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오픈런 '대기 190명'…브런치는 개뿔[남기자의 체헐리즘]
똑닥앱 줄서기도 1초 만에 마감, 야간 진료는 '하늘의 별 따기'
열 패치 붙인 아이는 익숙한 듯 핸드폰 보고…엄마는 토닥이다 꾸벅꾸벅 졸았다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지요.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작은 내 아이가 아프다고. 새벽에 불현듯 열이 올랐고, 걱정에 밤잠을 설친 거고, 여는 시간에 맞춰 데리고 왔다고.
그게 아침 9시. 상상한다. 빨리 낫게 해주고 싶은, 불안해도 또렷한 마음. 계단을 올라가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기실이 이미 꽉 차 있었다. 이게 뭐지, 심장이 방망이질쳤다.
"예약하셨어요?"(직원)
"네? 아니요."(기자)
"지금 접수하시면 대기 64번이세요."(직원)
'오픈런'이니 괜찮겠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4명인데. 평일 아침인데 설마. 그러나 모니터 속 믿기 힘든 대기 화면.
김모 선생님(56명), 남모 선생님(54명), 김모 선생님(63명), 이모 선생님(17명). 도합 대기 인원 190명.
가장 빠른 선생님께 해달라고 한 뒤, 대기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까마득했다. 시간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흐르는 걸 망각해야 견딜듯했다. 불현듯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아빠, 여기 병원이잖아아! 여기 병원이잖아아아아, 엉엉."
아파서 온 남자아이는 눈물 뚝뚝 흘리며 아빠를 탓하고 원망했다. 아빠는 애써 눈을 피하면서도 달래주었다.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싶어, 별수 없이 무서워할 걸 알면서도 왔단 걸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 무수했던 복잡한 광경들.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입고, 부리나케 왔음이 느껴지던 부모들. 수더분한 모습과 무거운 눈꺼풀. 아주 작은 아기를 품에 넣고, 대기실 의자조차 앉지 못한 채 위아래로 살살 흔들던 엄마. 자그마한 이마에 열 패치를 붙이고, 캐릭터 마스크를 쓰고, 핸드폰 영상을 넘겨가며 기다리던 아이. 그런 아이를 의자 안쪽에 두고, 바깥쪽에서 팔짱을 낀 채 졸고 있는 아빠.
지루함에 지친 아이는 옆으로 눕기도 하고, 엄마에게 장난도 쳐봤다가, 이윽고 기대어 견뎠다. 시끄러운 소리와 울음이 가득한 대기실에서 엄마는 미동도 않은 채 꾸벅꾸벅 숨을 죽였다. 화면을 봤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화면을 봤다가 반복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마이크까지 차고 아이들 이름을 불렀다. 콜록콜록 기침 소리, 혼란스레 떠드는 소리, 그사이에 섞인 우는 소리. 대기실 의자는 꽉 차 있었고, 서 있는 엄마들도 많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김모 원장님 접수하신 서예지 안 계신가요? 서예지 순서 지났습니다."
이렇듯 오래 기다려줄 수도 없었다. 몇 번 불러서 찾은 뒤 없으면 다음 아이로 넘어갔다. 그리 해도 순서가 정말 더디게 줄었다. 분주하고 빽빽한 공간에서 오래 기다리는 건 고역이었다. 핸드폰을 봐도 시간이 잘 안 갔다.
홀로 있어도 이리 힘든데 아픈 아이도 함께인 것. 지치고 때론 떼쓰는 아이들을 갖은 방법으로 부모는 어르고 달래야 했다. 누구는 무릎을 꿇어 아이와 눈을 맞췄고, 다른 누구는 부단히 쓰다듬고 어루만져 주었다.
어느덧 아들래미를 초등학생까지 키운, 친한 동생 얘기가 생각났다. 전화할 때 콜록거리기에 병원 안 가느냐 했더니 손사래치며 이랬었다.
"아우, 저 아픈 건 아무래도 괜찮아요. 상혁이만 안 아프면 돼. 애가 아프면 많이 힘들어요."
