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에 떠오르는 2023년…‘서울의 봄’이 이끄는 ‘팩션의 봄’
[주간경향] 영화 <실미도>가 2003년 1000만 관객 시대를 연 이후, 한국사회에서 영화관람은 여가활동의 대명사가 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12월까지 총 30편의 영화가 1000만 관객 이상을 모았고, 2014년 영화 <명량>이 1761만명을 기록하며 역대 1위를 차지했다. <명량>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2일이었다. 올해도 <범죄도시 3>가 관객 1068만명을 모으며 일찌감치 1000만 영화의 계보를 이었다. 이는 넷플릭스 등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영상 콘텐츠에 대한 수요를 분점한 상황에서 나온 기록이다. 영화와 OTT가 대체재가 아닌 별개의 수요층을 나눠 가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실제로 10여 년간 쌓인 통계를 보면, 한국인이 영화로 보길 선호하는 이야기가 분명히 드러난다. 외국영화를 제외하고 모두 21편의 1000만 영화 중 9편이 팩션(Faction) 영화다. 단일 장르가 차지하는 비율이 42% 수준이다.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결합을 의미하는 팩션은 반드시 과거의 사건이나 실제 인물의 기록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고증된 사실 위에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허구적 요소가 더해진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다.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8년 2월 28일자 기사 한 줄이 이야기의 출발점이었다. 여기에 ‘실록에서 사라진 15일간의 행적’, ‘왕을 닮은 대역의 등장’이라는 허구적 요소를 결합해 작품을 완성했다.
사실과 허구를 어느 정도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구분이 달라질 수 있지만 나머지 8편의 팩션 영화 역시 큰 틀은 다르지 않다.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한 <왕의 남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 <국제시장>은 모두 서사에 개연성을 부과하는 도구로 역사를 활용했다. 일제강점기 한인애국단, 의열단의 이야기를 그린 <암살>, ‘684부대’라는 북파공작원을 조명한 <실미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는 역사 그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았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인>도 역사적 인물의 행보에 상상력을 덧붙인 대표적 사례다. 이들 작품은 모두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되, 사실과 완전히 결별해서는 안 된다’는 팩션의 정의에 충실했다.
이처럼 한국인이 선호하는 이야기, 구성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다른 팩션 영화를 통해 계속 검증해볼 수 있다. 비록 1000만 관객을 동원하지는 못했지만 <관상>, <밀정>, <최종병기 활>은 이미 역대 영화 흥행 순위 50위권에 안착해 있다. 특히 2011년 <최종병기 활>을 제작한 김한민 감독은 3년 만에 <명량>으로 흥행 1위 감독에 오르며 팩션 장르에 최적화된 면모를 보였다. 비싼 영화가격, OTT 콘텐츠의 범람으로 한국 영화 ‘위기론’이 제기된 올해도 검증은 계속됐다. 실제로 팩션 영화 한 편이 지금 선풍적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 작품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홍보문구까지 기존 1000만 팩션 영화들과 닮았다. ‘1979. 12. 12. 그날 밤 철저히 감춰진 9시간’, 영화 <서울의 봄>이다.
■전화통만 붙잡고 있는데 왜 재밌을까
<서울의 봄>은 극장가의 비수기로 여겨지는 지난 11월 22일 개봉했다. 영화가 다루는 것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세력의 정권 탈취 과정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을 전두광, 노태건 등으로 변형했지만, 외모·말투 등의 특징을 통해 이들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적어도 유쾌한 영화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서울의 봄>은 지난 12월 12일 누적관객 수 750만명을 돌파했다. 1980년대를 기억하는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이 세대를 경험하지 못한 2030 세대까지 폭넓은 선택을 받았다. 그 이유를 전문가들은 한 마디로 분석한다. “재밌다”는 것이다.
