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담] 법 저격? 공정위 저격?…이유 있어서 거침없는 한경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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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자료=한국경제인협회)]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작정하고 공정위를 저격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경제 정책 파트너로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등 눈에 띄게 달라진 한경협의 위상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한경협은 최근 '경제력 집중의 환상과 오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주요 대기업의 해외 매출 비중이 전체 매출에서 절반을 훌쩍 넘을 정도로 글로벌 경쟁 압력에 노출된 상황에서 외국 경쟁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 경제력 집중 규제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는 현 공정거래법의 '경제력 집중 규제'를 사전적, 획일적이라고 규정하며 '경제력 남용 방지'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독과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경쟁 당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며, 우리 공정거래법이 경제력 집중 방지에 지나치게 매달린 '한국형 갈라파고스' 규제이자 예외주의라고도 꼬집었습니다.
한경협의 저격, 믿는 구석?
한경협은 지난 11일에도 킬러·민생 규제 개선 방안을 국무조정실에 전달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련이 8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갖고 있는 완전 모자회사 간 부당지원 행위 적용 제외를 건의했는데, 모회사가 유리한 조건으로 자회사와 거래하는 것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이 기업 경영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논리에서입니다.
공정위가 회사 또는 특수관계인에게 기업집단 자료 제출을 요청하는 것 관련해서도, 자료 제출 의무자를 '법인'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업을 영위하면서 정부 눈치를 끊임없이 보기 바쁜 재계 대변 단체라는 점에서 보면, 다소 거친 행보로 볼 수도 있는데 배경이 있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 부산 방문 등 일정에 류진 회장이 동행하면서 한경협이 정부의 경제 정책 파트너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윤 대통령이 잇따라 규제 혁파를 외치며 밝힌 기조와도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제4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며 "투자의 결정적 걸림돌이 되는 것이 킬러 규제"라며 "민생 경제를 위해 빠른 속도로 제거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민간의 자유로운 투자와 사업 활동을 방해하는 제도를 걷어내는 데 더 집중해 나갈 것”이라며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하고 주도하는 과거의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한경협 등 재계 반발력 못 읽었나
공정위는 사익 편취로 궁극적 이득을 보는 게 총수 일가인 만큼, 직접 개입이 증명되지 않아도 고발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사익편취 관련 총수 고발지침 개정안'을 내놓고 지난 11월 8일까지 행정예고한 바 있습니다.
사익편취는 대기업이 일감 몰아주기 등으로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인데, 현행 규정은 총수 일가의 관여가 명백해야 고발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고발해도 총수 일가는 고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게 공정위 의도입니다.
한경협은 대한상의, 무역협회, 경총 등 다른 경제단체들과 함께 "상위법과 충돌하며 현 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공정위는 결국 재검토 의사를 밝혔습니다. 11월 8일, 개정안을 수정·보완해 다시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원안을 포기하는 만큼 기존 지침 수준에 머무를 여지가 큽니다. 현 정부에서의 재계, 경제단체가 갖는 반발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섣불리 움직였다가 물러난 셈입니다.
공정위가 무기력하게 주저앉는 모습에,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드는 동시에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저평가를 해소하는 길이 요원해졌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대로 준비를 안 했다는 것을 실토한 것인가 싶다"며 "규제 대상자들이 반발하면 바꿔준다면, 독립적인 규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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