그래, 그런 뜻이었구나. 아침 9시가 10시가 되고, 다시 11시가 되어도 도무지 진료 보기 힘들단 뜻이었다. 진이 있는 대로 다 빠졌다. 앉지도 못한 채 동분서주하는 간호사 선생님, 저 안에서 이 많은 애들을 진료하고 있을 소아청소년과 의사 선생님도 생각했다.
정오가 지나고 거의 오후 12시 반이 다 돼서야 대기 번호 68번을 호명했다. 한숨이 그제야 나갔다.
기다린 시간만 3시간 반. 그것도, 오픈 시간에 딱 맞춰 접수했을 때 말이다.
"지금 가서 접수하면 대기 몇 명일까요?"(기자)
"대기 52명이에요. 오시면 53번이고요."(간호사)
"헉, 엄청 많네요."(기자)
"똑닥으로 접수하고 시간 맞춰 오세요. 그게 나아요."(간호사)
똑닥? 이건 또 뭔 말인가 싶어 전화를 끊은 뒤 검색했다. 검색한 뒤 나만 모른단 걸 알았다. 앱을 깔았다. 돈을 내란다. 한 달에 1000원. '사각지대'가 예상됐다. 아마도 이걸 쓰기 힘들 어르신들. 실제 목격했단 제보자가 있었다.
"할머님께서 똑닥이 뭔지 모르시고 현장에 오신 거예요. 그러면 아무리 일찍 와도, 오전 맨 끝으로 순번이 가는 경우가 있어요. 유모차 끌고, 아파서 징징대는 아기 데리고 오셨다가 맘 상해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안내 데스크에서 큰 소리도 내보고, 자식들에게 하소연도 하시고요."
장면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한 맘카페에서 보니 "추운 날 할머니가 손주 진료 보러 왔다가 못 받아서 우는 걸 봤다"는 글도 있었다. 맞벌이라 조부모가 키우는 아이들도 많고, 조손 가정은 더 걱정이었다.
누적 가입자가 1000만명이라던 그 앱을 깔고, 한 달 멤버십 1000원을 냈다. 그러자 동네 소아청소년과 대기 현황이 쫙 펼쳐졌다. 어디가 적은지 볼 수 있고, 골라서 접수할 수 있으며, 대기 순서가 가까워지면 가면 된다.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대기 지옥을 경험해본 터라 편하겠단 생각. 필수 의료인데 돈을 낸 이만 편리를 누려도 되는 건가에 대한 불편함. 지금은 1000원이지만 앞으로 1만원으로 올리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꼼짝 못하고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신도시라 아이가 많은 '동탄'에 가보기로 했다. 동네서 괜찮단 소아과 두 곳을 정했다. 전략을 세웠다.
1. 현장 접수만 가능한 곳에 오픈 한 시간 전에 도착해 몸빵하며 기다린다.
2. 그러면서 추이를 살핀 뒤 똑닥이 가능한 소아과에 예약 접수를 노린다.
다음 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한 뒤, 부리나케 동탄으로 내달렸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 나름 한 시간 전에 왔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웬걸, 이미 대기 줄이 길었다. 주로 아빠들이 많이 있었다. 병원 입구에서 코너를 돌아 다시 한번 더 꺾은 정도의 줄. "여기가 끝이에요"하던 한 아빠의 말에, 그의 뒤에 가서 섰다. 앞에 11명 정도 있었다.
캠핑 의자에, 까만 간이 의자까지 동원됐다. 아예 찬 바닥에 주저앉아 눈 감고 조는 아빠도 있었다. 내 뒤로도 계속 엄마와 아빠들이 줄을 섰다. 작은 이불을 덮고 유모차에 잠든 아이, 복도에서 까부는 아이. 엄마는 조용히 해야 한다고 속삭이며 타이르다, 아예 말을 안 듣자 계단 있는 곳으로 나갔다. 8시 반엔 대기줄이 스무 명 가까이로 늘었다.
아침 8시 40분에 소아과 문이 열렸다. 접수한 뒤, 집에 갔다가 안내받은 시간에 오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선 줄 기준으론 오전 10시 반 진료였다. 한 시간 전에 와도,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 멍하니 서 있다가, 초반 진료를 받고 돌아가는 이를 붙잡고 물었다.
