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피소드] "장애인이 되고 싶은데, 장애 등록을 안 받아줘요."
서른이 넘었지만 아직 직업이 없는 석우 씨.
단순 아르바이트조차 두 달 이상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을 하기 싫었던 게 아닙니다.
가는 곳마다 욕을 먹었고,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한두 달 만에 그만두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왜 이렇게 손이 느리냐" -"전부 다 바쁜데 너 혼자 꿀 빨려고 하냐"‥
군대에서, 직장에서, 항상 석우 씨를 향해 쏟아졌던 비난들.
학창 시절 성적은 늘 좋지 않았고, 이런저런 자격증 시험도 준비해 봤지만 전부 불합격.
4~5번 도전했던 운전면허조차 기능 시험의 벽을 도저히 넘지 못해 면허 따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석우 씨는 작년 11월, 처음으로 맘 먹고 여러 검사를 받아 봤습니다.
그렇게 알게 된 석우 씨의 IQ는 72.
지적 장애인의 요건이 '지능지수 70 이하인 사람'인데, 석우 씨는 그 기준을 간신히 넘는 정도였던 겁니다.
[임한결/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석우 씨 변호사] "석우 씨가 말씀은 잘 하세요. 언어 이해 능력은 그래도 한 80 이상 되기 때문에 의사소통은 다 되거든요. 그런데 지각 추론이라고 해서, 손으로 하는 걸 잘 못 하세요. 신발끈 묶는 거, 보통 초등학생만 되면 금방 하잖아요. 이 분은 그런 게 되게 느려요. 지금도 신발끈을 잘 못 묶어요. 그래서 그냥 버튼을 돌리면 채워지는 등산화 같은 거, 끈 없는 신발, 그런 신발만 신으세요. 그런데 겉으로는 말을 잘 하니까 사람들은 뭐가 불편한지 모르고, 일을 느리게 하니까 욕을 엄청 먹는 거죠."
혼자 신발끈도 제대로 못 묶는 석우 씨.
본인 IQ를 모르고 있었던 바람에 군대까지 현역으로 다녀 왔으니, 그 고충이 어땠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제라도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싶다'고 어렵게 결심해 장애인 등록 신청서를 냈지만, 결과는 반려 처분.
구청이 등록을 거부했습니다.
석우 씨의 IQ는 72니까,
'70 이하'라는 장애 등록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반려 처분 취소 소송까지 해봤지만, 얼마 전 나온 1심 결과는 '패소'였습니다.
"웩슬러 지능 검사 자체가 오차 범위를 두고 있거든요. ±5~10 정도를 오차 범위로 두고 있기 때문에, 70이란 숫자를 완고하게 고집하는 것 자체도 좀 이상한 거죠."
임 변호사는, 석우 씨와는 반대로, '컨디션에 따라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 있다'는 이유로 IQ 65인 사람이 장애인 등록을 거부 당해 소송을 진행 중인 사례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70'이라는 숫자가 어차피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 어려운 겁니다.
■ 한 학급에 3~4명은 경계선 지능인‥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6백만 명 이상 추정"
지능지수(IQ)는 보통 85 이상을 정상, 70 이하를 장애로 분류합니다.
그 사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 있는 석우 씨 같은 사람들을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합니다.
석우 씨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을까요? 추정치는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 중 경계선 지능인이 정확하게 몇 명인지에 대한 국가 통계가 아직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지능지수(IQ) 정규 분포도에 따라 추측해 보면, 전체 인구의 약 13.6%가 70~85 사이에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5월 기준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5,140만 521명. 그렇다면 전체 경계선 지능인은 약 699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예를 들어 학교의 한 학급별 인원이 30명이라면 이 중 3~4명은 경계선 지능인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출처: 경계선 지능인의 현황과 향후 과제(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2023년 6월)>
IQ 70 이하 지적 장애인 출현율은 0.38%, 국내 지적 장애인의 수는 보통 18~20만 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전체 인구에서 경계선 지능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적 장애인보다 훨씬 높은 겁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대부분 일상적인 대화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은유나 비유 같은 표현을 못 알아듣고 대인 관계를 맺기 힘들어 합니다. 인지·정서·사회 적응 능력이 낮기 때문에 학습과 취업 활동에서 평생 상당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박현숙/경계선지능연구소장]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 수준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지적인 능력의 결함과 그리고 사회 부적응으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냥 보기에는 외모나 어떤 특징으로 잘 구별되지 않는데, 대부분 타인이 봤을 때 좀 답답하고, 뭔가를 배우는 게 느리고, 문제 해결력이 떨어진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세한 인지적 결함이 논리적인 사고나 사회성의 발달을 방해해서, 성장할수록 사회적 적응을 더 어렵게 만드는 특성도 있고요."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으려면 전문 상담센터나 병원에서 표준화된 지능 검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검사 비용이 30~80만원씩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판정을 받고 난 후에는 더 막막해집니다.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해서 어떤 장애 진단을 받거나 약물을 처방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경계선 지능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국내외의 연구가 매우 드문 편이에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적절한 교육 방법, 개선을 위한 치료법의 발달 역시 매우 더딘 상태고요. 경계선 지능인이 학교나 직장에서 적응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개인적, 사적으로 치료기관이나 병원에 직접 찾아가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개인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 비용이나 심리적인 부담감이 매우 커서 경계선 지능인 본인이나 그 가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계선 지능인들을 대상으로 일본은 교육, 독일은 직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공적 지원이 전무한 상황. 그렇다 보니 고육지책으로 나오는 '편법'이 있습니다.