<서울의 봄>이 재밌는 이유로 첫손에 꼽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소재’다. 일반적으로 전두환의 정권 탈취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부터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의 전국 확대까지를 아우르는 ‘긴 쿠데타(Long Coup d’etat)’를 의미한다. 실제로 전두환의 정권 장악은 영화처럼 군사반란 직후 곧바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최규하 대통령-신현확 국무총리 체제는 군사반란 이후로도 일정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2018년 논문 ‘10·26 이후 정국 전개의 재해석―전두환과 신군부의 긴 쿠데타’가 지적한 것처럼 군사반란 이후 6개월여 동안 나타난 정치적 변화까지 아우를 때 전두환의 정권 탈취 과정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신군부를 다룬 콘텐츠들이 ‘긴 쿠데타’ 전반을 다루거나 그 결과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조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영화 <서울의 봄>은 팩션이기에 가능한 색다른 시도를 한다. 선택과 집중, 배제와 단순화다.
실제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1979년 12월 12일부터 13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단, 9시간이다. 이를 통해 12·12 군사반란 당시 난립했던 주요 정치 행위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이후 발생한 힘의 공백, 김종필과 대구·경북(TK) 세력 간 대립 등의 역학관계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군부를 제외한 정치인은 최규하 대통령, 신현확 총리, 노재현 국방부 장관 등 최소한의 인물만 남기고 대립 구도를 단순화했다. 쉽게 말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보더라도 ‘전두광(환) 패거리’와 이를 막고자 한 ‘이태신 장군(실제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선·악 대결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서울의 봄>이 재밌는 두 번째 이유는 완성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관객들은 영화를 OTT에서 편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지, 수고를 감내하며 극장을 찾을지를 선택해야 한다”며 “극장을 찾는다면 2시간 넘는 시간을 몰입해서 볼 만큼 영화의 완성도가 담보되느냐가 결정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팩션 영화의 완성도는 결국 ‘개연성’에서 찾아야 한다. 얼마나 그럴듯한 상상력을 발휘했느냐다. 이때 기본이 되는 것은 탄탄한 고증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울의 봄>을 ‘군복 입은 남자들의 전화 액션’이라고 평가한 세간의 우스갯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상영시간 141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총알처럼 쏟아지는 말이다. 이태신 장군 역을 맡은 배우 정우성씨는 “전화통을 붙잡고 (병력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비는 연기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소재가 군사반란임에도 말싸움만 난무하는 것은 직접적 무력 충돌보다 세 대결에 가까웠던 그날의 상황을 고증한 결과다. 실제로 반란군 세력과 이를 막고자 한 장태완 수경사령관, 이건영 3군사령관 등이 주고받은 통화 녹취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날 무장병력이 동원됐음에도 공식 사망자는 특전사령관을 보호하다 반란군 총에 희생된 김오랑 소령(이후 중령 추서), 국방부 헌병중대 정선엽 병장, 수경사 33헌병대 소속 박윤관 일병 3명이었다는 점 역시 영화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했음을 알게 한다.
