000~5000원에 이른다. 이렇게 비싸진 떡볶이 가격은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물가지수는 2020년 12월(100.54) 이후 36개월 연속 상승(2023년 11월 118.96)했다. 떡볶이 외식물가도 3년 새 23.8%(2020년 11월 100.59→2023년 11월 124.54) 올랐다. 떡볶이 한 접시에 따끈한 어묵 국물 한입조차 부담스러운 서민들이 많아졌다는 거다.

직장인 김선경(34)씨는 "퇴근길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려고 분식점에 들어갔는데, 떡볶이 1인분과 순대 1인분을 주문하니 9500원이 나오더라"면서 "분식조차 1만원대니 갈수록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머니 가벼운 청년층이 체감하는 물가는 더 가혹하다.

대학생 김혜나(22)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동네 분식점에서 1인분에 3000원에 팔던 떡볶이가 4000원으로 오르더니 지금은 4500원이 됐다"면서 "그마저 부담스러울 땐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먹는 사람도 부담이지만 파는 사람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영등포구에서 11년째 분식점을 운영해온 김형규(55)씨는 올해 초 떡볶이 1인분 가격을 3500원에서 45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혹시나 오른 가격에 손님이 끊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 그의 속마음은 어떨까. "원재료부터 전기요금, 가스요금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어서 결국 가격을 인상했다. 떡볶이 가격은 20~30% 인상했는데 원재룟값은 50% 가까이 오른 것도 숱하니 견딜 재간이 없다. 손님들도 오른 물가에 지갑을 열지를 않고…. 분식점을 해온 11년 중 요즘이 가장 어렵다."

김씨가 그저 볼멘소리를 늘어놓는 건 아니다. 분식점에서 주로 쓰는 가공식품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건 사실이다. 2020년 대비 2023년 주요 가공식품 물가 추이를 보자. 식용유는 69.1%(101.65→171.98), 설탕 44.2%(100.20→144.48), 물엿 38.7%(100.73→139.74), 고추장 31.6%(97.68→128.53), 어묵 30.5%(101.48→132.50), 떡 17.5%(100.26 →117.90)나 올랐다.

어디 그뿐만이랴. 도시가스요금 43.9% (94.59→136.18), 전기요금 38.6%(102.74→142.44), 상수도요금 8.6%(101.04→109.75) 등 각종 공과금도 줄줄이 인상됐다. 고민 끝에 가격을 올리고도 남는 게 없어 폐업을 고민하는 상인들이 숱한 이유다. 김씨는 "떡볶이를 즐겨 먹는 게 아이들인데, 학생 수도 줄어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면서 "10년 넘게 해왔지만 언제까지 장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전국 분식점 수는 2021년 5만5583개(국세청·이하 9월 기준)에서 올해 5만3890개로 줄었다. 2년 새 1700여개 분식점이 문을 닫은 셈이다. 장기화한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하는 건 떡볶이 프랜차이즈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죠스떡볶이' '신참떡볶이' '감탄떡볶이' 등의 점포 수는 2년 새(2020년 대비 2022년) 17.2%, 21.4%, 21.8% 감소했다. 더 심각한 건 이같은 침체기가 금세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이은희 인하대(소비자학) 교수는 "떡볶이·김밥·라면처럼 청년이나 서민층이 즐겨 먹는 음식의 가격마저 껑충 뛰었다"면서 "가격에 부담을 느낀 이들이 더 저렴한 음식을 찾으면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싸진 떡볶이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서민층이 적지 않다.[사진=연합뉴스]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인들의 '떡볶이 먹방'은 계속되고 있다. 보여주기식 서민행보에 신물이 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이 부산 깡통시장을 찾은 지 이틀 후인 8일 분식점 상인들이 국회에 모였다. 진보당은 이들과 함께 '떡볶이·어묵 먹방 서민 코스프레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참석한 떡볶이·어묵 판매 상인들의 호소를 들어보자. "국민들이 윤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얼마나 먹음직스럽게 떡볶이와 어묵을 먹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정운영입니다… 철 지난 시장 먹방쇼 그만두고 대한민국 영세업자들이 얼마나 고통 속에 살고 있는지 살펴보길 촉구하는 바입니다." 과연 이들의 외침은 높으신 양반들의 귀에 들어갈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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