"죄송한데, 이 정도 빨리 진료 보려면 몇 시에 줄 서야 하는 거예요?"
아이를 데리고 부리나케 가다 멈춘 엄마가,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남편이 줄을 서줬는데요. 새벽 6시 반에 왔는데, 앞에 세 명 있었다고 했어요."
똑닥앱을 켰다. 아침 9시가 가까워지자, 초 단위로 시간을 알려줬다. 유명 가수 콘서트 예약이나, 수강 신청을 할 때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성공할 수 있을까.
'땡' 하자마자 아주 빠르게(내 생각엔) 진료 대상을 눌렀다. 주민등록번호를 누른 뒤 진료 방식, 증상, 결제 방식 등을 선택했다. 예약까지 30초 정도 걸렸다. 잠시 뒤 대기 순번을 받았다. '24명 대기 중'이라고 떴다. 이리 빨리 했음에도 그랬다. 나중에 다시 보니, 뒤로도 5명이 더 있었다. 이 앱을 써도 대기가 긴 건 마찬가지였다.
약 4.3㎞ 떨어진 해당 소아과에 가봤다. 대기가 29명이었는데, 이중 2명을 제외하고 다 똑닥앱으로 접수한 이들이었다. 병원 안내판엔 이리 쓰여 있었다.
'3번 호명 후 없을 경우 취소됩니다.'
그러니 이 앱으로 접수해도 맘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 병원에 없어도 되는 건 편했으나, 줄어드는 속도가 제각각이라 계속 신경 쓰며 살펴봐야 했다. 대기시간은 약 2시간 반 정도였는데, 앱을 계속 켰다가 껐다가 하며 불안해했다. 결국 어느 정도 선에서 병원에 올 수밖에 없고, 그러니 또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픈 건 때를 정해놓는 게 아니니, 그럴 때 이런 앱이 무용(無用)한 것도 문제였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이세라씨는 아홉 살 아들이 갑자기 독감에 걸렸다. 고열로 40도까지 치솟았다. 급히 5분 거리 소아과에 갔으나 대기 번호가 150번대였다. 이미 똑닥으로 오전 진료 예약이 꽉 찬 거였다. 이씨는 "고열로 축 처진 아이와 2시간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받았다"며 "의사 선생님 한 분이 한 명당 1분씩 진료를 봤다. 기다리다가 경기를 일으키지 않아 감사했다"고 했다. 그는 "똑닥앱으로 당일 소아 진료 마감하는 곳도 비일비재하다"며 "그러면 더 멀리 떨어진 병원을 수소문해 원정 진료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맞벌이는 대체 어떡해야 하나. 평일 오전 오후만 취재하다 그런 생각이 스쳤다. 동네 인근서 야간 진료를 보는 소아과를 찾아봤다. 한 어린이병원이 있었다. 오후 5시 50분부터 홈페이지로 예약 접수를 받는단다.
다시 조마조마하며 홈페이지를 켜놓고 기다렸다. 핸드폰 시계가 바뀌자마자, 부리나케 버튼을 눌렀다. 34명이란 게 보이는가 싶더니, 30초도 안 돼 접수가 마감됐다. 황망할 정도였다.
동네 소아과들 중엔 야간에 보는 곳이 하나뿐이었다. 밤 9시까지 하는 곳이 있기에 퇴근하고 방문했다. 안내데스크에 물으니 접수가 다 끝났단다.
"야간 진료까지 아침에 예약이 다 끝나요. 아침에 하셔야 해요."
언제 아플지 알고 아침에 예약을. 저녁에 갑자기 열이 오르면 어쩌나. 곁에서 퇴근하고 온 아빠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빨라야 한 시간 반 걸린대." 밤 9시쯤에야 본단 얘기였다.
주말이나 공휴일엔 더하다. 이선희씨는 올해 5월 휴일에, 아이 진료를 위해 어린이병원을 찾았다. 39도 고열이 나고 있는 상황. 그는 해열제를 4시간마다 복용하며 기다려야 했다. 무려 6시간을 기다렸다. 이씨는 "한 손으론 체온계를 들고, 고열이 나 축 늘어진 아기를 홀로 안고 동동거리고 애가 탔다"며 육아하며 잊히지 않을 장면이라 했다.
