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비 늦장 지원… 마스크 못 팔고 기계만 떠안아 [우리는 일회용이 아닙니다 中]

이지민 기자 2023. 12. 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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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지원받고 생산 준비하는 사이... 민간기업 대량생산, 수급 안정 찾아
재활시설 40여곳 중 절반 수익 못내... 판매 시기 놓치고 예산만 낭비한 꼴
수원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내 생산을 멈춘 마스크 생산 기계에 원자재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지민기자

 

코로나 특수 비켜간 장애인직업재활시설

2020년 코로나19 창궐에 발 빠르게 마스크를 생산한 민간 기업이 반짝 특수를 본 것과 달리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 받아 마스크 생산에 나선 장애인직업재활시설들은 특수를 누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공적마스크 생산을 위한 예산 약 55억원을 지원했지만, 예산이 집행됐을 땐 이미 민간 기업의 생산량 증대로 마스크 수급이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이에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은 제대로 마스크를 판매해 보지도 못한 채 기계만 떠안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발생한 후 전국 각지에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며 전국은 ‘마스크 대란’에 빠졌다. 약국과 편의점, 온라인 등 마스크 판매처에서 마스크가 줄줄이 품절되는 등 국민이 마스크 수급에 어려움을 겪자 같은 해 3월 정부는 출생 연도 끝자리에 따라 지정된 요일에만 구매할 수 있는 5부제와 민간 마스크 생산 업체에 생산을 독려하는 등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시행하게 됐다.

이때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역시 마스크 수급 안정화를 도모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 기능보강 예산을 신청하는 등 마스크 생산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민간 기업들이 발 빠르게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면서 마스크 생산량도 급증, 이내 마스크 대란이 안정화됐고, 정부는 ‘마스크 수급 안정화 대책’을 시행한 지 3개월 만에 구매 제한 조치를 완화했다.

이런 상황에 앞서 공적 마스크 생산을 위해 기능보강 예산을 신청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들은 정부의 행정 절차 탓에 민간 기업보다 한발 늦게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게 됐고, 이들이 마스크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때는 이미 시중에서 마스크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뒤였다.

마스크 생산 장애인직업재활시설에 따르면 실제 2020년 기능보강 사업을 신청한 시설들은 2021년 중순께야 예산을 지원받아 기계를 매입하고 시설 보강·증축을 통해 마스크를 생산했다.

특히 마스크를 생산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 40여곳 중 절반에 달하는 20여곳은 마스크 수급이 안정돼 사업성이 대폭 줄어든 지난해가 되어야 예산을 지원받아 사실상 거의 수익을 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마스크를 생산하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총매출을 보면 2021년 678억원 가량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5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도내 한 마스크 생산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대표는 “예산을 지원받았을 때는 이미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 많은 시설이 제대로 마스크를 판매도 해보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며 “적시에 예산이 집행됐더라면 이렇게 허무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내 마스크 생산 기계가 가동을 멈추며 생산 중이던 마스크가 남겨져 있다. 이지민기자

■ 마스크 생산 장애인 시설 “생산품 전환 지원 정책 등 필요”

이처럼 코로나 당시 정부 예산으로 마스크 생산에 나섰지만 제대로 판매조차 하지 못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들은 ‘취약계층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 판매지원’ 및 기존 마스크 생산 기계를 활용한 ‘생산품 전환 우선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사실상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15일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마스크생산시설협의회에 따르면 협의회는 올해 초부터 보건복지부에 생산시설 지속 운영을 위한 정책 협조를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협의회는 먼저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중 지속적인 제품 생산을 희망하는 곳에 한해, 장애인들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취약계층 미세먼지 대응 마스크 보급 사업’과 같은 보건복지부의 판매지원(구매 활성화) 정책 수립을 요청하고 있다. 또 수요 대비 마스크가 과잉 생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스크 외 휴지·복사지 등 매출이 발생하는 타 생산품 보유 시설 중 마스크 사업 종료를 희망하는 경우 이를 수용해 마스크 생산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총량을 25%(10개소) 이상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생리대 등 기존 마스크 제조 공간을 활용한 신규 아이템 도입을 모색하는 시설에 생산품 전환 우선 지원도 주문하고있다.

이 외에도 조달청 비축 마스크의 일정 물량을 중증 장애인생산품으로 할당하는 방안과 공공기관 마스크 구매 시 ‘중증장애인생산품우선구매특별법’에 따라 장애인 생산시설에서 제조한 물품을 우선 구매(수의 계약)하고, 최저가가 아닌 중증 장애인생산품 생산시설 제품을 단가에 맞춰 구매할 것을 요청했다.

협의회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건의서를 지난 8월 정부에 건의한 데 이어, 지난달 실시된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경영 컨설팅에서도 이와 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장애인직업재활시설 마스크생산시설협의회는 “국가 마스크 생산 역량 강화를 위해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을 중심으로 확대된 마스크 생산 장애인시설들은 민간 기업과의 가격 경쟁력 저하, 공공 구매 시장에서의 생산 시설 난립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근로 장애인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자립 지원을 위한 ‘마스크 생산 장애인시설의 지속적 운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보건복지부 측은 “시설 관련 방안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협의회에서 제시한 사안들은 타 단체와의 형평성이나 기능 보강 예산 집행 조건인 ‘의무 사용 기한’ 등을 볼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경영 컨설팅 사업이나 공공기관 구매 협력, 지자체와의 MOU를 통한 구매 촉진 등의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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