군사반란을 결심한 이유도 고증됐다. 이 역시 주고받는 말속에 정보를 담아 처리한다. 예를 들어 전두광은 반란을 결행하기 앞서 이렇게 말한다. “여기 대령 이하 잘 들어라. 느그들 서울대 갈 만큼 공부 잘했잖아, 그쟈? 근데 집구석에 돈 없고 빽 없어서 맥이주고 재워주는 육사 왔잖아. 근데 시험도 안 보고 들어온 노땅 똥차들이 줄 서가 있으니까 아직 별도 못 달고 있잖아.” 이는 4년제 정규 과정으로 육군사관학교(육사)를 마친 육사 11기 이하의 자부심과 윗기수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준다. 육사 5기인 당시 정승화 계엄사령관 역시 이들에겐 선배나 상관이 아닌 ‘똥차’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950년부터 1969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되며, 6개월 정도의 교육만 받고 초급 장교로 임관한 ‘갑종’은 말할 것도 없다. 영화 속 전두광이 이태신 장군을 향해 ‘갑종 출신’ 운운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이처럼 철저한 고증은 필연적으로 영화의 몰입도를 높인다. 상상력을 발휘한 부분마저 전부 사실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 속 군사반란은 한쪽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전화를 할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판세가 뒤집히는 상황으로 연출된다”며 “이미 결과를 알고 보면서도 조금만 더 주의하면 혹시 반란군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몰입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에 있던 육군본부를 먼저 점령하기 위해 반란군과 진압군이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상황이 뜻밖의 재미를 만든다는 해석도 있다. 정 평론가는 “실제 상황과 별개로 반란세력과 진압세력이 치고받는 상황이 마치 전략게임을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며 “특히 이러한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서울의 봄>에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봄>은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그런데 이들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넘어 자신들의 감상평을 기발한 방법으로 표출한다. 이른바 ‘심박 수 챌린지’라고 불리는 분노지수 공유가 대표적이다. 영화를 보며 증가한 자신의 심박 수를 스마트워치 등으로 측정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다. 1979년을 다룬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2023년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봄>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는 뜻이 된다.
■2023년을 닮은 1979년 서울의 봄
짧게는 수십 년 전부터 길게는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팩션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역사를 현재적 관점으로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봄>뿐만 아니라 최근 성공한 TV 사극들은 모두 이 과정을 거쳤다. 올해 MBC에서 방영한 대표 사극 <연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왕조 인조 시기의 병자호란이다. 조선과 청나라, 인조와 소현세자, 최명길과 김상헌을 대립 구도로 하는 사극은 이미 몇 차례나 만들어졌다. 그런데 <연인>이 선택한 구도는 이와 조금 다르다. 제 살길만 찾는 권력자는 배경으로 제쳐두고 각자도생하는 민초의 삶을 그렸다. 꿋꿋하게 살길을 찾는 여자 주인공 ‘길채’(안은진 분) 역시 현대사회의 주체적 여성을 닮았다. 달리 말하면 사극을 보면서 묘하게 지금 한국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왜 지금 우리가 이 이야기에 집중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준다.
<서울의 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극적으로 단순화된 대립 구도는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한다. ‘누군가 규칙을 깨고, 이익을 독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것이냐는 관객 스스로 결정한다. 지난 12월 8일 경기도 광명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만난 최태섭씨는 1980년 당시 스물다섯 살의 노동자였다. 최씨는 “당시 있었던 일들을 알고 영화를 봤는데도 이상하게 화가 나더라”며 “12·12 군사반란이 아니었다면 광주의 비극도 없었을 테고, 나도 젊은 시절 조금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4년생 정혜승씨는 “온갖 불법, 편법을 다 쓰고 살아도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도 하고 평생 잘 먹고 잘사는구나 싶었다”며 “그게 지금이라고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SNS 등에서는 <서울의 봄> 감상평으로 “오늘이 겹쳐 보인다”는 의견이 쏟아진다. “영화를 볼 때는 분노를 느꼈는데 끝나고 나니 슬퍼지더라”는 것이다. 특히 권력 최상층에 있는 무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불의를 저지르고, 이들을 견제해야 할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들과 똑 닮았다는 지적이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는 극 중 전두광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행위를 결과 중심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지나온 역사다. 동시에 지금도 반복되는 인식이기도 하다. “전두환 대통령이 잘못한 부분이 있지만, 군사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호남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2022년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이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은 “왜 영화제목이 12·12 군사반란이 아닌 서울의 봄”이냐는 질문에 “영화 속 이야기에서 ‘서울의 봄’은 오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결국 오지 않는 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제목을 <서울의 봄>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의 이례적 흥행이 잃어버린 1980년의 봄을 다시 불러오진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끝까지 자신의 위치에서 책임을 다하려고 한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는 이끌어내는 중이다. 팩션 영화 한 편이 도도한 사회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왜 한국인들이 그토록 팩션 영화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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