잘 알려졌듯 소아과 전공의 부족이 근본 원인이다.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205명 정원에, 53명이 지원(25.9%)했다. 꼴찌였다. 이와 관련해선 별도로 깊이 있게 들여다보려 한다. 그럴 수밖에 없게 된 배경을 잘 봐야 하므로.
그럼에도 소아청소년과는 너무나 필요하다. 이주형 순천향대 소아응급실 교수는 최근에 낸 자신의 저서 '우리는 다시 먼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에서 이리 썼다.
"많은 전문지식이 글과 그림으로 세상에 나와 있지만, 여전히 많은 것들은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 그 중심에 있는 존재가 말로써 본인의 증상을 표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일 땐 더욱 그렇다. 아이 혈색, 숨소리, 목소리 하나로도 위험을 잡아낼 수 있도록 수년에 걸쳐 이미 충분히 훈련된 전문의들마저 소아청소년과 진료 현장을 떠난다."
현시점에서의 구체적인 대안도 필요해 보였다. 똑닥앱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현장 접수에 대한 할당 부분이다. 3차 병원에 근무한단 관계자는 "앱 이용료를 내면 진료 접수가 최우선시 된다. 의료 민영화라 하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같지만, 그런 얘기까지도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손 가정 양육자는 당일 진료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다른 것도 아니고 의료 진료라 고민스럽다. 필요악이라 해도 30% 정도 할당이면 몰라도 100%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의료는 필수이며 공공의 영역이므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게 신경써야 한단 거였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모든 소아과 예약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단 주문도 나왔다. 맞벌이를 한다는 워킹맘은 "일하는 엄마 입장에선 전날이나 당일에 예약이 가능한 병원이 최고"라고 했다. 그는 "똑닥처럼 사기업이 멤버십으로 일부 병원만 접수 받는 게 아니라, 국가가 모든 병원 접수와 예약을 관리하는 앱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에필로그(epilogue).
'젊은 엄마들이 일찍 소아과 진료를 마치고 아이들을 영유아원에 보낸 후, 친구들과 브런치 타임을 즐기기 위해 소아과 오픈 시간에 몰려드는 경우가 있어서.'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원장이 '의료정책포럼'이란 잡지에 쓴 글자들이다. '소아과 오픈런' 원인이 브런치 타임 때문이라고 한 거다. 어떤 문장은 글이 아니라 조악한 글자들의 단순한 집합들로 느껴진다. 이면을 파는 건 고사하고, 판타지에 가깝게 쓴 경우엔 더 그렇다.
브런치를 위한 오픈런이 아니라, 오픈런을 해야만 점심을 훌쩍 넘긴 시간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이게 현장에서 본 팩트였다.
게다가 우 원장은 '소아과 오픈 때만 런이지, 낮에는 스톱'이란 말도 썼다. 이건 사실인가.
성아름씨 아이는 오후 4시 반에 고열과 장염 증상을 보였다. 동네 소아과는 물론 내과, 이비인후과까지 전화했으나 접수 마감이 됐다. 아동병원 한 곳만 야간 접수를 받아준다고 했다. 오후 5시 10분까지 오라고 했다.
부리나케 갔으나 주차장은 만석이고 갓길까지 꽉 차 있었다. 뺑뺑 돌다 겨우 세워 올라가니 오후 5시 13분. 접수는 마감됐다. 고작 3분이 늦어서. 아름씨는 울며 병원에서 나와 응급실로 향했다. 소아과가 부족한 세상에서도 엄마, 아빠들은 이리 고군분투하고 있다.
야간 소아과에서 기다리던, 엄마와 아이 대화를 곁에서 들었다. 저녁 8시. 이미 밥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였다.
"엄마는 너무 배고파서 뭐 좀 먹을게."
그러면서 그 엄마는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어 허기를 채우려 했다.
젓가락도 없이 손에 들며 우물거리고 있던 건, 은박지에 싸인 김밥 한 줄이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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