■ "다른 때는 몰라도 다 풀라 그러더니 지금은 왜 그러는 건데?"‥드라마 속 그 장면
"어떤 진학이라든지, 군복무라든지, 취업이라든지 아니면 바우처와 같은 그런 도움을 받기 위해서 IQ를 일부러 낮춰서라도 지적장애 진단을 받기 위한 노력들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실패를 합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떠오르는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있는데요.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마지막 화입니다.
이 에피소드 속 경계선 지능 여학생은 'IQ 검사를 일부러 틀리라'는 엄마의 말과 의도를 이해하지 못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풀고, IQ 70을 넘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바람에 '지적장애' 판정을 받지 못합니다. 단순히 드라마 속 설정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실제로 그만큼 절박하게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이들이 겪는 또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범죄에 취약하다는 겁니다.
"경계선 지능인은 상대방의 어떤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을 피하거나 거부하는 비율이 매우 떨어집니다.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이라든지 아니면 가스라이팅, 이런 범죄의 표적이 되는 그런 경우들이 많고요. 혼자서 자립하기도 어렵다 보니까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절도를 하거나, 충동적으로 폭력 사건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임한결/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석우 씨 변호사] "어릴 때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발달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향상 가능성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성인이 된 경우에는 지능이 더 발달될 가능성이 거의 없잖아요. 그렇다면 적어도 성인들에 대해서는 장애 등록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장애인 복지 서비스 혜택이 전부가 아니라, 더 중요한 측면은 권리 옹호 측면이기도 합니다. 이 분들이 범죄 피해자가 될 가능성도 높은데 수사 기관이나 법원에서 이런 사정들을 잘 헤아려 주지 않아요. 진술을 해야 할 때 장애인이라면 진술 조력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특별법으로 더 무거운 처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계선 지능인 분들은 장애 등록이 돼 있지 않으니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참 애매한 거죠."
[박현숙/경계선지능연구소장] "경계선 지능인 분들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 가족일 수도 있고, 동료일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이 분들이 보통의 일반적인 성인처럼 자립을 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삶의 질이 가장 높아진다고 볼 수 있는데요. 차별적인 시선보다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그런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는 그런 대책들이 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관련 보도: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551560_36199.html
영상취재 : 이준하 이상용 강종수
조재영 기자(jojae@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553724_29123.html
[저작권자(c) MBC (https://imnews.imbc.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
- 낮부터 매서운 한파‥전국 곳곳에 눈
- "한동훈이 적임자"‥"대통령 아바타 안 돼"
- "콩밥 먹이겠다"‥학부모 폭언, 사실이었다
- 서울 경복궁 주변 담벼락에 '불법 공유 사이트' 낙서 훼손
- "명품가방 선물 받았다"‥검찰, 김건희 여사 고발사건 검토 착수
- [단독] "반도체 공정 통째로 넘겼다"‥'8대 공정 6백 단계' PPT 확보
- 강사 때리고 돈 뜯고‥'공포의 학원' 원장 징역 5년
- "비대면 진료 거부"‥확대 시행 첫날부터 파행
- 10명 싸운 토트넘, 노팅엄에 2-0 승리‥손흥민, 88분 소화
- 이재명 '선거법' 위반 1심 징역형 집유‥"수긍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