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피해 최소화" 美요청에 이스라엘이 꿈쩍 않을 수 있는 이유[딥포커스]
국내 '하마스 소탕' 여론, 美 친이스라엘 정치 편승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이스라엘이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최대 우방인 미국의 조언과 압박을 모두 무시하는 굴욕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미국 대외 원조의 최대 수혜국이라 미국의 입장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면서도 자국에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미국 국내 정치 등을 유리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4일(현지시간) 그레고리 트레버튼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은 호주 뉴스 분석 매체 더컨버세이션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조언을 무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후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통치하게 하는 미국의 방안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스라엘은 지지를 잃기 시작했다"고 맞받아쳤다.
이외에도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고위 관리들은 이스라엘에 지난 수주 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이런 압박에도 네타냐후 총리는 거듭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급기야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무부 장관도 "이스라엘은 국제적 지원이 있든 없든 하마스와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트레버튼 전 의장은 "실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보면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가 많았다(tail wagging the dog)"라며 "객관적인 사실로 볼 때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압박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트레버튼 전 의장은 "이스라엘은 미국의 대외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이며 양국은 오랫동안 굳건히 연대했다"라면서도 "이런 막대한 영향력에도 이스라엘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다소 굴욕적인 일이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에 군사와 경제 원조로 약 2600억 달러(약 337조원)를 지원했으며 '아이언돔' 방어 시스템을 위해 추가로 10억 달러(약 13조원)을 제공했다.
지난 10월7일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이후에도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규모 원조를 약속한 바 있다.
이스라엘이 미국을 무시할 수 있는 이유로 트레버튼 전 의장은 이스라엘이 처한 안보 환경과 미국 국내 정치를 이유로 들었다.
트레버튼 전 의장은 "이스라엘인들은 스스로 매우 위험한 지역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그래서 늘 미국은 '좀 쉬엄쉬엄하라'라고 말하면 이스라엘은 '며칠만 더 달라'는 식으로 일축한다"고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그동안 거듭 이스라엘 국민들을 향해 안보의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지난 2012년 시리아 내전 당시 반정부군 거점이었던 홈스에서 정부군의 진입으로 수백명이 사망하자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군사·경제·사회적 힘을 발전시키는 것이 평화 유지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스라엘 국내 여론은 하마스의 기습에 대응하지 못했던 네타냐후 내각은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하마스 소탕'이라는 대의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스라엘의 지도부는 이런 국민 여론에 편승해 미국의 압박에도 계속 하마스와 전투를 벌이는 셈이다.
이스라엘이 미국 국내 정치에서도 여전히 초당적인 지지율을 자랑하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
트레버튼 전 의장은 "미국 대학 캠퍼스를 비롯한 많은 곳에서 이스라엘 반대 여론이 증가하고 있다"면서도 "미국 의회의 양당 대다수가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 73%와 민주당 지지자 62% 등 대다수가 하마스가 이번 전쟁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요구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빼고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만을 담은 별도 예산안을 가결 처리하기도 했다.
최근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피해가 급증해 미국 내에서도 이스라엘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주류 정치계와 업계는 여전히 반유대주의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점도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스라엘이 미국을 계속 무시하는 상황을 좌시할 수는 없단 지적도 나온다.
트레버튼 전 의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너무 많은 고통을 겪고 있어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제는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데 거의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2일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찬성 153표, 반대 10표, 기권 23표로 가결됐다.
이는 지난 10월 비슷한 요구의 결의안이 찬성 121표, 반대 14표, 기권 44표로 채택된 것보다 더 많은 공감대를 얻은 것으로 풀이된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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